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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일반

    "이용대? 中 린단? 나한테는 못 이기죠"

    휠체어 배드민턴 세계 챔피언 김정준 인터뷰

    '휠체어 위에서는 누구도 두렵지 않다' 한국 장애인 배드민턴 대표팀 간판 김정준은 첫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돼 치르는 내년 도쿄패럴림픽에서 유력한 금메달 후보로 기대를 모은다.(사진=요넥스코리아)

     

    의지할 것이라고는 오로지 두 팔뿐이다. 라켓으로 셔틀콕을 치는 것만도 벅찰 텐데 휠체어까지 움직여야 한다. 네트를 살짝 넘는 헤어핀을 가까스로 받아올리면 어느새 하이 클리어(상대 백코트 쪽으로 멀리 보내는 샷)가 머리를 넘어간다.

    재빨리 두 손으로 휠체어 바퀴를 밀어 거의 누울 정도로 허리를 젖힌 뒤 간신히 셔틀콕을 하늘로 날린다. 앉아서 하는 경기라고? 몇 점 따기도 전에 몸은 벌써 땀으로 범벅이 된다.

    장애인 배드민턴 중에서도 휠체어 종목은 특히 어렵고 힘든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두 손만으로 휠체어 바퀴를 끌고 라켓을 움직이는 일을 다해야 하는 까닭이다. 두 손 모두 장갑을 끼는 이유다.

    이런 고난도 종목에서 당당히 세계 랭킹 1위를 달리는 한국 선수가 있다. 세계선수권대회 4연패에 빛나는 김정준(41·울산중구청)이다.

    김정준은 지난 2013년부터 국제배드민턴연맹(BWF) 세계장애인선수권대회 WH2 부문에서 4회 연속 단식 정상에 올랐다. 올해도 지난 7월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대회에서 세계 최강을 확인했다. (WH2는 휠체어 배드민턴에서도 장애 정도가 가벼운 종목. WH1은 더 중한 장애 선수가 나선다.)

    지난 8월 세계장애인배드민턴선수권대회에서 휠체어 배드민턴 WH2 남자 단식 4연패를 이룬 김정준.(사진=대한장애인배드민턴협회)

     

    특히 장애인 배드민턴이 내년 도쿄패럴림픽에서 올림픽 사상 첫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상황. 남녀 단식, 복식 등 총 14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김정준은 초대 올림픽 챔피언이 될 가능성이 높다. 단식은 거의 확실한 가운데 복식까지 2관왕에 도전한다.

    13일 충북 충주 호암체육관에서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서도 김정준은 가볍게 전승으로 1위를 차지했다. 고교생 유망주 유수영(경기) 등이 패기있게 도전했지만 세계 랭킹 1위의 관록은 높기만 했다.

    대한장애인배드민턴협회 권성덕 전무는 "숙원이었던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이 이뤄졌다"면서 "우리 대표팀에서는 냉정하게 따져 김정준 외에는 확실한 금메달 후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과 홍콩 등 일반 선수 출신이 장애인이 된 뒤 휠체어 종목에 진출하는 경우가 많아 경계해야 한다"면서도 "관록이 있는 만큼 김정준을 믿고 있다"고 강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본인도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김정준은 "장애인 배드민턴이 올림픽 종목에 들어가서 뿌듯하다"면서 "지금까지 운동이 힘들었지만 올림픽에서 보상을 받는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서 금메달을 따겠다"고 다짐했다.

    모든 선수들, 특히 장애인 선수들이 그렇듯 김정준도 올림픽에서 보상을 받고 싶을 만큼 절절한 사연이 있다. 불의의 사고로 견디기 힘든 장애를 안고도 일어선 것처럼 올림픽에서 불굴의 의지에 대한 결실을 얻고 싶은 것이다.

    장애인 배드민턴 김정준이 13일 국가대표 선발전을 마치고 CBS노컷뉴스와 인터뷰를 하는 모습.(충주=노컷뉴스)

     

    김정준은 27살이던 2005년 산업 재해로 두 다리를 잃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내의 뱃속에는 8개월 된 아기가 있었다. 한 순간에 불구가 된 젊은 가장은 죽고 싶을 만큼 상실감이 컸다. 김정준은 "아내가 임신 8개월째였는데 마음의 상처가 정말 심했다"고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하지만 가장이기에 이를 악물었다. 김정준은 "아내와 애를 생각해서 참고 또 참았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그러던 중 한 줄기 삶의 희망을 발견했다. 김정준은 "TV에서 우연히 장애인 농구 경기를 봤고, 운동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면서 "그 길로 장애인 스포츠센터를 직접 찾아갔고, 배드민턴을 시작하게 됐다"고 말했다. 2007년의 일이었다.

    쉽지는 않았다. 배드민턴 자체를 거의 처음 접하는 데다 휠체어까지 함께 움직여야 하니 보통 고단한 일이 아니었다. 김정준은 "휠체어 배드민턴은 엄청난 체력이 필요하다"면서 "평소 웨이트 트레이닝은 물론 휠체어 롤링 훈련까지 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활로 시작한 배드민턴. 그러나 실력이 늘면서 동네는 물론 한국을 접수했다. 김정준은 "점점 운동을 하면서 체력과 실력이 붙었고, 첫 승을 거두면서 재미도 있었다"면서 "그러다 2010년을 전후로 국내 1인자까지 됐다"고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2012년에는 아시아선수권을 제패했고, 이듬해는 세계선수권까지 휠체어 위에서느 지구 상에서 가장 배드민턴을 잘 치는 사나이가 됐다.

    실제로 2018년 요넥스배 전국장애인배드민턴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배드민턴 최고 스타 이용대(31)가 이벤트 경기로 김정준에 도전했지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김정준은 "휠체어를 움직이는 게 쉽지 않았을 것"이라면서도 "이용대든, 중국 린단이든 휠체어만 타면 세계 최강 아니냐"는 질문에 "그렇겠죠?"라고 웃었다.

    2017년 제 18회 요넥스배 전국장애인배드민턴대회에서 휠체어 이벤트 경기를 치른 김정준(앞줄 오른쪽 두 번째부터), 이용대, 유연성의 모습.(사진=요넥스코리아)

     

    휠체어 배드민턴 세계 최강의 사나이를 이끄는 힘의 원천은 가족이다. 아내와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4학년인 두 딸이다. 김정준은 "딸들이 유튜브 등을 통해 세계선수권 우승 모습을 보면서 '아빠, 잘 했어'라고 열심히 응원해준다"고 은근히 자랑했다.

    내년 도쿄패럴림픽에서는 TV 중계가 이뤄질 수도 있다. 김정준은 "가족들이 TV를 보면서 응원 메시지를 보내주면 정말 힘이 될 것 같다"면서 "아내가 '끝까지 최선을 다해주면 좋겠다'고 격려하는데 금메달을 걸어주고 싶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그는 인터뷰 말미에 장애인들을 위한 조언을 잊지 않았다. 김정준은 "휠체어 배드민턴은 불의의 사고로 신체 장애를 입고도 최선을 다하는 스포츠"라면서 "다른 장애인들도 본인이 하고 싶은 모든 일에 포기하지 말고 최선을 다하면 좋은 일이 있을 것"고 힘주어 말했다.

    비장애인들에 대해서도 "도쿄패럴림픽에 많은 응원 관심 가져주면 좋겠다"면서 "최선을 다해서 2관왕에 도전해보겠다"고 다짐했다. 휠체어 배드민턴 세계 최강의 사나이가 초대 올림픽 챔피언으로 다른 장애인들은 물론 비장애인들에게까지 희망을 안길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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