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제목이 많은 것을 말해주는 영화다. 벼랑 끝에 놓인 인물들이 지독한 돈 냄새를 맡은 뒤 짐승 같은 싸움을 벌이는 내용의 범죄극이다.
극 중 돈 가방은 마치 악의 씨앗같다. 이 사람 저 사람 손에 옮겨 다니며 악의 뿌리를 내린 뒤 인간성을 황폐화한다. 돈 가방을 집어 든 대가는 처절하다. 저도 모르게 '살육의 장'에 발을 내딛게 된다.
오는 12일 개봉을 앞둔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여러 인물을 내세워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까발린다. 주연만 8명에 달한다. 각각의 캐릭터와 사연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있고, 시간의 흐름도 뒤틀려있다. 그런데도 틈새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진다.
단편 영화와 다큐멘터리를 연출한 김용훈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촘촘하게 이야기를 직조하는 기술과 세심한 연출력이 상업 영화 데뷔작이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다.
사우나 청소로 생계를 이어가던 중만(배성우)은 사물함에 손님이 넣어둔 채 찾아가지 않은 가방을 발견한다. 돈다발이 든 것을 안 그는 창고에 가방을 보관하고, 고민에 빠진다. 그에게는 청소 일을 하는 아내, 치매에 걸린 어머니, 학자금 대출이 막혀 학업을 중단할 처지에 놓인 딸이 있다.
출입국 관리소 공무원 태영(정우성)은 사라진 옛 애인의 사채 보증을 섰다가 조폭의 위협에 시달린다.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벗어난 그는 거액을 한탕할 궁리를 짜낸다.
사기를 당해 생긴 빚 때문에 남편에게 책잡혀 만날 맞고 사는 미란(신현빈)은 지옥 같은 삶을 벗어나고자 불법체류자 진태(정가람)를 이용한다.
이들을 공통으로 옥죄는 것은 빚의 굴레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치는 이들 앞에 떨어진 거액의 돈 가방은 본능과 욕망을 자극하고, 눈을 멀게 한다.
"큰돈이 들어왔을 땐 아무도 믿으면 안 돼." 평범한 이들이기에 돈맛에 취해 쉽게 '돈의 원칙'도 잊어버린다. 그 결과는 참혹하다. 뒤통수를 맞거나 더 독한 자들의 '호구'가 된다.
전혀 다른 시공간에 있던 인물들이 돈 가방을 매개로 서로 연결되는 과정이 몰입감 있게 전개된다. 조각조각 흩어져있던 그림이 마침내 하나의 퍼즐로 완성됐을 때 쾌감도 큰 편이다. 거듭되는 반전도 쫄깃함을 더한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 무리는 없다. '빚' '호구' 같은 소제목을 달아 6개 장으로 나눈 전개가 이해를 높이는 데 일조한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어둡고 음습하다. 누아르 같다. 배경도 주로 비가 내는 밤이다. 빗속을 뚫고 스크린에 연방 일렁이는 네온사인 불빛이 수상한 기운을 더한다.
블랙코미디이기도 하다. 칼부림이 난무하는 살벌함에 몸서리치다가도, 웃음이 터질 때가 있다. 예상치 못한 황당한 사건이 종종 허를 찔러서다.
배우들이 펼치는 연기의 향연을 보는 재미도 있다. 전도연은 타이틀이 뜬 뒤 한 시간이 지나서야 등장하지만, 첫 장면부터 영화 전체를 압도할 만한 오싹한 존재감을 뽐낸다. 엔딩 크레디트에 이름을 가장 먼저 올릴 만하다.
정우성, 배성우, 윤여정, 정만식, 진경, 신현빈, 정가람 등 신구 배우들의 조화도 돋보인다. 정우성은 '허당기 많은' 쉼표 같은 역할을 한다. 영화는 일본 작가 소네 케이스케 동명 소설이 원작으로, 최근 제49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을 받는 등 해외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청소년관람 불가 등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