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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깜이에 정치권에 줄 서'…수도권 첫 민선 체육회장 선거 '낙제점'

사회 일반

    '깜깜이에 정치권에 줄 서'…수도권 첫 민선 체육회장 선거 '낙제점'

    “체육회장 선거는 총선 예비선거 성격” 발언도 나와
    후보자 공약·정보·자질검증 부재
    돈줄 쥔 지자체가 원인…선거제 개선도 필요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이 2019년 12월 5일 서울 송파구 서울올림픽파크텔에서 열린 지방체육회장 공정선거 실천 결의 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체육 영역이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폐해를 막기 위해 올해 처음 실시된 체육회장 선거가 끝났지만 오히려 ‘정치권에 줄을 선 선거’라는 비판이 나온다.

    당선 소감을 정치 대결의 승리로 자평하는 당선자가 나오는가 하면 자치단체장과의 관계를 앞세워 선거운동을 벌이는 현상이 반복됐다. 급기야 자치단체장이 특정 후보를 지지했다며 검찰에 고발하는 사태도 벌어지는 등 부작용과 폐해가 많아 낙제점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 체육회장 선거는 4.15 총선의 예비선거?

    지난 8일 인천시체육회장에 당선된 강인덕(63)씨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보수가 승리한거다. 4·15 총선의 예비선거로도 볼 수 있는 이번 선거에서 이겨 의미가 크다”고 당선소감을 밝혔다.

    강씨의 이같은 발언은 그가 더불어민주당이 인천시장과 다수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지역에서 자유한국당 색채가 짙은 후보였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그는 자유한국당 소속으로 오는 4월 총선에 출마할 것으로 예상되는 유정복 전 인천시장의 측근으로 분류된다. 유 전 시장 재직 시절 인천시 체육회 상임부회장과 프로축구 인천유나이티드 사장을 지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씨의 발언은 정치적으로 악용되는 체육계의 독립을 위해 실시된 이번 선거의 취지를 이해하지 못한 발언으로 평가받는다.

    경기도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았다. 이원성(60) 경기도체육회장 당선자는 선거운동을 벌이면서 이재정 경기도교육감을 등장시켰다.

    상대후보였던 기호1번 신대철 후보는 이재명 경기도지사와 함께 찍은 사진을 전면에 내세웠다. 신 후보는 선거 홍보물에 이 경기지사와 악수하는 사진과 함께 “지자체장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 아십니까?”라는 문구를 넣었다.

    광역단위 체육회장 선거가 정치권의 선거와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자 기초단위의 체육회장 선거 역시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인천 중구 체육회장에 당선된 오동원(56)씨는 아예 선거 공약으로 “구청장과 함께 체육회 활성화 매진”을 내세웠다. 그는 후보 출마 영상에서도 “구청장의 추전으로 출마했다”고 당당히 밝히기도 했다.

    ◇ 후보 이력·공약 없는 지역 수두룩…자질 검증도 안돼

    이번 체육회장 선거는 후보자 정보를 제대로 제공하지 않아 유권자들 사이에서도 ‘깜깜이’ 선거라는 볼멘소리가 지적됐다.

    일례로 인천에서는 연수구·남동구·계양구는 후보자의 이름만 공개했을 뿐 후보자 사진과 공약은 게재하지도 않았다. 동구와 부평구·옹진군은 아예 체육회 홈페이지도 없거나 해당 지자체 홈페이지에 선거 관련 공지도 하지 않았고 선거를 치렀다.

    단독 입후보로 선거를 치르는 경우 공약 발표가 의무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공약 발표와 투표도 없이 체육회장이 당선된 지역도 나왔다.

    노골적으로 지자체장과의 인연을 과시하는 후보도 난무하자 급기야 이를 검찰에 고발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인천 미추홀구체육회장 선거에 출마한 김경미 후보는 지난 14일 김정식 미추홀구청장을 업무방해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김 후보는 김 구청장이 지난해 11월 한 식당에서 체육계 관련자들에게 특정 후보 지지를 요청하면서 해당 후보가 당선되지 않으면 예산을 삭감하겠다는 발언하는 등 사전선거 운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 구청장은 해당 기간은 후보자도 정해지지 않았고 현직 구청장으로서 특정 후보를 지지한다고 해서 얻을 이익도 없다며 김 후보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후보자의 자질 검증 역시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동원 인천 중구체육회장 당선자의 경우 고교 교사 재직 시절인 2004년 학생의 답안지를 조작한 혐의(업무방해 등)로 구속기소돼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은 이력이 있었지만 이같은 사실을 감춘 채 출마해 당선됐다.

    당시 그는 8개월간 5차례에 걸쳐 검사 아들(16)을 중간·기말고사 기간에 따로 불러 성적이 좋은 학생의 답안지를 베껴 제출하도록 한 혐의로 처벌받았다. 그는 선거 기간 동안 이에 대한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언론의 취재에 대해 모두 무응답으로 일관했다.

    ◇ 체육회 예산 80%가량 보조금 지원…‘돈줄’ 쥔 지자체가 원인

    그동안 광역·기초자치단체 체육회장은 각 지역 단체장이 당연직으로 겸직했다. 이 때문에 체육회는 그동안 선거 때 선거 외곽조직으로 활용되는 사례가 잦아 체육인들의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았다.

    정치인이나 기업인들이 맡는 경우도 많아 정치적 진출의 이동통로로도 악용되는 사례도 많았다.

    문제가 커지자 국회는 2014년 국회법을 제정, 국회의원의 체육단체장 겸직을 금지한 데 이어 2018년 국민체육진흥법을 개정, 지자체장의 체육회장 겸직 금지 조항을 신설했다.

    체육단체들이 정치적인 영향력에서 벗어나 자율성과 독립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번에 처음 체육회장 선거가 치러진 이유이기도 하다.

    일각에서는 이번 체육회장 선거가 이처럼 정치권에 줄 서기, 깜깜이 선거로 전개로 된 데는 체육회가 평균적으로 예산의 80%가량을 지자체에서 보조금 지원을 받아 경제적으로 독립할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지자체장과 관계가 좋지 않으면 당장 운영조차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정치권에 줄을 서야 한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체육계 관계자는 “지자체들이 예산을 틀어쥐고 있는 상황에서 이같은 선거는 앞으로도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며 “나아가 후보들의 자질이나 정보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는 문제는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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