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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청소년 배우들이 겪은 현장은 혹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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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이·청소년 배우들이 겪은 현장은 혹독했다

    [현장]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노동인권 개선 토론회
    미취학 아동부터 고등학생까지 103명 설문조사
    출연료 미지급 경험 28.16%, 드라마 출연 계약 내용 모른다 29.13%, 사고 예방 교육 없음 92.23%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있으나 내용 구체성 부족
    해외에서 시행 중인 아동인권 보호관 제도 등 제안

    (사진=pixabay)

     

    "과거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는 우리 아이들에게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이제는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가진 힘이 클수록 책임은 크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은 여립니다. 그래서 더 아픕니다. 아이들은 어립니다. 그래서 말을 못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가장 먼저 우리는 원래 있던 곳에 서 계시면 여러분 귀에 들리는 것은 오직 힘세고 목소리 큰 어른들의 이야기뿐입니다. 지금까지 정부에서는 우리의 현장을 위해 여러 가지 새로운 울타리들을 내놓았습니다. 그것들이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었던 것은 그 과정에서 보다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못했다는 점 때문이었습니다. 제발, 제발 같은 실수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가장 목소리가 작은 아동 청소년 보조출연자와 연습생들까지 직접 만나서 꼭 목소리를 들어주십시오. 더 이상은 힘센 어른들의 목소리에 밀려서 아이들이 잘 먹고 잘 자고 충분히 배우고 몸도 마음도 다치지 않고 건강히 성장할 수 있는 권리가 뒷전으로 밀리는 일이 없기를 진심으로, 진심으로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업계 아이들에게 선배인 사람으로서 한시바삐 아이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배우 허정도는 2018년 1월 자신의 블로그에 글을 올려 촬영 현장의 열악한 환경과 위험성을 짚고, 특히 이 문제에 취약한 아동·청소년 연기자들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약 2년 후인 14일 오후 3시,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노동인권 개선 토론회'에서 허정도는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우리 아이들에게 일어날 일들에 대해서 저뿐만 아니라 여러분도 '이제는' 책임이 있다"라고.

    더불어민주당 김영주·민병두·우상호·노웅래 의원실과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팝업(Pop-Up, 이하 '팝업') 주최로 열린 이날 토론회에서는 아동·청소년 연기자들이 직접 참여한 실태조사와 심층 인터뷰 결과,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들을 충분히 보호하지 못하는 현행법의 개선 방향 등이 발표됐다.

    ◇ 아동·청소년 연기자들의 학습권-노동권, 잘 지켜지고 있을까

    미취학 아동부터 고등학생까지 총 103명이 참여한 온라인 설문조사(조사 기간 2019년 5월 13일~6월 30일)에서는 아동·청소년 연기자들의 학습권, 노동권, 노동환경 및 복지, 건강 등이 보장되고 있는지를 알아봤다. 우선, 학습권의 경우 103명 중 88.34%인 91명이 학교에 다녀 정규 교과 과정을 거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드라마 촬영 기간 중 결석/조퇴 빈도는 주 5일 중 1일이 40.66%(37명)로 가장 높았다. 학교 조퇴 및 결석 동의 여부는 그때그때 수시로 동의를 구했다는 응답이 58.43%로 가장 높았다.

    노동권의 경우, 응답자의 29.13%(30명)가 드라마 출연 계약 내용에 대해 잘 모른 채 계약했다고 답했다. 제작사 및 방송사 문건으로 계약했다는 응답은 23.3%(24명)였고, 구두계약은 16.5%(17명), 등급계약은 10.68%(11명), 기타는 8.74%(9명)였다. 표준계약서를 썼다는 비율은 5.83%(6명)였다. 출연료는 사전 협의했다는 응답이 59.22%(61명)로 사전 협의 없었다는 응답 37.87%(39명)보다 상당히 높았다.

    일을 하고도 돈을 받지 못하는 출연료 미지급 사태를 겪은 아동·청소년 연기자들도 있었다. 출연료를 받지 못했다는 응답이 28.16%(29명)였다. 미지급 규모는 100만 원 이상~300만 원 미만이 34.48%(10명)로 가장 높았다. 10만 원 이상~50만 원 미만은 20.69%(6명), 10만 원 미만은 6.9%(2명), 50만 원 이상~100만 원 미만 6.9%(2명), 300만 원 이상은 3.45%(1명)였다.

