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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이해인 "먹다흘린 김칫국물에 감사한 한 해"

사회 일반

    [인터뷰] 이해인 "먹다흘린 김칫국물에 감사한 한 해"

    올해 후회? "더 정성스럽게 들을걸"
    약점도 자랑하는, 여백을 허용하는 삶
    '막말' 정치인들, 왜 기도해도 안바뀔까
    나를 향한 악플 보며 "오죽하면 나에게.."
    한해 마무리, 고마운 사람들 위해 기도하기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이해인 수녀(시인)

    2019년 김현정의 뉴스쇼 이제 마지막 인터뷰 하나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올해 마지막 인터뷰는 이분의 글로 시작을 할게요. 살아 갈수록 오늘 하루 한순간이 소중합니다. 힘들더라도 조금씩 더 인내하고 감사하며 살아내는 모든 순간이 결국 신께 드리는 하나의 기도이자 이웃에게 바치는 러브레터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서로를 챙겨주고 사랑할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습니다. 여기 또 하나의 러브레터를 드립니다. 이런 글과 함께 새로운 산문집을 가지고 돌아온 분이 계세요. 이해인 수녀 올해 마지막 인터뷰 손님으로 만나보죠. 수녀님, 안녕하세요.

    ◆ 이해인> 안녕하세요. 부산 광안리에서 동백꽃 웃음과 함께 인사드립니다.

    (사진=연합뉴스)

     

    ◇ 김현정> 동백꽃 같은 웃음과 함께... 시작부터 멋집니다. 수녀님의 올 한 해는 어땠는지 궁금해요.

    ◆ 이해인> 간간이 몸이 좀 아프기는 했지만 어느 때보다도 제가 밝게 명랑하게 부지런하게 살았던 것 같아요, 글도 쓰면서. 빨리 지나갔어요, 1년이.

    ◇ 김현정> 다들 이제 이맘때쯤 되면 각종 후회들을 해요. 올해 이거 해야 되는데 못 했다. 저게 아쉽다. 수녀님도 후회라는 걸 혹시 하십니까?

    ◆ 이해인> 올해 제가 해마다 하는 후회지만 다른 사람의 말을 좀 더 정성스럽게 듣지 못했던 소홀함. 그런 게 좀 걸리더라고요. 특히 가까운 사람한테 마음으로 함께 듣는 그런 정성이 부족했구나, 그런.

    ◇ 김현정> 아니, 그 경청 잘하시는 수녀님도 더 할 걸이라는 생각을 하는.

    ◆ 이해인> 제가 쓴 시 중에서 듣기라는 시에서 소개를 했지만 아침에 일어나면 들어라, 들어라 하고 밤에 잠들기 전에는 들었니, 들었니 이렇게 나한테 물어보라고 3번. 3번씩 물어보겠다 그렇게 했는데 잘 못 하는 것 같고 말을 더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듣는 것보다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 김현정> 이런 좋은 내용들을 담아가지고 책을 하나 내셨어요. 산문집 그 사랑 놓치지 마라. 위로가 되는 구절들이 참 많더라고요.

    이런 구절이 우선 있었습니다. 살다 보면 우리는 예기치 않은 실수를 통해 조금 더 겸손해지고 이를 잘만 이용하면 인간관계도 좋아지는 축복을 누리기도 하니 자신의 사소한 실수에 무조건 실망하고 한탄만 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람이 좀 허술해 보이면 어떠냐. 가끔은 민망한 김칫국물 한두 방울쯤 가슴에 슬쩍 묻혀나 볼 일이다. 자신의 약점을 자랑하는 용기야말로 진정한 용기가 아닐까요 그러셨어요.

    ◆ 이해인> 그렇게 도가 트인 말씀을 하셨네. (웃음)

    ◇ 김현정> (웃음) 이해인 수녀께서.

    ◆ 이해인> 제가 사실 11년째 이렇게 암으로 투병하다 보면 어느 순간 생사의 기로에 있게 되고 많은 아픈 사람을 보게 되잖아요. 그래서 부끄러운 부분도 본의 아니게 많이 보이게 되고 이러니까 약점을 자랑한다는 거. 자기 부족함을 다 드러내 보인다라는 게 이런 거구나.

    가장 인간적인 것은 가장 거룩한 것과 통한다. 이런 말이 저도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살면 살수록 더 그 훌륭함으로 인해서 남한테 상처도 주게 되고 그래서 제가 못나고 허술한 게 훨씬 따뜻하고 좋은 거라는 생각이 조금 들더라고요, 근래에는.

