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대명절인 설 연휴가 시작된 24일. 집마다 창문 너머로 웃음소리가 들려오지만, 5년 전 이혼하고 10세 딸을 홀로 키우는 양육비 미지급 피해자 손모(37)씨 얼굴엔 근심이 가득하다.
그의 목에는 깁스가 감겨 있다. 법원 명령을 무시하면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고 있는 전 남편 박모(37) 씨를 지난주에 찾아갔다가 폭행당한 탓이다.
손씨가 연합뉴스 기자에게 털어놓은 사연은 기구했다.
손씨는 2009년 지인 소개로 박씨를 만나 이듬해 결혼했으나 결혼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예의 바르고 멀쩡한 사람처럼 보였던 박씨가 가정폭력을 일삼자 손씨는 결혼 2년 만에 딸을 데리고 집을 나왔다. 손씨는 박씨를 고소하고 이혼소송도 제기했다.
법원은 형사재판에서 박씨에게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이혼 재판에서는 '박씨가 손씨에게 위자료 3천만원을 지급하고, 아이가 성년이 될 때까지 매월 60만원씩 양육비를 지급하라'는 명령이 내려졌다. 소송 비용 대부분도 전 남편 박씨가 물도록 법원은 판결했다.
하지만 법원의 명령은 박씨에겐 휴짓조각에 불과했다. 이혼한 지 5년이 지났지만, 박씨가 손씨에게 지금까지 준 돈은 70만원에 불과하다. 위자료나 소송비용은 물론이고 양육비도 거의 지급하지 않았다.
생활고에 시달리는 손씨는 시민단체 '양육비해결연합회'에서 활동하며 자신과 비슷한 피해자들을 만나 마음의 위안을 받고 용기를 얻었다. 전 남편이 일하는 시장으로 찾아가 시위도 벌였다. 하지만 전 남편 박씨에겐 소 귀에 경 읽기였다.
손씨는 "양육비를 달라고 피켓을 들고 1인시위도 했지만 전 남편은 무시하거나 도리어 역정을 냈다"며 "일부 상인들은 전 남편에게 동조하며 나에게 욕하거나 물을 뿌리고 '양육비 줄 돈으로 나이트나 가자'는 등 모욕적 언행을 했다"고 말했다.
손씨는 지난 17일 전 남편 박씨를 찾아가서 사람들 앞에서 '양육비를 왜 안 주냐'고 물었다가 전 남편과 그의 친척으로부터 폭행당해 뇌진탕을 진단받고 목에 깁스를 하게 됐다.
전 남편 박씨는 손씨 등을 폭행한 혐의로 경찰에 입건됐으나, 자신도 맞았다며 쌍방폭행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손씨는 양육비 지급을 강제할 실효성 있는 제도가 사실상 전무한 현실을 개탄했다.
그는 "양육비 지급이 실제로 이행되는 사례는 지급 의무자에게 직장이 있고 주거지가 확실한 경우"라며 "재산 명의를 친척들에게 이전하거나 위장전입하는 수법으로 소득과 재산이 포착되지 않도록 하면 양육비를 받아낼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실제로 손씨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여성가족부 산하 양육비이행관리원을 통해 박씨를 상대로 이행명령과 채권 추심 등 8건의 소송을 제기했다. 그러나 박씨가 열흘간 감치된 것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조치가 없었다. 손씨는 양육비이행관리원에서 "여기서 해결하기 어렵다"는 말까지 들었다고 한다.
손씨는 "세금 체납자들에게는 차량 번호판을 떼는 등 방식으로 강제집행을 하지만 양육비 미지급자들에게는 이런 조치가 없다"며 "줘야만 할 양육비를 안 줘도 불편함이 없기 때문에 양육비 미지급이 발생한다. 신상 공개나 운전면허 제한 등 양육비 지급을 강제로 이행시킬 수 있는 제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무책임한 부모들이 자식에게 책임질 수 있도록 국가가 강제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 양육비 미지급 피해를 받는 사람들과 연대하고 함께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전 남편 박씨는 양육비를 주지 않는 부모들의 신상을 공개하는 '배드파더스(Bad Fathers·나쁜 아빠들)' 사이트의 운영진 구모(57)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이들 중 하나였다. 법원은 최근 국민참여재판에서 구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