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영화

    [리뷰] '백두산', 볼거리로 압도한다

    [노컷 리뷰]

    19일 개봉한 영화 '백두산' (사진=덱스터픽쳐스 제공)

     

    맨홀 뚜껑이 하늘로 솟아오른다. 방금까지 위용을 뽐내던 고층 건물이 맥없이 무너진다. 도로는 들리고 큰 구멍이 생겨 까딱하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질 기세다. 영화 '백두산'(감독 이해준·김병서)은 영화가 가진 볼거리를 노출하는 데 어떤 주저함도 없어 보인다. 백두산 화산의 1차 폭발로 쑥대밭이 된 한반도를 훑고, 어쩜 저렇게 위험한 상황에도 요리조리 잘 피할 수 있나 싶은 주인공의 곡예에 가까운 운전 장면까지 초반 시퀀스로 소화하는 것을 보면, 자신감마저 읽힌다.

    '백두산'은 말 그대로 볼거리로 압도하는 영화다. 영화 개봉과 언론 시사회까지는 일주일 전후의 간격이 있게 마련이다. 이해준 감독에 따르면 '백두산'은 후반 CG 작업을 다 마치지 못해 지난 13일 밤늦게야 완성본이 나왔고, 그래서 자연스레 언론 공개도 늦어졌다. 그만큼 시선을 빼앗는 장면들이 즐비하다.

    백두산 화산 폭발이라는 소재 겸 상황이 워낙 강렬하다 보니, 이야기는 평이하다. 대부분 예상한 대로 흘러간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화를 기다리기에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다. 무모하고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작전이 개시된다. 투입되는 요원들은 아주 선하지도 아주 악하지도 않은 평범한 사람들이다. 약간의 허점이 있고, 때로 비겁하거나 경솔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나, '의리'가 있어 사이는 끈끈하다.

    두 주인공 리준평(이병헌 분)과 조인창(하정우 분)은 한반도 전역을 집어삼킬 수 있는 백두산 화산의 4차 폭발을 막기 위해 투입된 이들이다. 인창은 곧 태어날 아기를 밴 아내 최지영(배수지 분)에게 제대로 사정 설명도 못 하고 북한에 떨어진 미션 도전자다. 아기 초음파 사진을 들고 다니고 꿈속에서도 아내를 찾는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가족'이다.

    리준평은 자신의 필요에 따라 어디에나 붙을 수 있을 것 같은 강력한 생존능력을 갖췄고, 이중 스파이로 의심받을 만큼 다방면에서 실력자다. 딱히 감상에 빠질 여지도 없어 보인다. 그런데 피도 눈물도 없어 보이는 이 자의 가장 약한 고리도 역시나 가족이다. 거대 규모의 재난물에서 대개 양념처럼 들어가는 '가족애'가 리준평의 서사에도 녹아 있다. 두 주인공의 가족 서사는 '울게끔' 만드는 데 쓰인다는 인상이다.

    남북 모두가 화산 폭발 이후 재앙의 영향권에 있기에, '백두산'은 필연적으로 한국과 엮인 타국의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도, 대통령은 자국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민정수석 전유경(전혜진 분)은 한발 더 나아간다. 필요하다면 훔치기라도 해야 한다는 주의다. 이런 사정 다 따지면 이 위험 앞에 무너지는 수밖에 없다는 확신으로, 모험을 감행한다.

    그러나 미군의 등장 앞에 작전 본부의 묘책은 표면적으로 중단된다. 이런 국가적 재난을 맞았을 때 앞으로 어떻게 할지 선택권조차, 동맹 관계의 강대국 판단을 우선해야 하는 상황. 극 안에서 가장 실망하고 좌절하는 인물은 작전의 설계자 강봉래(마동석 분)지만, 영화 밖 관객들도 무력감을 느낀다. 그것이 꼭 픽션만은 아니기에.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설정이었다 해도, 이런 연출에는 창작자들의 의도가 있지 않았을까 하고 감히 상상해 본다.

    영화 '백두산'에 출연한 배우들. 맨 위부터 하정우, 이병헌, 마동석, 전혜진, 배수지 (사진=덱스터픽쳐스 제공)

     

    '백두산'의 볼거리는 중후반부까지 계속된다. 총격 장면, 무너지는 다리 위에서 위태롭게 헤쳐나가는 버스 운전 장면 등 긴장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쓴다. 이미 여러 영화에서 액션 장면을 능숙하게 소화한 이병헌과 하정우는 '백두산'에서도 완성도 높은 결과물을 보여준다.

    사투리, 북한어, 중국어, 러시아어까지 자유자재로 쓰는 리준평 역 이병헌은 이번에도 제 옷을 입은 것처럼 뛰어난 연기로 존재감을 발산한다. 리준평보다는 좀 더 인간적인 허점이 보이는 조인창 역 하정우도 밀리지 않는다. 둘은 아웅다웅하면서 둘만의 관계성을 쌓고, 이 과정에서 웃음이 샘솟는다. 주로 몸 쓰는 연기를 해온 마동석이 좀처럼 목소리 높이지 않고 차분한 지식인 역할을 해서 꽤 신선하다. '롸벌트'라는 세 글자로 웃기는 솜씨가 눈에 띈다.

    자기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내며, 강단 있는 민정수석 전혜진의 연기는 언제나처럼 좋다. 다만 큰 규모의 영화에서 여성 캐릭터 비중은 작고, 특별히 차별화되게 그려지지 않는다는 고질적인 문제가 '백두산'에서도 발견된다. 작전본부를 이끄는 인물이 '또' 이경영이어야 했는지도 아쉬움이 남는다.

    화려한 볼거리, 남북의 두 남자가 쌓는 나름의 우정, '가족'으로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까지, 공식을 잘 따른 대작이다.

    19일 개봉, 상영시간 128분, 12세 이상 관람가, 한국, 어드벤처·드라마.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