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혁신통합추진위원회에서 박형준 위원장이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사진=박종민 기자)
중도-보수 진영의 통합과 신당 창당을 목표로 활동 중인 혁신통합추진위원회(혁통위)가 와해될 위기에 처했다.
자유한국당과 새보수당 간 합당 논의에 있어서 새보수 측이 '양당 협의체'를 제안한 반면, 한국당은 이를 사실상 수용하지 않으면서 통합 협상은 중단 상태에 빠졌다. 만약 향후 새보수당이 혁통위에서 빠지게 되면 사실상 한국당과 시민사회단체만 남게 돼 정치 협상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게 된다.
새보수당 소속 혁통위 대표인 지상욱‧정운천 의원은 17일 회의에 불참했다. 각각 일정과 건강상의 이유를 들었다. 하지만 전날 박형준 혁통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한 터라, 요구사항이 불발된 데 따른 불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박 위원장은 이날 회의에서 "혁통위는 범(汎)보수 통합을 해 달라는 국민의 여망을 갖고 마련된 자리"라면서 통합 논의가 혁통위를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자신에 대한 사퇴 요구도 일축한 셈이다.
앞서 새보수당은 한국당과의 '양당 협의체'를 제안한 데 대해 박 위원장이 비판하자, "박 위원장이 한국당의 편을 들고 있다"며 사퇴를 요구했었다. 반면 혁통위 구성원들은 '총선 출마 희망자의 위원직 사퇴' 등 새보수당의 요구를 들어줬음에도 통합 논의를 별도로 진행하려 한다며, 새보수당에 반감을 드러낸 바 있다.
혁신통합추진위원회 박형준 위원장이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혁신통합추진위원회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한국당 소속 혁통위 대표인 김상훈 의원은 이날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통합 관련 기본적인 논의는 혁통위를 중심으로 하고, 정당 간 구체적 논의 사항은 당분간 물밑 접촉을 통하겠다"고 말했다.
이는 새보수당이 요구한 '양당 협의체' 자체에 대해선 수용하겠다는 의사를 밝히지 않은 것이지만, 그렇다고 양당의 합의 가능성을 완전히 닫은 것도 아닌 애매한 입장이다. 그는 "혁통위는 큰 문제없이 논의가 계속 진행되고 있다"고만 했다.
하지만 새보수당은 한국당의 미온적인 협상 태도에 반감을 드러내는 분위기다. 특히 이날 김형오 전 국회의장을 4‧15 총선 공천관리위원장에 임명한 것을 크게 불쾌해 하는 기류가 감지된다.
우선 하태경 책임대표는 이날 대표단 회의에서 황교안 한국당 대표에 대한 최후통첩 성격의 발언을 했다. 하 대표는 "통합의 법적인 완성을 위한 양당 통합 협의체를 거부하는 것은 통합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며 "황 대표의 답변 여부에 따라 중대결단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상 혁통위를 비롯한 한국당과의 통합 논의를 중단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면서 황 대표가 '양당 협의체'에 대해 입장을 내지 않는 데 대해 "결혼을 하자면서 양가 상견례는 생략하고 일가친척 덕담만 듣자는 셈"이라고 비판했다. 한국당과 새보수당의 양자 회동이 상견례에 해당한다면, 통추위는 결혼을 중매하는 일가친척으로 자문기구로서 역할에 한정지은 것이다.
새로운보수당 하태경 책임대표가 17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당대표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하 대표는 회의 뒤 기자들과 만나 "한국당이 우리의 3원칙을 수용하는데 거의 3달이 걸렸는데 그렇게까지 기다릴 수는 없다"며 "우리가 합의한 것은 신당 합당이고, 이를 위해선 양당 간 통합 협의체는 법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새보수당이 이 같이 강경한 입장을 취하는 이유는 황 대표의 속내가 '통합을 원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특히 김형오 공관위원장을 일방적으로 임명한 것이 큰 계기가 됐다.
한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통합의 내용이 합당 혹은 신당 창당이라면 공관위원장을 상의해서 앉히거나, 통합 이후로 미뤘어야 했다"며 "바로 임명한 것은 창당할 마음이 없다는 것이고, 그것은 한국당이 새보수당이 통합이 파트너가 아니라 인수‧합병(M&A)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는 방증"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유승민 의원의 3원칙 중 세 번째 원칙(새 집 짓기)가 무엇인가, 신당 창당이다"라며 "3원칙 중 세 번째 원칙을 지킬 마음이 없었다는 것을 황 대표가 자인한 격과 같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