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7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당사에서 종로 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7일 ‘정치 1번지’ 종로 출마 카드를 선택하면서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대결이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하고 있다.
지난달 3일 수도권 험지 출마 선언한 황 대표는 출마 지역 선정을 두고 종로 이외 용산과 양천갑 등과 함께 비례대표, 불출마 카드까지 고려했지만 결국 정면 돌파를 택한 것이다.
한 달 이상 장고(長考) 끝에 내린 결정이 과연 악수(惡手)가 될지 묘수(妙手)가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黃, ‘수도권 험지’ 카드 던졌지만…종로 기피설 논란시작은 지난달 3일 황 대표가 ‘수도권 험지’ 출마를 선언하면서 비롯됐다. 지난해 말부터 당내 의원들의 총선 불출마 선언이 줄줄이 이어지면서 황 대표가 총선 선봉장에 서야 한다는 압박 수위는 서서히 높아졌다.
문제는 수도권 출마 선언 이후 황 대표는 출마 지역과 관련해 “당이 필요로 하는 곳에 가겠다”며 명확한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 수장의 출마 지역은 히든 카드로 남겨 놓겠다는 이른바 ‘전략적 모호성’을 택했다는 설명이지만, 당 안팎의 분위기는 달랐다.
황 대표의 행보가 ‘험지 출마’를 각오한 전략적 선택이라기보다 우세 지역을 찾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 것이다. 지난달 23일 당 공천관리위원회가 공식 출범하면서 ‘TK(대구‧경북) 물갈이’ 이슈가 본격화 되자 황 대표의 거취 문제도 동시에 떠올랐다.
김형오 공관위원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TK 현역 50% 이상 물갈이를 심심찮게 언급하자 TK 현역들 내에선 집단 반발 움직임까지 나왔다. 황 대표를 포함한 지도부급 인사들이 수도권 험지로 출마하는 등 희생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TK의 반발을 막을 명분이 약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날까지 불출마를 선언한 당내 의원 13명 중 TK 현역은 정종섭(초선‧대구동구갑) 의원이 유일했다. 여기에 이달 초 서울 용산과 양천갑, 영등포을 등 지역을 대상으로 황 대표와 여당 소속 예비후보와의 가상 대결 여론조사가 실시된 것으로 전해지면서, 황 대표의 ‘종로 기피설’이 기정사실화 되는 분위기로 흘렀다.
공관위 내에선 종로에 황 대표 대신 ‘정치 신인’을 투입하는 방안도 검토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여당에 맞서 제1야당 수장이 최전선에서 이탈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면서, 리더십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자유한국당 공천관리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17일 오전 국회에서 황교안 대표와 첫 회동을 갖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종로 출마’ 두고 공관위 내 불협화음…黃 결단으로 위기 넘겨황 대표의 출마 지역을 둘러싼 논란은 공관위로 번지며 공관위원들 사이에서도 불협화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공관위원들은 황 대표 거취 문제를 논의했지만 지난 3일에 이어 5일 회의에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석연 공관위 부위원장은 지난 5일 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회의 분위기가 '황교안 일병 구하기'로 흐르고 있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냈다. 아울러 황 대표에게 남은 선택지는 ‘종로’ 밖에 없다며 황 대표 측 공관위원들과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위원장이 언론을 통해 공개적으로 ‘종로 출마’ 압박을 지속하자, 지난 6일 황 대표는 이 부위원장을 겨냥 “회의가 아닌 곳에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경고 메시지를 날렸다. 황 대표 출마 지역 선정을 두고 공관위와 당 지도부의 갈등이 일촉즉발에 달한 것이다.
이에 황 대표 측은 이날로 예정됐던 공관위 회의 연기를 요청했고, 공관위도 이를 수용했다. 황 대표는 고심 끝에 이날 오후 영등포구 소재 중앙당사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종로 출마를 선언하며 사태가 일단락됐다.
당내 핵심 관계자는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사실 황 대표의 ‘수도권 출마’ 카드가 이 모든 사단의 원인이 됐다”라며 “공관위가 황 대표를 지나치게 몰아붙여서 지도부에선 극약처방도 고민을 했는데, 현재로선 ‘종로 출마’가 모두를 위해 가장 현명하다는 결론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23일 오전 서울 용산역에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와 함께 귀성인사 후 기자간담회를 가지고 있다. 이 전 총리는 이 자리에서 당에서 제안한 공동선대위원장직과 서울 종로 출마를 "영광과 책임으로 떠안겠다"라고 밝혔다. (사진=윤창원 기자)
◇‘종로’ 빅매치…정권심판이냐 대선 전초전이냐 황 대표의 종로 출마 선언를 두고 당내에선 대체로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일단 황 대표가 종로 출마 여부를 두고 그동안 좌고우면 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발생한 부정적 여론을 잠재울 수 있다는 게 중론이다. 그런 면에서 수도권 출마 후보들 사이에선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평이다.
당내 한 수도권 의원은 통화에서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이르다는 말처럼 지금이라도 정면 승부를 걸어서 다행”이라며 “황 대표가 도망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수도권 지지층이 흔들렸는데 이젠 그런 리스크는 없어졌다”고 말했다.
‘정권심판’ 프레임을 잘 활용하면 역전의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로 황 대표는 이날 출마 선언에서 ‘종로 선거’가 이 전 총리와의 개인 대결이 아닌 문재인 정부 심판의 일환이라고 강조하며 ‘정권심판론’을 전면에 내세웠다.
역대 총선에서 종로는 보수진영 후보가 진보진영에 비해 당선 횟수가 앞서고 있다는 점도 황 대표 입장에선 승부를 걸어볼 만한 대목이다. 15대 총선에선 신한국당 소속이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당선됐고, 16대 한나라당 정인봉(이후 보궐 박진 후보), 17‧18대 한나라당 박진 후보가 승리를 거뒀다.
진보진영에선 선거법 위반으로 이 전 대통령의 의원직 상실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종로를 탈환했고, 19‧20대 총선에선 현재 국무총리인 정세균 의원이 당선됐다. 보궐선거까지 합치면 보수진영이 5번, 진보진영이 3번 승리하는 등 보수진영 후보의 승률이 더 높았다.
반면, 여야에서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로 꼽히는 황 대표와 이 전 총리의 ‘종로 대결’이 대선 전초전으로 비춰질 경우 정권 심판론이 흐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아울러 황 대표가 이 전 총리에게 밀리게 되면 그 여파가 수도권 전체 판세로 확산될 가능성도 있다. 수도권 부동층들 사이에서 다수가 지지하는 쪽에 투표를 하는 이른바 ‘밴드웨건(Band wagon effect‧편승) 효과’가 발생해 황 후보의 열세가 야권 후보의 열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당내 한 수도권 재선의원은 통화에서 “황 대표의 종로 출마는 득실(得失)이 있다고 본다”며 “지방선거 당시 각 당 서울시장 후보들의 지지율이 구청장 선거에 영향을 줬듯이, 총선에선 종로가 밀리면 서울 전역 판세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