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사진=연합뉴스)
북한이 이례적으로 나흘씩이나 개최한 당 전원회의에서 대내외 정세에 대한 광범위한 분석과 대책을 밝히면서도 대남 메시지는 전혀 내놓지 않아 그 배경이 주목된다.
노동신문 등 북한매체들은 1일 지난달 28일~31일 열린 당 중앙위 제7기 제5차 전원회의 결과를 보도하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지시 내용을 전했다.
김 위원장은 자력갱생을 통한 국방과학기술의 성과 등을 치하하고 내부결속을 강조하면서도 미국의 제재·압박에 대해서는 '정면돌파'를 선언하며 각을 세웠다.
그는 "미국이 시간을 끌면 끌수록, 조미(북미)관계의 결산을 주저하면 할수록 예측할 수 없이 강대해지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위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으며 더욱더 막다른 처지에 빠져들게 되어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의 강도적 태도에 맞서 전략무기 개발을 더 활기차게 추진할 것을 지시한 뒤 "세상은 머지않아 북한의 새로운 전략무기를 목격하게 될 것"이라고 확언했다.
그는 "자신들의 핵·미사일(ICBM) 시험 중단에도 미국은 오히려 군사 압박과 제재로 응답한 것"을 비난하며 "이러한 조건에서 지켜주는 대방도 없는 공약에 우리가 더 이상 일방적으로 매여있을 근거가 없어졌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 2018년 4월 당 전원회의 결정인 핵·미사일 시험 모라토리엄(유예)을 해제하고 도발을 재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철회해야 대화에 응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고, 현재의 북미간 교착상태는 장기화가 불가피하며 자력갱생과 제재 간의 명백한 대결구도를 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다만 강력한 핵 억제력을 강조하면서도 "억제력 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금후 대조선 입장에 따라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말해 대화의 여지도 남겼다.
(사진=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그러나 미국에 대한 비판과 달리 남측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 자체가 없다시피 했다.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비난하며 미국이 "첨단 전쟁장비들을 남조선에 반입하여 우리를 군사적으로 위협했다"고 주장하는 대목에서 '남조선'이 딱 한 차례 거론됐을 뿐이다.
북한이 지난해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에는 남측에 상당 부분 책임을 전가하며 '통미봉남'으로 돌아서긴 했지만 아예 대놓고 무시하는 '패싱' 전략은 취한 적이 없다.
일각에선 북한이 오히려 새해 들어 한미동맹을 흔들기 위해 남측에 민족공조냐 한미공조냐의 선택을 요구하는 공세적 전략을 취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었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 북한은 전혀 예상 밖의 태도를 보임에 따라 진의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다소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북한이 신년사나 신년 메시지에서 대남 메시지를 빼놓지 않았던 전례로 볼 때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에 포함될 가능성은 아직 남아있다.
다만 김 위원장의 신년사 발표가 예상되던 이날 오전 9시 조선중앙방송이 전날 끝난 당 전원회의 결과와 결정서 내용을 약 55분 동안 방송한 것이 변수다.
2016년과 2017년에는 신년사가 정오에 발표됐기 때문에 이날 중에는 김 위원장이 신년사를 직접 낭독할 가능성이 있지만, 올해는 전원회의 결과로 신년사를 갈음할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럴 경우 북한은 미국에 대해서는 '파렴치'하다거나 '강도적 태도'라는 거친 비판을 가하면서도 김 위원장의 육성 발표는 피함으로써 나름대로 수위를 조절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날 전원회의 결과에서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직접 거명하는 내용은 없었다.
지난 연말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을 자극하는 발언을 했을 때 북한이 "우리 국무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을 향하여 아직 그 어떤 표현도 하지 않았다"고 밝힌 것의 연장선상으로 읽힌다.
두 정상의 '친분관계'를 최후 보루로 삼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