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으로부터 재산을 증여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면서 수십억원의 증여세가 부과된 김혜경 전 한국제약 대표가 이를 취소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승소했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조미연 부장판사)는 김 전 대표가 반포세무서를 상대로 제기한 증여세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청구를 받아들였다.
과세당국은 2014년 김씨의 자금출처를 조사한 결과 김씨가 유 전 회장으로부터 주식과 부동산 취득자금 등을 증여받았다고 보고 수십억원대의 증여세를 부과했다.
과세당국은 김씨가 재산을 취득하거나 빚을 갚는 데 쓴 금액과 김씨의 소득을 비교한 뒤 소득을 넘어선 금액만큼을 유 전 회장이 증여한 것으로 추정했다.
그 근거로는 유 전 회장과 김씨가 '경제적으로 특수한 관계'에 있었다는 유 전 회장의 운전기사 등의 진술을 들었다.
반면 김씨는 소송 과정에서 자신에게 일정한 직업과 상당한 소득이 존재했다고 반박했다. 증여한 사람이 유 전 회장이라는 점을 뒷받침할 근거도 없는 데다 세무서가 증여추정액을 계산한 내용에도 많은 오류가 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이러한 김씨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세무서가 1996년 말부터 2014년까지 김씨의 총소득으로 파악한 액수는 523억원에 달하는데, 이는 김씨가 재산을 취득한 금액 등의 합계 565억원의 92%에 해당한다"며 "세무서는 김씨의 소득금액을 산정하는 과정에서 근로소득 일부를 누락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세무서는 김씨의 누적 소득금액과 재산취득 금액 사이에 차액이 발생하기만 하면 이를 망인(유 전 회장)이 김씨에게 증여한 것으로 추정해 세금을 부과했다"며 "그러나 세무서가 산정한 김씨의 누적 소득금액에 오류가 있었으니 차액 또한 오류가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세무서가 제출한 증거만으로는 망인과 김씨가 경제공동체를 영위하고 있다거나 특수한 관계였다는 점이 충분히 증명되지 않았다"며 "김씨가 재산 취득에 소요된 자금을 일일이 제시하지 못한다고 해서 곧바로 이를 망인으로부터 증여받았다고 추정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김씨가 유 전 회장으로부터 주식을 명의신탁 받았다는 점에 대해서도 재판부는 "주식의 실제 소유자가 망인임을 뒷받침할 아무런 증거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