    1일 최장 촬영 시간은 12시간 이상~18시간 미만을 꼽은 응답자가 36.89%(38명)로 가장 높았다. 6시간 이상~12시간 미만이 22.33%(23명), 18시간 이상~24시간 미만이 21.36%(22명)로 그 뒤를 이었다. 야간 촬영에 참여해 봤다는 응답은 67.96%(70명), 참여해 본 적 없다는 응답은 26.21%(27명)였다. 야간 촬영 때는 특별한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54.29%(38명)로 가장 높았다. 동의를 수시로 구했다는 응답은 25.71%(18명), 드라마 제작 초반 한 번만 동의를 구했다는 응답은 18.57%(13명)였다.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팝업과 더불어민주당 김영주·민병두·우상호·노웅래 의원실 공동 주최로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 노동인권 개선 토론회-「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개정방향을 중심으로'가 열렸다. 왼쪽부터 배우 허정도, 김두나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이종임 문화연대 집행위원, 이한솔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 박희아 대중문화평론가, 김은화 국가인권위원회 기획재정담당관, 이미영 문화체육관광부 대중문화산업과 주무관, 이재인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 사무관, 나금륜 방송통신위원회 방송기반총괄과 사무관 (사진=김수정 기자)

     

    야간 촬영 시 대기 장소로는 개인차량을 꼽은 응답자가 63.01%(46명)로 가장 높았다. 촬영장 이동 버스는 15.07%(11명), 제작사가 제공한 숙소는 8.22%(6명), 촬영 현장 5.48%(4명), 대기실은 4.11%(3명)에 그쳤다. 악천후 시 촬영해 본 적 있다는 응답자는 67.96%(70명)였고, 이들 중 55.71%(39명)는 아무런 준비 없이 촬영을 강행했다고 답했다. 화재 시 대피 요령이나 사고 예방 교육 여부에 관해서는, 교육을 받은 적 없다는 응답이 92.23%(95명)로 압도적이었다.

    세트장 촬영 시 불편사항으로는 대기 장소와 휴식공간 부족(37.86%, 39명), 냉·난방기 미비(20.39%, 21명), 먼지 등 실내공기(11.65%, 12명) 등이 제기됐다. 불편한 것 없이 대체로 만족한다는 응답도 21.36%(22명)였다. 식대와 야근 수당, 숙박비 제공 여부(복수응답)에서는 해당 없음이 34.23%(38명)로 가장 높았다. 식대를 받았다는 응답은 24.32%(27명), 숙박비를 받았다는 응답은 13.51%(15명), 야근 수당을 받았다는 응답은 6.31%(7명)였다.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 욕을 들은 적 있다는 응답은 18.10%(19명), 외모 지적 등 다이어트와 성형 강요를 받았다는 응답은 2.86%(2명)였다. 이 같은 피해 본 적이 없다는 응답이 66.67%(70명)로 가장 높았다. 피해 이후에는 캐스팅에 불이익이 있을까 봐 참고 넘어갔다는 응답이 40%(10명)로 가장 높았고, 문제를 일으키기 싫어서 참고 넘어갔다는 응답이 36%(9명)였다. 또한 이들 중 69.9%(72명)가 촬영 중 수면 시간이 부족하다고 답했다.

    8명이 참여한 심층 인터뷰에서는 각자가 겪은 촬영 현장에서의 경험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아침 10~11시까지 오라고 해 놓고 촬영이 늦어져 예정에 없던 밤을 새우고, 촬영을 이유로 새벽에 나오라고 하는 요구를 받고, 대기실이 없어 '알아서' 기다려야 했으며, 추운 날씨에도 난로 등 기본적인 난방 장비가 지급되지 않았다는 게 아동·청소년 배우들과 보호자의 설명이다.

    또한 단역이나 보조출연자 등 비중이 작을 때 차별이 극심하다고 전했다. 촬영이 지연돼서 간식이 나올 때도 남는 걸 먹어야 하고, 배경 취급(마치 무대 배경처럼 신경 쓰지 않는다는 의미)당하거나 대기 시간이 무한정 길어지는 게 다반사이며, 조금만 잘 못 해도 화를 내는 행위는 "이 바닥에서 기본적으로 있는 차별"이라는 것이다. 이밖에도 한여름에 물 마실 시간도 주지 않고 촬영을 강행한 적이 있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원치 않는 접촉이나 언어 성희롱을 당했다 등의 응답도 있었다.

    ◇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실효성' 더하기 위해서는

    이처럼 촬영 현장에서 일어나는 문제점을 보완하거나, 문제가 일어나기 전에 예방할 수는 없을까. 대중문화예술산업 종사자들에게 적용되는 법이 존재한다. 2014년 제정된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이다. 하지만 대중문화예술인들이 맺는 대중문화예술용역제공계약이나 대중문화예술기획업무계약을 '근로계약'으로 보지 않아 근로기준법 적용이 안 되고, 노동 관계법으로도 규율되지 못해 기본적인 노동조건조차 보장받지 못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김두나 변호사는 '팝업'의 입장과 요구를 정리해, 현행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점이 고쳐져야 할지 설명했다. 주된 내용은 △용역 제공 시간 세분화 △학습권 보장을 위한 방안 마련 △권익 침해 금지 기준 마련 △산업 안전을 위한 조치 마련 △아동인권 보호관 제도 도입 및 아동인권 교육 실시 △재산권 보호를 위한 신탁제도 도입 등 6가지다.

