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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 갈등'의 원류 짚어낸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공연/전시

    '이념 갈등'의 원류 짚어낸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리뷰]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공연 모습 (사진=수키컴퍼니 제공)

     

    1951년 12월의 지리산. 눈발이 휘날리는 이곳에 한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무언가에 쫓기듯 서둘러 걸음을 옮기는 이 여인은 한 발의 총성이 울리자 힘없이 쓰러진다. 이윽고 등장한 두 남자는 새하얗게 눈이 덮인 산을 자신의 피로 물들이는 여인을 안고 절규한다.

    지난달 31일 개막한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비극으로 점철된 우리나라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한 범국민적 인기를 끈 동명의 드라마(1991)를 무대로 옮긴 작품이다.

    1943년 겨울부터 한국 전쟁 직후까지 동아시아 격변기 10년의 세월 속에서 일본군 위안부 '윤여옥', 학도병 출신 '최대치', 군의관으로 전쟁을 겪는 '장하림' 등 지난한 세월을 겪은 세 남녀의 이야기를 통해 가슴 아픈 우리 역사를 돌아보게 한다.

    작품은 윤여옥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관객들은 1950년 간첩행위 재판으로 재판정에 선 윤여옥의 모습을 시작으로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그녀의 모질었던 삶을 쫓아가게 된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공연 모습 (사진=수키컴퍼니 제공)

     

    1막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해방에 이르기까지의 서사를 전하는 데 힘을 쏟는다. 난징과 버마, 사이판 등 장소를 막론하고 일본군이 벌이는 참상과 모진 학대를 견디고 아픔을 감내해야 했던 위안부의 삶을 여과 없이 그려냈다.

    그 속에서 일본군에 학도병으로 징용된 최대치와 위안부로 끌려온 윤여옥의 사랑은 보는 이를 먹먹하게 하는데, 철조망을 사이에 두고 나타나는 두 사람의 그림 같은 키스신은 여전한 명장면으로 아름답게 표현됐다.

    또한 소녀상을 연상케 하는 의자 신이나, "이름은 윤여옥, 고향은 남원, 춘향이가 살았던…"이라고 읊조리듯 내뱉는 여옥의 대사는 세월이 흘러 19명의 생존자밖에 남지 않은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공연 모습 (사진=수키컴퍼니 제공)

     

    해방 이후의 시간부터 그려지는 2막에서는 우리 사회에 아직까지도 만연해 있는 이념 갈등을 중점적으로 부각했다.

    미국과 소련의 신탁통치를 시작으로 갈라지는 우리나라의 모습과 윤여옥을 두고 공산당 간부가 된 최대치와 미군 장교가 된 장하림의 대립 등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작품은 '제주 4.3 사건'을 표현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이념 갈등의 문제로 형제, 자매의 목숨을 빼앗아야 했던 비극의 역사는 무대 위에 오롯하게 구현됐다.

    노성우 연출은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프레스콜 행사에서 "아이러니하게도 공연장 문만 넘어가도 그 시대 벌어졌던 이념 갈등이 똑같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에 사실 그대로의 현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역사를 직시하면서 공연을 준비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작품은 이러한 그의 말처럼 해방 이후 상처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이념 갈등을 깊이 조명해 많은 것들을 곱씹게 만드는 메시지를 남긴다.

    그러면서 이념 갈등의 원류를 적절하게 짚어내고 비극으로 점철된 근현대사의 아픔을 함축적으로 잘 표현했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 공연 모습 (사진=수키컴퍼니 제공)

     

    널찍한 무대를 통해 표현되는 웅장함도 멋들어진다. 경사면을 사용해 무대 바닥을 높인 점과 사선으로 배치된 대형 스크린, 그리고 객석 앞 계단을 사용한 배우들의 동선은 입체감을 더해 몰입도를 높였다.

    또한 화려한 무대 디자인 대신 철조망, 녹슨 난간 등 서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무대 세트와 디자인은 비극적인 역사의 모습을 섬세하게 그려냈다.

    뮤지컬 '여명의 눈동자'는 오는 27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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