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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 '안주셔도 됩니다' 한 마디면 돼요"

사회 일반

    "환경운동? '안주셔도 됩니다' 한 마디면 돼요"

    • 2019-12-17 19:45

    패키지 디자이너로 일하다 환경에 관심
    ‘강요’가 아닌 ‘제안’... 손님들도 반겨
    지역 내 소규모 생산자들과 함께 캠페인
    내게 맞는 텀블러? “생활 방식 고려해야”

    "안 주셔도 됩니다. 정말 괜찮아요."

    기후 변화 문제에 대응하는 간명한 실천 방식이 있다.

    '보틀팩토리' 정다운 공동대표가 제안하는 생활 속 실천은 '안 주고 안 받기'.

    '기후위기 시대-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주제로 환경재단(이사장 최열)이 지난 7일부터 7박 8일 일정으로 진행한 제14회 <그린보트> 행사, 그곳에서 만난 정 대표는 생활 속 작은 불편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지난 11일 그린보트 일정의 일환으로 하루 동안 '텀블러 상담소' 임시 소장을 맡기도 한 정다운 대표의 말을 들어봤다.

    ▲ 일회용품 없는 카페 ‘보틀팩토리’ 언제, 어떻게 문을 열게 됐나?

    ☞ 작년 5월에 문을 열었다. 플라스틱 컵뿐 아니라 빨대도 사용하지 않는다. 영수증도 손님이 원할 때만 발급해준다. 손님에게 보이는 부분 외에 주방에서도 일회용품 사용을 가급적 하지 않는다. 페트병이 나오는 탄산수 대신 탄산수 제조기를 이용하고 마요네즈도 두유 마요네즈를 직접 만든다. 손님과 상관없는 부분이지만 일회용품을 가능한 줄이면서 영업을 하는 것이 카페 취지에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불편한 생활의 실험' 강연 중인 보틀팩토리 정다운 공동대표 (사진=환경재단 제공)

     


    ▲ 작년 8월부터 매장 내 플라스틱 컵 사용이 금지됐다. 보틀팩토리는 그보다도 전에 문을 열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 원래 기업에서 패키지 디자이너로 일했다. 패키지 디자인을 하다보니 자연스레 ‘버려지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다. 또 여느 직장인들처럼 커피를 자주 마셨는데 문득 쓰레기통 가득 버려진 테이크아웃 컵들을 보게 됐다. ‘도대체 이 많은 일회용품들은 어디로 가는 거지?’, ‘재활용이 되는 것은 맞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테이크아웃 문화가 없던 시절엔 어떻게 살았던 거지?’ 하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이런 문제의식에서 2016년 팝업 카페를 기획하게 됐다. 플라스틱 컵이 아닌 유리병에 음료를 담아 파는 실험이었다.

    ▲ 카페 이름이 ‘보틀팩토리’ 인 이유도 팝업 카페를 열었던 경험에서 비롯된 건가?

    ☞ 애초에 시작한 것이 플라스틱 컵 대신 보틀 사용을 권장하기 위해서다. 자전거 공유 서비스처럼 보틀, 텀블러, 다회용 컵 역시 공유 또는 대여 가능한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대여소가 곳곳에 있다면 손쉽게 보틀과 텀블러를 대여할 수 있다. 반납은 또 회사 근처에서, 집 근처에서 하면 된다. 세척소까지 갖춘 대여소가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보틀팩토리는 그런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간이다. 테이크아웃을 하려면 ‘보틀 클럽’에 가입을 한 뒤, 텀블러를 대여해야 한다. 대여 카드에 이름을 올리면 무료로 빌려준다. 텀블러를 쓰면 음료는 할인 되고 텀블러 사용 후 반납하면 스탬프를 적립해준다.

    ▲ 일회용품을 쓰지 않는 카페 라고 소개를 하면 손님들의 반응은 어떤가?

