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진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작은 빛'의 조민재 감독과 주인공 진무 역을 연기한 배우 곽진무를 만났다. 왼쪽부터 배우 곽진무, 조민재 감독 (사진=이한형 기자)
예기치 못한 시작이었다. 휴가철에 고향인 제주도에 갔고, 아버지 산소에 들렀다. 그 공간에서 아버지에 대한 질문을 얻었고, 더 직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원래 노동 관련 영화를 찍으려고 했으나, 질문이 더 많이 생기는 쪽이 아버지 이야기여서 외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시나리오를 다 썼다고 해서 영화 '당연히' 완성되는 건 아니었다. 한 단계 한 단계 거칠 때마다 생각했다. '이걸 언제 그만둘까?'
하지만 '작은 빛'(감독 조민재)은 2018년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독불장군상, 2019년 제7회 무주산골영화제 영화평론가상, 뉴비전상(대상), 같은 해 전북독립영화제 배우상 등을 받으며 주목받았고, 지난 23일에는 마침내 개봉도 했다.
설 연휴를 코앞에 둔 2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진동의 한 카페에서 '작은 빛'의 조민재 감독과 주인공 진무 역을 맡은 곽진무를 만났다. '불금'에 매주 홍대에서 만나 인상 깊게 본 영화를 나누는 모임에서 만난 두 사람은 모두 아버지에 대한 숙제를 갖고 있었고, '작은 빛'을 통해 함께 첫 작업을 마칠 수 있었다.
◇ 조민재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에서 출발'작은 빛'은 뇌 수술을 앞둔 진무(곽진무 분)가 흩어져 있던 가족들의 모습을 캠코더에 담으며 기억나지 않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마주하는 가족 드라마다. 우연히 쉬는 기간이 생겼고, 쉬는 김에 영화를 찍어야겠다고 마음먹은 조민재 감독은 아버지 산소를 다녀온 후 무수한 질문이 생겼다. 이를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조 감독은 "제가 생각한 키워드는 성장하지 못한 어른, 마주하지 않으려고 하는 어른이었다. 본인이 상처받지 않으려고 누구한테도 마음을 열지 않는"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설명처럼, 주인공 진무는 정말 말수가 적다. 형 정도(신문성 분)조차도 대꾸 좀 하라고 타박할 정도로, 좋다 싫다를 비롯한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다.
주인공을 이런 인물로 설정한 이유에 관해, 조 감독은 "('작은 빛'을) 리얼리티 영화라고 하는데 리얼리티 호흡보다는 공허함에 초점을 맞췄다. 공허한 느낌이 서로의 결핍을 더 드러낸다고 생각했다"라고 답했다. "연기적인 면에서는 저보다 훨씬 더 정확"하기 때문에, 진무 캐릭터를 연기한 곽진무의 해석을 시나리오에 최대한 담으려고 했다고도 덧붙였다.
'작은 빛'은 뇌 수술을 앞둔 진무가 흩어져 있던 가족들의 모습을 캠코더에 담으며 기억나지 않던 아버지에 대한 기억과 마주하는 가족 드라마다. (사진=영화사 낭 제공)
곽진무는 "(서로) 얘기하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다. ('작은 빛'은)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고, 일찍 가족 해체를 맞은, 일하면서 소외와 결핍, 고립을 맞이한 젊은 남자가 병을 얻고 난 후 가족을 만나며 조금씩 감정을 여는 이야기"라며 "감정을 여는 부분을 최대한 느리게, 천천히 가도록 하자는 얘기를 촬영 전부터 했다. 지금보다 더 건조하게 가려고 했는데 확신이 안 들 때는 다양하게 한 지점도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작은 빛'이 처음 생각한 제목은 아니었다. 맨 처음 시나리오를 썼을 때 제목은 '캠코더를 샀다'(가제)였다. 조 감독은 촬영 전 답사하기 위해 내려간 강원도 정선에서 잊지 못할 풍경을 목격했다. 강둑에 올라가 마을 전경을 본 순간이었다. 조 감독은 "집마다 네모난 창으로 빛이 새어 나오는 게 네모난 영화 스크린 같았다. 집집마다 다 이야기가 있겠구나. 저 작은 빛 중 하나가 내 이야기일 뿐이지, 수많은 작은 빛이 존재하는구나. 이 이야기를 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걸 마스터 이미지로 해 작업했다"라고 밝혔다.