    현재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에서는 용역 제공 시간을 15세 미만, 15세 이상으로만 나누어 두었다. 김 변호사는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이 취학 중인지, 학기 중인지, 의무교육 기간인지 여부와 연령에 따른 성장·발달 단계 등을 고려해 △6세 미만 △6세 이상 12세 미만 △12세 이상 15세 미만 △15세 이상으로 세분화해 1주 및 1일당 용역 제공 시간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참고로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생후 15일~6개월 미만 △6개월~2세 미만 △2세~6세 미만 △6세~9세 미만 △9세~16세 미만 △16세~18세 미만 등으로 세분화한 규정을 두고 시행 중이다.

    배우 허정도가 본격적인 발제에 앞서 여는 말을 하고 있다. (사진=김수정 기자)

     

    학습권 보장을 위한 방안으로는 대중문화예술사업자가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에게 결석이나 자퇴를 강요하지 않을 것, 총 결석일수 제한·기초학력 보장을 위한 학습 프로그램 마련, 최저학력 기준 마련, 장기간 대중문화예술용역 제공 시 현장 교사 배치 등의 방법으로 학습권 보장 등이 나왔다.

    아동인권 보호관 제도는 용역 제공 현장에서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의 건강과 안전, 복지를 위한 조치가 제대로 이루어지는지, 용역 제공 시간 또는 휴식 시간이 잘 지켜지는지, 인권침해 위험에 놓이지는 않는지 등을 관리하고 감시하는 실질적인 장치의 한 예로서 제안됐다. 비슷한 제도는 이미 해외에서 시행 중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수업뿐 아니라 연예산업과 관련된 모든 활동에 종사하거나 고용된 16세 미만 아동의 건강·안전·도덕을 관리하고 주의를 기울일 책임이 있는 '스튜디오 교사'를 둔다. 미국 뉴욕주에서는 16세 미만 아동의 부모나 후견인은 아동의 업무시간 동안 아동을 동반하고 안전과 복지를 감시하는 책임자를 지정하게 하고 있다. 영국은 아동을 돌보고 통제하며 아동의 활동·공연·리허설 당시 보호와 지원 업무를 맡는 '샤프롱'(Chaperones)이라는 제도가 있다.

    박희아 대중문화평론가는 아동인권 보호 감독관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 "신인개발팀이라는 부서 역할이 굉장히 중요하다. 아직 자아가 (완전히) 형성되기 이전의 청소년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하기 때문에, (그 부서에) 아동·청소년 인권에 대해 주지시킬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재인 고용노동부 근로기준정책과 사무관은 "대중문화예술인들의 근로자성이 인정되기 쉽지 않다"라며 "(현행 근로기준법이) 아동·청소년 대중문화예술인들의 특수성을 반영하고 활동을 충분히 보호하기에 한계가 있는 건 사실"이라고 전했다. 다만, 고용노동부에서는 전국 각 지역 지방청·지청이 있어 접근성이 높은 만큼, 청소년을 위한 근로 관련 교육과 권리 구제를 위한 무료 대리 서비스를 하고 있다고 부연했다.

    나금륜 방송통신위원회 방송기반총괄과 사무관은 "제작에서의 가이드라인이 어느 정도이고 어떻게 준수되고 있는지가 방송사별로 천차만별이더라. 방송사들과 논의해 제작가이드라인을 만들고, 아동·청소년을 보호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미영 문화체육관광부 대중문화산업과 주무관은 "기획사의 자정 노력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며 "관계자들 세미나, 간담회, 교육 등을 통해 좀 더 안전하고 즐겁게 활동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김은화 국가인권위원회 기획재정담당관은 "이 상황은 개선되어야 할 필요가 있고, 이에 따른 사회적 인식도 병행되어야 한다"라며 "올해 청소년 노동인권 상황 실태조사를 준비 중"이라고 전했다.

    한편, 이날 토론회를 주최한 '팝업'에는 공인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문화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아동인권위원회, 민주언론시민연합, 언론개혁시민연대, 정치하는엄마들, 청소년노동인권 노랑, 한국방송연기자노동조합, 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등 9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팝업은 지난달 10일부터 오늘(15일)까지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개정을 요구하는 온라인 응원 투표 '프로텍트 101'을 진행한다.

    대중문화예술인 노동인권 개선을 위한 팝업은 오늘(15일)까지 다음 카카오 같이가치를 통해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 개정을 요구하는 응원 투표 '프로텍트 101'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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