    ☞ 2016년 팝업 카페를 운영했을 때, 사실 반신반의했다. 정식 카페도 아닌데다가 유리병에 음료를 담아 대여 보증금을 받고 팔았다. 테이크아웃이 오히려 더 비싼거다. 시작하기 전엔 화를 내는 사람도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뭐라고 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오히려 취지에 공감해주는 분들이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면서 마음에 불편함을 품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

    카페를 열기 전엔, 일회용품 사용을 안한단 설명을 듣고 ‘그것 또한 강요 아니냐’ 하는 사람도 있었다. 여기에 ‘강요가 아니라 제안이다’ 라고 답했다. 선택권은 손님에게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아직까지 강요라고 생각하는 손님은 보지 못했다. 그저 다른 방식의 카페를 체험해본다, 제안을 받아들인다 정도로 생각하더라. 심지어 첫 방문 땐 텀블러를 가져오지 않다가 다음 방문 땐 챙겨오기도 하고 친구를 데리고 와서 카페에 먼저 설명을 해주기도 한다.

    현재 보틀팩토리 앞에는 ‘일회용품이 없는 카페’ 라고 안내문이 써있다. 일단 들어오는 손님은 그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지금은 멀리서 일부러 카페를 찾아오는 손님들도 있다.

    강연 중 질문하는 그린보트 참석자 (사진=환경재단 제공)

     


    ▲ 손님뿐 아니라 주변 다른 업주 분들 중에서 프로젝트 자체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있나?

    ☞ 작년과 올해 ‘유어보틀위크’라는 지역 행사를 개최했다. 작년의 주제는 ‘일회용품 없는 일주일’ 이었고 올해는 ‘우리 동네에서 시작되는 변화’ 였다. 지역 소규모 생산자들을 직접 찾아가 섭외했다. 내용은 간단했다. 테이크아웃 손님들이 텀블러나 다회용 용기를 챙겨오면 거기에 담아주고 도장을 찍어주고, 행사를 홍보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거였다. 작년엔 카페들만 참여했는데 올해는 어묵집, 분식 집 등 생산자 종류를 늘렸다.

    처음에는 사장님들도 ‘그래요. 포장지 아끼고 좋지 뭐’ 이런 반응이 대다수였다. 그런데 행사가 진행되고 실제로 다회용기를 가져오는 손님들이 오니까 ‘통을 정말 가져오시네. 신기하다 재밌다’ 하더라. 일회용품 사용도 덜하고 사장님들의 변화가 눈에 보여 기뻤다. 지역의 소규모 생산자들이 많이 있다는 게 변화를 가져오는데 중요하단 걸 깨달았다.

    ▲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신다면?

    ☞ 대기업 프랜차이즈 빵가게, 프랜차이즈 아이스크림 가게에 ‘일회용품 쓰지 말아주세요’ 라고 할 수는 없지 않나. 하지만 로컬 생산자들과는 직접 소통과 변화가 가능하다. 보틀팩토리에서 커피 원두를 포장지 없이 리필할 수 있는 이유도 근처에 원두를 직접 생산하는 소규모 생산자가 있기 때문이고 매번 다회용 용기에 아이스크림을 받을 수 있는 이유도 지역에 수제 아이스크림 생산자가 있기 때문이다. 함께 상생하면서 변화를 꿈꿀 수 있다.

    ▲ 손님 입장에서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환경운동, 또 어떤 것이 있는지?

    ☞ 직접 카페 운영을 하면서 처음에는 줄줄이 설명을 했다. 생각을 해보니, 손님보단 상인이 해줘야 하는 부분들이 더 많았다. 손님 입장에선, 컵, 영수증, 빨대, 물티슈처럼 원치 않아도 받게 되는 일회용품들이 많단 소리다. 손님이 해주셨으면 하는 것은 “안주셔도 됩니다” 이 한 마디다. 이것도 용기다. 거절하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꾸 권할 땐 “정말 괜찮아요” 라고 한 번 더 말해보면 어떨까.