    ◇ 김현정> 제가 그 뭐 먹을 때마다 김칫국물 한 방울씩 꼭 흘리는 사람이거든요. 굉장히 그게 부끄러운 거라고 생각했는데...

    ◆ 이해인> 제가 손택수 씨 시를 좋아서 인용한 건데 저도 김칫국물 많이 잘 흘려서 핀잔을 많이 듣고 수녀님 보면 실망하겠다고, 독자들이. 왜 이렇게 덤벙대고 얌전하지 못하냐고 그러는데 허술하다는 게 아무렇게나 살라는 뜻과 다르게 자기 여백을 허용하는 거죠.

    ◇ 김현정> 약점도 사랑해라.

    ◆ 이해인> 약점. 그 단어가 저는 참 좋더라고요, 성경에 나오는. 나에게 자랑할 것은 약점뿐입니다. 이런 고백이 정말 좋더라고요, 저는.

     

    ◇ 김현정> 이런 구절도 있습니다. 우리가 비교급에서 조금만 탈피하면 삶이 달라질 수 있어요. 어둡다고 불평하는 것보다 촛불 한 개라도 켜는 것이 낫다라는 중국 격언을 좋아합니다. 긍정적인 행동 하나가 희망의 촛불이 될 수 있거든요. 이렇게 쓰셨어요.

    ◆ 이해인> 불평하고 이러는 시간에 내가 가서 촛불 하나를 더 키워놓는 희망의 어떤 행동을 해야 되지 않을까 해서 대화를 하다가도 누가 막 남의 흉을 보면 제가 나서서 우리도 부족한 사람인데 우리 오늘 그만하자 그런 얘기는. 그것이 내가 촛불 한 개라도 켜는 그런 행동이 아닐까. 그런데 그런 용기가 부족해서 우리는 끝까지 다 동조하잖아요, 남이 흉보는 걸.

    그래서 우리가 촛불 켜는 행동을 하는 희망적인 존재가 돼야지만 또 그 새해를 새해답게 맞이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그게 실전에서는 어려워요. 체면 때문에도 어렵고. 자기는 얼마나 잘났어. 이렇게 생각할까 봐 이런 말은 못 하는 거죠, 체면 때문에.

    ◇ 김현정> 올 한 해 우리 사회로 봤을 때는 굉장히 갈라졌었어요. 민심이 상당히 갈라져 있는. 어떻게 새해에는 좀 이 갈등을 해소할 방법 같은 게 있을까요?

    ◆ 이해인> 저도 잘은 모르지만 일단 다름을 수용하면서 또 싸울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이 들고 우리는 너무 악에 받친 것 같은. 성숙한 사람들이 저렇게 막 싸울까. 네 편, 내 편 이것이 너무 슬프더라고요, 우리는.

    그래서 우리 언어부터 순화시켜야 되지 않을까. 그렇게 정치인들이 막말을 하니까 너무 슬프더라고요. 거기서 막 기도해도 왜 이렇게 안 바뀌지. 그런 생각이 들어요. 우리나라가 이러다가 어떻게 될 건가 싶기도 하고. 그래서 반성도 많이 하지만 좀 기도만 갖고 안 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이렇게 느낄 만큼 너무 우리 현실이 좀 어느 때는 슬프더라고요.

    ◇ 김현정> 제일 거슬렸던 건 막말. 정치인의 막말.

    ◆ 이해인> 막말을 그냥 보통 하는 게 아니라 입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진짜 어린이한테 미안할 정도로 고운 말하라고 우리가 어떻게 가르치겠는가. 그런 생각이 막 들어요.

    ◇ 김현정> 어떻게 하면 더 날카롭게 찌를까를 연구하는 것처럼 막말들을 해내는 거 보면.

    ◆ 이해인> 무참하게 막 죽이잖아요, 상대를 말로. 그래서 어린 연예인들 보면서 가슴 아프더라고요. 다 그것도 말에서 빚어지는 인신공격적인 그런 말이잖아요. 악플 같은 거. 가끔 저한테도 악플 달리지만.

    ◇ 김현정> 이해인 수녀님도 악플 공격받으세요?

    ◆ 이해인> 가끔 달려요.

    ◇ 김현정> 뭐라고요?