'작은 빛'이라는 제목이 끝까지 갈지 확신은 없었다. 조 감독 스스로도 "이 제목이 과연 통과가 될까 했다"라고 했으니. 그는 "고민하다가 슬쩍 던졌는데 PD는 절대 안 된다고 했다. '반짝반짝 작은 별' 같다나? 너무 평범하다고도 하고. 저는 끝까지 ('작은 빛'으로) 갈 생각이었다. '나중에 고칠게~' 하다 보니까 상영이 잡혔다"라며 웃었다.
곽진무는 "'작은 빛'이라는 제목은 조 감독이 했던 말 중에 제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기도 하다. 강둑에 올라가서 마을 전경을 내려다보니 각각의 빛이 새어 나왔는데, 그게 '작은 빛'이라고 했던. 그냥 들었을 땐 평범했는데, 그 사연을 듣고 나니까 (영화에) 가장 정확한 제목이 아닐까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제목 짓기에 영감을 줬던 장소인 강원도 정선의 강둑은 영화에도 등장한다. 연둣빛이 도드라져 눈에 확 들어온다. 엄마 숙녀(변중희 분)와 진무가 걸어가는 씬이다. 조 감독은 "어머니의 집이 되게 남루하지 않나. 어머니가 쉴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제 나름의 컷을 구성하는 건, 누군가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거다. 겉으로는 투박하지만 품이 있는(넉넉한) 느낌으로 와이드한 앵글로 잡았다"라고 말했다.
◇ 주인공에게 캠코더를 쥐여준 이유극중 진무는 뇌 수술을 받는다. 의사는 수술 후에 기억을 잃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 후로 진무는 조금 달라진다. 엄마 집을 시작으로 누나 현(김현 분), 형 정도 등 가족들을 만난다. 캠코더를 들고서.
진무는 캠코더로 자신과 가족의 일상을 촬영하기 시작한다. (사진=영화사 낭 제공)
조 감독은 "이 영화는 자전적인 이야기지만, '이렇게 살았다' 이런 정도로만 영화를 만드는 건 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내가 내 이야기로 영화를 만드는 이유는 뭘까 하고 당연히 질문해야 했고, 이 과정의 고민을 진무에게도 심어주고 싶었다. 병에 걸린 건 단순히 캠코더를 들기 위한 설정은 아니었다. '내가 굳이 왜 아버지를 기억해야 할까'라는 딜레마가 있었다. 제가 만약 이 영화를 완성하지 못했다면 아버지를 담아냈다고 말할 수 없을 거다. 이 딜레마를 진무한테도 주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아버지에 관한 기억을) 망각할 것인가, 기록하고 넘어갈 것인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더듬는 게 공포스러웠고, 가족들도 (아버지 얘기를) 싫어할 것 같아서 그 과정을 이겨낼 수 있을까 싶었다"라며 "진무 형이랑 2016년 2월에 만나서 11월에 촬영 시작했는데 매달 '이걸 언제 관둘까?' 생각했다. 영화가 '당연히 촬영되리라는 것'은 없으니까"라고 부연했다.
곽진무는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다. 저도 아버지에 대한 숙제가 있었다. 제가 통풍을 겪었는데 좀 어이가 없었다. 알고 봤더니 유전이라고 해서. 그때 '아, 나는 아버지하고 이어질 수밖에 없구나' 생각했다. 아버지가 나한테 물려준 어떤 것으로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라고 말했다.
극중 진무가 뇌 수술을 받기에, 곽진무는 머리를 아주 짧게 잘라야 했다. 이 같은 결정을 할 때 용기가 필요하지 않았는지 노파심에 묻자, 곽진무는 "작품을 위한 거니 당연히 해야 하는 거라고 생각해서 큰 용기는 필요 없었다"라고 답했다. 단지 짧은 머리로 나오는 장면을 불필요하게 많이 쓰지는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 감독에게 부탁했다. '절대 그럴 일 없다'라는 조 감독의 약속은 지켜졌다.
조 감독은 "영화에 (나가는 게) 한 컷밖에 없을 것 같아서 (머리카락을) 잘라 달라고 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오히려 '많이 안 나와도 돼~' 하더라"라며 웃었다. 곽진무는 "(영화를) 찍으면서 신뢰가 생겼고, 그래서 저는 촬영할 때 부담 없었다"라고 부연했다. <계속>
'작은 빛' 조민재 감독 (사진=이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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