    다회용 용기를 사용하는 보틀팩토리 정다운 대표 (사진=환경재단 제공)

     


    ▲ 카페 영업 외에도 본인의 일상에서 ‘불편한 생활’을 한다고 들었다.

    ☞ 불편한 생활을 ‘실험’ 한다고 말하고 싶다. 내가 얼마나 해낼 수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받으면서까지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쓰레기를 기록한다. 살펴보면 줄일 수 있는 쓰레기가 보인다. 페트병, 빵 봉지, 과자 봉지, 화장품 통. 우선순위를 두고 하나 하나 줄일 수 있는 것을 줄여본다. 미션처럼 해보면 재미있다.

    빵을 참 좋아하는데, 빵 봉지를 줄일 방법이 없나 생각했다. 가게에 보면 빵을 담는 쟁반에 유산지가 있다. 어차피 버려지는 그 유산지로 감싸서 가져오기 시작했다. 신기한 것은, 이런 작은 행동에 가게가 바뀐다는 거다. 자주 가는 단골 가게들은 내가 비닐봉지를 쓰지 않는다는 걸 안다. 어떤 마트에선 상인이 내가 매번 챙겨오는 장바구니를 보고 예쁘다면서 다른 손님에게 소개하기도 하더라.

    ▲ '나 혼자 애쓴다고 세상이 변할까?'라는 생각도 들 것 같은데.

    ☞ 쓰레기 대란 이후로 나 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인식이 많이 바뀌고 있단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정부의 규제가 중요하구나 라는 생각도 한다. ‘매장 내 일회용품 컵 금지’ 때 느꼈다. 규제가 한 번 생기니까 싹 바뀌더라. 한편 허무하단 생각도 들었다. 개인의 실천과 의식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정부나 기업이 큰 물줄기를 터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선내 환경 캠페인 '그린대여소' (사진=환경재단 제공)

     


    ▲ 2019년 환경재단 14회 그린보트에서는 개인에게 맞춤형 텀블러를 제안하는 '텀블러 상담소'를 운영했다. 나에게 맞는 텀블러란 무엇인가?

    ☞ 카페를 열고 600개 정도의 텀블러를 전국 각지에서 기부 받았다. 다양한 종류의 텀블러들을 보니, 각각 특징이 있었다. 제일 좋은 텀블러를 추천해달라고 하면 못한다. 왜냐하면 사용하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필요한 텀블러가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가방에 넣고 이동이 잦은 사람들은 가벼운 무게에 밀폐가 잘 되는 텀블러가 좋다. 반면 오래 자리에 앉아 있는 직장인은 밀폐보단 쉽게 마실 수 있는 뚜껑이 좋다. 만약 라떼류를 자주 마시는 사람이라면 세척이 용이한 텀블러가 좋다. 찬 음료를 좋아한다면 얼음이 들어갈 수 있는, 입구가 큰 텀블러가 낫다. 생활 방식에 따라 나의 상황에 맞는 텀블러를 신중하게 고르시길 바란다.

    ▲ 앞으로 계획 중인 활동이나 캠페인이 있다면?

    ☞ 앞서 지역 소규모 생산자들과 소통을 많이 한다고 했는데, 함께하는 지역 캠페인을 계속 해나가고 싶다. 한 달에 한 번 ‘채우장’ 이라는 일회용품 없는 장터를 열고 있다. 지역 생산자들의 물건들을 판다. 소금, 깨, 그래놀라, 레몬청, 더치 커피, 베이킹 소다, 채소, 누룽지, 소스 다양하다. 손님들은 다회용기를 가져와야 물건을 살 수 있다. 지역 커뮤니티 기반으로 좀 더 규모를 확대하고 싶다.

    ※ 환경재단 제 15회 그린보트 일정은 내년 1월 중 그린보트 홈페이지(www.greenboat.kr)을 통해 공개될 예정이다. (문의: 이메일 greenboat@greenfund.org / 전화 02-2011-4342, 4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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