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본회의장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26일 통과할 예정인 가운데, 정치권이 선거제 개편에 따른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선거제개편안에 따라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 등 거대 양당의 의석 감소가 예상되는 대신, 소수당, 신생정당은 원내 진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서다.
실제로 새로운 선거법을 지난 20대 총선에 적용하면 민주당은 114석으로 9석이 줄고, 한국당 또한 111석으로 11석이 줄어든다. 대신 신생정당이었던 국민의당은 14석을 더 얻고, 소수당인 정의당은 6석이 더 늘어나게 된다. 다수당의 의석은 줄고, 소수당, 신생정당의 입김이 더 세지게 되는 셈이다.
이는 국민의 의사를 연동해서 의석에 반영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 제도의 취지 때문이다.국민의 이념, 지향, 정책적 필요성이 의석에 직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 준연동형 도입…'다당제 이제 숙명'이런 의석수의 변화는 자연히 정치 구도의 변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20대 국회에 한 해 우연히 만들어진 다당제가 이제 상수가 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다당제는 제도적으로 단독 과반을 막는 제도로 이해될 수 있다. 현재까지 단독 과반을 가진 여당 또는 야당으로 인해 벌어진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독 과반을 가진 여당은 국회의 역할인 견제 기능을 약화시킨다. 반대로 과반을 넘긴 야당은 국정 마비를 불러온다.
다당제로 넘어가면 여당이 단독 과반을 가질 수 없기 때문에 소수 정당들과 협치를 할 수밖에 없다. 또 거대 야당이어도 힘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을 수도 있다.
20대 국회에서 이미 다당제를 경험한 바 있다. 4+1 협의체 등은 처음으로 제 1, 2당이 아닌 제 1당과 소수당의 힘으로 과반을 만들어 예산안을 통과 시켰다. 이후 공직선거법과 사법개혁법안, 예산부수 법안 등 각종 법안 통과까지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원내 두 번째 규모의 정당이자, 제 1야당인 한국당의 목소리는 의석에 비해 오히려 축소되는 현상까지 발생했다. 이는 양당이 주로 협상을 하고, 의제를 설정해왔던 지난 정치 구도가 이미 깨졌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
◇ 총선 국면 정당 분화, 난립 가능성…'비례한국당' 말고 정책정당 나올까이런 구도는 총선 국면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준연동형비례제 도입에 따라 총선 국면에서 정당의 분화, 또는 난립 가능성도 나온다.
한국당 황교안 대표는 "연동형 비례제 선거법이 날치기 처리되면 비례를 노리는 정당들이 우후죽순 생겨날 것"이라며 "총선 전까지 예상하기로는 100개가 넘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난립 가능성 뿐 아니라, 정당의 분화에 따른 정책 정당의 가능성도 생긴다.
보수당들도 이제 통합만이 살길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이미 '새로운 보수당'이 창당을 준비하고, 중도층을 노린 새로운 당의 출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신생정당들도 원내 진입이 가능하게 된 제도에 따른 변화다.
다당제의 또 하나의 특징은 소수당 간의 정책 경쟁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도 꼽힌다. 새롭게 만들어진 소수당은 지역구 후보 보다는 정당의 정책과 선명성으로 경쟁할 수밖에 없다. 다당제 하에서는 과반의석을 만드는 연합 정치 구도속에서 얼마든지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돼 정책 실현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4+1 협의체에서 의석이 적은 소수당이었지만, 여당과 협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다당제의 특성이기도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다당제 적응 어찌하나…거대 양당 셈법 복잡다당제 속 지위가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되면서 거대 양당은 당장 대책 마련에 들어갔다. 선거법에 끝까지 반대했던 자유한국당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로 의사진행 방행에 들어가면서도 이른바 '비례한국당'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비례한국당은 비례의석만 노리는 별도의 위성정당을 만들어 의석을 확장할 수 있게 하겠다는 전략이다.비례의석을 추가 확보하기 위한 대비책이자, 다당제 적응 대책인 셈이다.
민주당도 선거제 협상과정에서 준연동형을 적용하는 비례의석을 30석으로 제한하며 연동형 비례대표제의 작용을 제한하기도 했다. 지역구 의석을 정당지지율에 비해 많이 가져가면 비례대표 의석 1석도 받지 못하는 제도 취지 때문에, 최소한의 비례 확보 방안을 마련해 놓은 것이다.
또 민주당은 비례대표를 뽑는 과정에서 '국민공천심사단'을 만들어 시민들의 평가를 반영하도록 했다. 비례대표의 민주성과 신뢰성을 높여, 정당 지지율을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이다.
◇ 첫 다당제 실험은 성공할까
하지만 선거제 개편이후 다당제가 제대로 정착될지는 미지수다. 여전히 지역구가 253석에 이르는 '지역구 중심'의 선거제도여서 거대 양당의 경쟁 구도가 유지될 수밖에 없다.
또 투표를 하는 유권자들 또한 정책이나, 이념 성향에 따른 투표를 할지도 아직 알 수 없다. 현재까지 유권자들은 거대 정당에 표를 몰아주는 이른바 '전략투표'를 해왔기 때문에, 새로운 선거제도에 유권자들이 얼마나 빠르게 적응할지도 변수다.
만약 유권자들이 종전대로의 투표 성향을 유지하면, 정당 구성도 종전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승수 비례민주주의연대 대표는 "새로운 선거제는 유권자들이 어떻게 적응할지가 관건"이라며 "유권자들의 투표가 거대 정당이 아닌, 정책으로 얼마나 바뀌는지가 가장 큰 변수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당제가 만들어진다 해도, 21대 국회에서 협치가 아닌 경쟁만 남는다면, 연동형 도입 실험은 실패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