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바이러스 창궐을 그린 영화 '부산행'에서 배우 김의성이 연기한 용석 캐릭터. 극중 용석은 극한에 달한 공포와 불안 탓에 함께 열차를 탄 생존자들은 물론 자신마저 위기에 몰아넣는다. (사진=NEW 제공)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에 따른 불안과 공포가 특정 지역·집단을 향한 혐오로 번지는 와중에, 수많은 위기를 더불어 극복해 온 우리네 품격 지닌 대응을 앞당길 만한 목소리들이 속속 나오고 있다.
생존 본능이라는 말로도 표현되듯이 사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은 알 수 없는 존재나 상황과 맞닥뜨렸을 때 즉각적인 불안과 공포를 느끼기 마련이다.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두려움에 처한 사람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반응을 보인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먼저 '유친동기'라고 부르는, 다른 사람과 함께 있으면서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을 나누고 감소시키려는 경향이 있다. 나와 같은 질병을 지닌 사람과 함께하면서 정보를 얻으려는 모습이 이에 해당한다. 그런데 이 질병이 치명적인 경우에는 같은 질병을 앓는 사람끼리도 함께 있으려 하지 않는다. 그 공포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정 교수는 "이번 신종 코로나 확산에 따른 불안의 경우 후자에 해당한다"며 "공포를 주는 대상으로부터 벗어나려는 욕구가 몹시 크기 때문에 자신과 구분지으려는 경향성을 강하게 보이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소설 '페스트', 영화 '부산행' 등 익히 봐 온 문화 콘텐츠를 통해서도 우리는 극심한 공포와 불안이 특정 대상을 향한 혐오로 변하는 양상을 접해 왔다.
정치철학자인 박동천 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위기 상황에서 벌어지는 불안감 증폭 현상을 이용하려는 세력은 항상 있기 마련인데, 이 역시 정상적인 정치 과정으로 볼 수 있다"며 "일각에서 부추기는 중국인 혐오 등도 표적을 찾아 공격하는 마녀사냥으로, 이를 통해 뭔가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뉘앙스를 주기 위함"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현재 언론에서 혐오 조장 보도를 내보내거나 하면 그에 대한 비판 기사·댓글이 빠르게 붙는 상황만 봐도 차즘 자정 흐름이 만들어지는 분위기"라며 "(발병) 초기 상황을 넘기고 양식을 지닌 목소리들이 나오면 이러한 자정 흐름도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 극심한 불안에 뿌리내린 혐오…"개인에 전가하면 해법 못 찾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 발원지인 중국 우한시에서 31일 오전 전세기편으로 김포공항에 도착한 교민 중 감염증 의심증상을 보인 일부 교민이 서울 동대문구 국립중앙의료원으로 이송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다만 현재 혐오 분위기가 극심한 불안에 뿌리를 둔 만큼, 그 불안과 공포를 줄이는 노력이 선결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사회 갈등을 연구해 온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혐오는 늘 두려움에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 있는데, 이번 경우도 문제를 개인에게 전가할 경우 해법을 못 내고 서로를 향한 비난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다"며 말을 이어갔다.
"국가와 정부의 역할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고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대 사회는 대형사고·전염병 등에 따른 다양한 위기 상황이 일상화 됐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위기가 갑작스럽게, 예기치 않게 나타나지 않고 빈번하게 발생하는 현실이라면 정부가 이에 대한 상시적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다."
윤 교수는 "최근 불거졌던 (중국 우한 교민들이 머무는 데 대한) 충북 진천 주민들의 반대 역시 이른바 지역 이기주의에만 돌릴 문제가 아니"라며 "긴급 재난에 따른 조치 과정에서 지역 주민의 반대나 재산권 침해 등이 발생했을 때 그것을 공적으로 집행하고 배상 문제까지 담아내는 법이 마련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인류 역시 공포에 직면했을 때 즉각적으로 위축되거나 공격성을 띠는 생물학적인 특성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지만, 공동체라는 큰 틀 안에서 공유해 온, '품격'으로도 불릴 법한 집단 의식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정 교수는 "생물학적인, 유기체적인 존재로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공포를 멀리 하려는 반사적인 반응을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자기 이외의 존재를 배려하고 함께 학습하면서 그 위기를 극복해 왔다"며 "'나만 아니면 된다'는 식의 인식은 단기적으로야 이득이 될 수 있을지 모르나, '필요하면 함께하고 필요 없으면 버리는' 개인들이 모인 공동체는 결코 유지될 수 없다. 결국 공동체를 유지시키는 힘은 '내가 위기에 처하면 누군가 도와줄 것'이라는 신뢰"라고 강조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박 교수 역시 "위기를 예방하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자연재해나 천재지변에서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분명 존재하기 때문에 사후 사회적 치유에 힘써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며 "그 치유 과정은 결국 주변 사람들을 혐오의 표적으로 삼기보다는 배려하고 함께 극복해 가는 존재로 여기게 되는 학습 과정인 셈"이라고 전했다.
윤 교수는 "위기와 재난이 일상처럼 된 현실에서 사회적 신뢰를 높이기 위해서는 안전에 대한 확신이 가장 중요하다. 정부가 이번 사태를 충분히 안전하게 대처했다는 확신만 국민들에게 준다면 극심한 혐오 현상이 다시 벌어질 가능성은 분명 줄어들 것"이라며 "정부 채널과 함께 의료 등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별도 팀을 꾸려 공신력을 높이는 한편,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는 사회 갈등을 조정하고 해결할 수 있는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국가인권위원회 수준의 위원회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