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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팀? 한번 붙어볼까" 올림픽을 빛낸 코비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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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림팀? 한번 붙어볼까" 올림픽을 빛낸 코비의 도전

    2011년 한국을 방문한 미국프로농구 LA 레이커스의 코비 브라이언트가 '코리아 투어 2011'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취재진의 질문에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코비 브라이언트는 2007년 올림픽 남자농구 예선을 앞두고 마침내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다.

    이전까지는 결혼, 부상, 수술 등의 이유로 대표팀에 합류하지 못했다. 르브론 제임스, 제이슨 키드, 카멜로 앤서니 등 미국프로농구(NBA)를 대표하는 스타들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그 중에서도 코비의 존재감은 단연 돋보였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미국 라스베이거스 캠프에서 진행된 첫날 훈련에서 루즈볼을 따내기 위해 농구 코트에 자신의 몸을 던졌다. NBA 정규리그 경기에서 한경기 81득점을 올리는 등 리그 최정상의 스타로 인정받는 코비의 헌신은 동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대표팀에서도 평소처럼 행동했다. 매일 새벽 5시 체육관에 나가 운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가 유일했다. 드웨인 웨이드가 코비를 따라 새벽 5시에 체육관을 찾기 시작했다. 이어 르브론 제임스가 합류했다. 그렇게 하나둘씩 새벽 운동을 하는 선수들의 숫자가 늘어났다.

    마이클 조던, 매직 존슨, 래리 버드 등 NBA 선수들이 처음 올림픽에 출전한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미국 대표팀은 '드림팀(dream team)'으로 불리며 전세계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하지만 미국 농구는 2000년 시드니올림픽 우승 이후 체면을 구겼다. 2002년과 2006년 세계선수권 우승에 실패했고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서도 금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미국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 대표팀을 '리딤팀(redeem team)'이라 불렀다. 예전의 영광을 다시 찾겠다는 의미로 대표팀 구성부터 심혈을 기울였다. 가장 먼저 공을 들인 선수는 바로 코비 브라이언트였다. 코비는 흔쾌히 합류를 결정했다.

    2007년 국제농구연맹(FIBA) 아메리카 대륙 올림픽 예선 4차전에서 코비 브라이언트는 인상깊은 경기를 펼쳤다. 브라질을 상대로 슛을 많이 던지지 않았다. 코비답지 않았다. 그는 대신 브라질의 간판 린드로 발보사의 전담 수비수 역할을 자처했다. 발보사를 4득점으로 묶었다.

    당시 제이슨 키드는 "우리 팀은 코비 브라이언트가 60점을 넣지 않아도 이길 수 있다. 이 점을 잘 알고있는 코비는 수비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도 코비 브라이언트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득점력이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베이징올림픽 결승전에서 스페인을 상대로 '킬러 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2점차로 쫓긴 4쿼터 중반 중거리슛과 3점슛을 터뜨렸고 드와이트 하워드의 덩크를 어시스트했다. 스페인의 기세는 맹렬했지만 점수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하일라이트는 미국이 104대99로 근소하게 앞선 4쿼터 종료 3분10초를 남기고 나왔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3점슛을 터뜨렸다. 동시에 슛동작 반칙을 얻어냈다. 추가 자유투까지 넣으면서 순식간에 점수차가 9점으로 벌어졌다. 게다가 반칙을 한 선수는 경기 내내 미국 수비를 괴롭혔던 스페인의 에이스 루디 페르난데스였다. 루디는 5반칙으로 코트를 떠나야 했고 이후 스페인은 급격히 무너졌다.

    미국은 118대107로 이겼고 코비 브라이언트는 20득점 6어시스트로 미국의 세계농구 정상 탈환을 이끌었다.

    당시 스페인에는 코비 브라이언트의 LA 레이커스 팀 동료 파우 가솔이 있었다. 둘은 올림픽을 앞두고 NBA 파이널에 진출했으나 보스턴 셀틱스에 2승4패로 졌다. 올림픽에서는 적으로 만났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스페인과의 올림픽 예선 라운드에서 경기 초반 파우 가솔에게 태클 수준의 몸싸움을 걸었다.

    이 장면을 본 르브론 제임스는 깜짝 놀랐다. "코비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코비는 가솔이 소속팀 동료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한달 후에 다시 같은 유니폼을 입고 만날 것이라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믿기 어려운 장면이었다"고 말했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당시 인터뷰를 통해 가솔과 거칠게 몸싸움을 벌인 이유가 따로 있었다고 설명했다. "메시지를 주고 싶었다. 우리 팀이 올림픽 우승을 위해 무엇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있다는 사실을, 또 우리가 다시 만났을 때 챔피언이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코비 브라이언트와 파우 가솔은 이후 레이커스에서 두 차례 우승을 합작했다. 그리고 2012년 런던올림픽 결승전에서 다시 적으로 만났다.

    스페인은 강했다. 베테랑 가드 후안 카를로스 나바로가 경기 시작 3분 만에 10득점을 몰아넣어 미국을 긴장에 빠뜨렸다. 그때 잠잠하던 코비 브라이언트가 나섰다. 르브론 제임스와 케빈 듀란트에게 공을 달라고 요구했다. 누구도 거절할 수 없었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곧바로 3점슛 2개를 터뜨려 스페인의 기세를 꺾었다. 이후 경기는 대등한 양상으로 진행됐고 결국 미국이 107대100으로 승리,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30득점을 몰아넣은 케빈 듀란트가 경기를 지배했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17득점을 올렸다. 스페인의 기세를 꺾어야 했던 초반을 제외하고는 슛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팀 플레이에 집중했고 결국 금메달이라는 목표를 이뤘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런던올림픽 개막을 앞두고 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대회 조직위원회가 마련한 기자회견에 참석했다. 당시 메인프레스센터 컨퍼런스 룸에는 수백명의 취재진이 자리했고 그 중에서도 코비 브라이언트에게 쏠린 관심이 단연 높았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런던에 입성하기 전 "지금 대표팀이 1992년 드림팀보다 강하다"라고 말했고 이는 이슈가 됐다. 반응도 격렬했다. 마이클 조던은 "코비가 날 웃겼다"며 웃었고 칼 말론은 "지금 대표팀 애들은 키가 너무 작다"고 말했다. 농구 팬으로 유명한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도 "1992년 드림팀이 최강"이라고 한마디 했다.

    그러나 코비 브라이언트는 당당했다. 기자회견에서 "물론 그들이 우리보다 낫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그들을 이길 수 있겠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렇다고 답할 것이다. 우리는 할 수 있다. 1992년 드림팀 선수들은 농구의 전설로 남았다. 언젠가는 우리도 그렇게 될 선수들이다"라고 말했다.

    코비 브라이언트는 자신과의 약속을 지켰다. NBA뿐만 아니라 올림픽 무대에서도 전설적인 선수로 이름을 남겼다. 1992년 드림팀을 이길 수 있는 팀은 앞으로도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코비라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들 것이다. 그가 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보여준 '맘바 멘탈리티(mamba mentality)'를 떠올리면 분명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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