    ◆ 이해인> 왜 천주교 수녀로서 스님들하고 우정을 나누느냐. 이런 것도 그렇고 또 마더 데레사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마더 데레사 마음속에 들어가 봤느냐. 왜 마더 데레사도 아니면서 그렇게 말하냐를 비롯해서 또 희망을 가져라 이러면 사는 게, 사는 것 자체가 희망이라 그러면 수녀님이 이렇게 힘든 이 시대에 사는 게 뭐가 희망이냐. 이렇게 힘들어 죽겠는데 . 이러고 저한테 막 그렇게 한다니까요. 그래서 얼마나 살기 힘들면 나한테까지 이렇게 할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얼마나 마음이 빡빡하면 막 욕하고 싶고 막 그렇구나. 우리가 다 위선자같이 보이겠구나.

    ◇ 김현정> 그러면서 그냥 위로하고 넘어가세요?

    ◆ 이해인> 그래서 이해하면서 그래, 오죽하면 나한테 그럴까. 그냥 용서해야지.

    ◇ 김현정> 오죽하면 이 말해도 싫고 저 말해도 싫고 악플을 여기저기 싸지르고 다니는 이 악플러들은 왜 이럴까. 하지만 이해해야지.

    ◆ 이해인> 그 악플러들한테 변명도 했다니까요. 제가 숨 쉬는 거, 살아 있는 게 희망이라고 했던 것은 제가 아파 보니까 차마 숨을 못 쉬고 힘들 때 정말 숨만 쉬었으면. 고민하고 괴로워하는 것도 일단 살고 나서 내가 움직일 수 있어야만 고민도 하는 거니까. 그런 의미에서 나는 살아 있는 게 희망이라고 쓴 거다. 이렇게 변명했다니까요, 제가.

    ◇ 김현정> 악플 밑에 댓글도 다셨어요?

    ◆ 이해인> 네.

    ◇ 김현정> 세상에나.

    ◆ 이해인> 그래서 말을 잘못할 때마다 세금을 붙여서 내면 어떨까. 벌금 내라고 그러면 말을 좀 곱게 할까. 이런 생각이 들어요.

    ◇ 김현정> 이제 올 한 해가 24시간도 남지 않았습니다. 수녀님, 남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면 좋을까요?

    ◆ 이해인> 1년 동안도 감사했던 일들도 많으니까 나한테 고맙게 힘을 줬던 사람, 용기를 줬던 사람을 구체적으로 떠올려 보면서 열 가지 이내로 이렇게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고 그분들 위해서 30초, 1분이라도 기도하고 그렇게 하면 상대에게 전달이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 김현정> 굉장히 좋네요. 저도 오늘 꼭 그거 해 볼게요, 수녀님.

    ◆ 이해인> 저도 해 보려고요.

     

    ◇ 김현정> 그리고 이제 올 한 해 정말 마지막 인사는 우리 뉴스쇼 청취자들을 위해서 수녀님 음성으로 따뜻한 시 한 편을 좀 선물로 주실 수 있을까요?

    ◆ 이해인> 이번에 펴낸 시 산문집 제목이 그 사랑 놓치지 마라인데 원래 이 시 제목의 모티브가 됐던 제가 쓴 가까운 행복이라는 시가 있거든요.

    ◇ 김현정> 가까운 행복.

    ◆ 이해인> 이 시를 그러면 청취자들을 위해서 제가 올해 마지막 선물로 아니면 새해를 여는 첫 선물로 읽어드릴까요?

    ◇ 김현정> 그 시, 이해인 수녀님의 목소리로 낭송을 들으면서 저희 인사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 이해인>

    가까운 행복.

    산 넘어 산
    바다 건너 바다
    마음 뒤에 마음
    그리고 가장 완전한 꿈속의 어떤 사람

    상상 속에 있는 것은
    언제나 멀어서 아름답지

    그러나 내가 오늘도 가까이
    안아야 할 행복은

    바로 앞의 산
    바로 앞의 바다
    바로 앞의 내 마음
    바로 앞의 그 사람

    놓치지 말자
    보내지 말자

    이런 시예요. 그래서 순간순간을 소중히 하고 옆에 우리가 함께 사는 모든 사람을 소중히 여기면서 복스러운 사람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선물의 집이 되면 좋겠습니다,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 김현정> 너무 좋습니다. 수녀님, 늘 건강하시고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 이해인> 감사합니다.

    ◇ 김현정> 오늘 귀한 시간 정말 감사합니다.

    ◆ 이해인> 동백꽃 웃음으로 또 인사 마무리할게요. 감사합니다.

    ◇ 김현정> 고맙습니다. 이해인 수녀였습니다.(속기=한국스마트속기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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