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오랜 진통 끝에 지난 13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변화 가운데 하나는 바로 경찰에 '1차적 수사 종결권'을 부여한 대목이다. 상하관계 속에 A부터 Z까지 지휘를 받던 경찰이 이제 검찰과 대등한 높이에 선 것이다.
자율성을 보장받은 만큼 앞으로는 경찰의 최초 수사 결론이 뒤이은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도 상당 부분 영향력을 미칠 전망이다. 수사기관은 물론 법조계와 사건 당사자들 사이에서 미묘한 지각변동이 일고 있는 이유다.
경찰 고위 관계자는 "이전에는 재판에 넘겨지냐마냐 여부의 운명이 달린 검찰 단계에서 변호사 선임 등 방어권 행사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경찰 단계에서부터 초반에 승부를 봐야한다는 인식이 점차 강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앞으로는 경찰 단계에서부터 가능한 법적 조력을 받으며 수사에 대응하라고 권한다.
황도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상임위원장(변호사)은 "검찰에서도, 법원에서도 경찰 조사에서 작성된 첫 서류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데 이제 그 중요도가 더 커졌다"며 "첫 단추를 잘못 꿰면 재판에 넘겨져서도 끝까지 악영향을 미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변호인들은 법적 관점에서 유불리를 따져가며 도와준다. 경찰에서 출두하라고 통보할 때부터 바로 변호사 선임을 검토하는 게 국민 입장에서 제일 좋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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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민준 형사전문 변호사도 "경찰이 수사 종결권을 가짐으로써 이전과 다르게 경찰 수사에 총력 대응할 필요성이 높아졌다"며 "가급적 경찰 조사 때부터 변호사를 선임하는 게 방어권 행사 차원에서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는 경우뿐만 아니라, 피해를 입어 수사를 요구하는 고소인도 이제는 경찰의 수사 종결권을 고려해 법적 준비에 나서야 한다.
대형 로펌 출신 황석진 변호사는 "경찰이 불기소 의견으로 사건을 종결하면 피의자는 좋지만 반대로 고소인은 억울할 수 있다"며 "정확한 수사가 진행되려면 고소인도 경찰 단계부터 변호사의 조력을 받아 법리를 검토하고, 일정 수준의 형태와 효력을 갖춘 고소장을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수사권 조정으로 경찰 단계부터 선제적으로 법적 대응에 나설 필요성이 높아지면서 최근 들어 여러 로펌에서는 경찰 출신 변호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추세다.
실제로 국내 대형 로펌 '빅4'는 모두 수사권 조정을 앞두고 3년새 경찰 출신 변호사를 적게는 1.5배에서 많게는 2배까지 대폭 늘렸다. 몸값도 사법고시 출신 경찰 총경의 경우 지방검찰청 부장급 이상 대우를 받은 경우도 있었다.
이같은 흐름 속에 현직 경찰들 사이에서는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을 준비하려는 움직임이 부쩍 늘고 있다.
서울 한 일선 경찰서 A경위는 "통상 판·검사에만 해당돼온 '전관'이라는 범주에 경찰이 틈새를 파고들기 시작했다"고 평가했고, 경찰대 출신 B경감은 "여건만 되면 로스쿨에 진학해 변호사 자격증을 따려는 경찰이 주변에 한둘이 아니다"고 밝혔다.
한편 수사권 조정을 둘러싼 검경 간 신경전은 법안이 통과된 이후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구체적인 시행 방안이 담길 대통령령의 제정을 앞두고 양측 모두 물러설 수 없는 쟁점들이 산적해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1년에도 경찰에 수사 개시·진행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형사소송법 개정이 이뤄진 뒤 세부 내용을 담은 대통령령을 만들고자 검경이 협상했지만 합의안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특히 이번에는 조율 작업을 청와대가 주도할 가능성이 높아 의견 수렴과 반영 과정에서 큰 마찰이 빚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