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언 장녀 유섬나 (사진=연합뉴스)
정부가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지출한 비용의 일부를 고(故)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자녀들이 배상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이는 정부가 '세월호 참사' 당사자들을 상대로 구상금을 청구한 여러 소송 중 첫 승소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2부(이동연 부장판사)는 17일 정부가 세월호피해지원법(제42조 2항)에 근거해 유 전 회장의 네 자녀 등을 상대로 "'세월호 참사' 수습에 쓰인 비용과 피해를 배상하라"고 제기한 구상금 청구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구상금이란 채무를 대리변제한 사람이 채권자를 대신해 채무자에게 반환을 청구하는 금액을 말한다.
재판부는 정부가 지난 2017년 말일을 기준으로 세월호 관련 집행비용을 산정해 청구한 4213억 가운데 3723억에 대해서만 정부의 구상권을 인정했다. 세월호 참사의 구체적 책임비율은 각각 유 전 회장을 포함한 청해진해운 임직원들이 70%, 국가가 25%, 화물 고박업무를 부실하게 한 회사(우련통운)가 5%라고 특정했다.
재판부는 유 전 회장 일가를 참사 발생의 직접적 '원인제공자'로 인정하면서 이들에게 배상 책임이 있다고 봤다. 다만 지난 2014년 10월 상속포기를 신청해 법원에서 받아들여진 장남 유대균씨는 유 전 회장의 배상의무도 물려받지 않는다고 봤다.
이에 따라 유 전 회장의 세 자녀(유혁기·유섬나·유상나)는 배상액의 70%에 해당하는 2606억원 중 일부 변제금액을 뺀 1700억원을 각각 557억·571억·572억씩 나눠 부담하게 됐다.
재판부는 유 전 회장의 권한과 지위, 세월호 관련 업무지시 등을 종합해볼 때 세월호 운항을 감시·감독할 의무가 있는 '업무집행 지시자'가 유 전 회장임을 명시하면서 "유 전 회장의 조직적 감시소홀의 결과로 발생한 참사에 따른 손해배상 책임이 있고 유 전 회장의 자녀들은 망자의 손해배상 의무를 3분의 1씩 상속한다"고 판시했다.
(사진=연합뉴스)
재판부는 세월호 참사의 발생배경에는 국가의 책임도 존재함을 짚었다. 헌법상 국민의 생명과 신체를 보호할 의무는 국가에게 있기 때문에 정부도 '연대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피고들의 배상은) 이 사건과 관련돼 지출한 모든 비용이 아니라 이 사건과 상당 인과관계가 있는 비용에 한정된다"며 "국가는 헌법과 재난·안전관리기본법, 세월호피해지원법 등에 따라 국민의 생명·신체에 대한 포괄적 보호의무, 재난발생 예방 및 피해 최소화 의무 등을 부담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가가 이 사고와 관련해 지출한 비용 전부를 원인제공자에게 구상하도록 하는 것은 헌법과 법률이 국가에 부여한 의무 전부를 원인제공자에게 전가할 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같은 맥락에서 재판부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및 세월호진상조사특별위원회, 분향소 운영 등 각종 추모비용 등은 국가의 몫이라고 판단해 배상액 산정에서 배제했다.
앞서 정부는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유대균씨 개인을 상대로 1870억원대 구상금 청구소송을 냈지만 지난해 2월 대법원에서 최종 패소한 바 있다.
당시 재판부는 유씨가 청해진해운의 대주주임은 인정하면서도 "유씨가 세월호를 운영한 청해진해운의 경영에 관여하며 세월호의 수리·증축·운항 등과 관련해 업무집행을 지시하거나 가담했다고 볼 증거가 부족하다"며 상고를 기각했다.
대법 판례를 참고하면 법원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유씨의 직접 책임은 인정하지 않았지만, 책임자인 유 전 회장의 '상속자'로서 대물림된 배상 책임은 있다고 본 셈이다.
한편 정부가 지난 2015년 11월 세월호 선장과 선원들, 청해진해운을 상대로 제기한 구상금 청구소송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여전히 계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