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봉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4·15 총선 예비후보자 ‘부적격’ 판정 관련 입장을 밝히며 굳은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정봉주 전 의원께서 이번 당의 결정을 수용함과 동시에 총선 역할에 대한 입장을 발표하도록 하겠습니다."
11일 오후 2시 40분 국회 정론관(기자회견장)에서 더불어민주당 이경 부대변인의 소개로 정 전 의원의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정 전 의원은 "저는 또 이렇게 잘려나간다. 처음에 이명박 정권에 의해서, 그리고 이번에는 어려운 시절을 함께 해왔던 동료들의 손에 의해서..."라고 말끝을 흐리다가 "저, 정봉주를 잊지는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정 전 의원의 기자회견문 어디에도 당의 결정을 수용하겠다거나 총선에서 어떻게 하겠다는 명확한 발언은 찾아볼 수 없었다.
"원통하고 서러워서 피를 토하고 울부짖고 싶은 심정", "찢기고 상처투성이인 모습이지만, 정봉주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는 등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만 성토했다.
그렇게 기자회견이 끝난 뒤 정론관 밖에서 정 전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추가 입장을 밝혔다.
그는 "공천관리위원들은 (부적격) 판정을 했지만, 저는 더 많은 선택지가 있다"며 "당의 후속 절차를 어떻게 밟아가는지 지켜보면서 상응하는 구체적인 행동을 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선택지는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공관위의 판정을) 수용하는 길도 있고, 불복하는 길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또다른 제3의 길도 있을 것"이라며 무소속 출마를 암시하는 듯한 발언도 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할 것이냐'는 질문에는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 말하지 않겠다"면서 "당이 제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까 말씀드렸던 다른 선택지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드리면 제가 무슨 말씀을 드리는지 당이 잘 이해하고 후속조치를 취할 것이라 믿는다"고 전했다.
정 전 의원의 이같은 입장에 민주당은 상당히 당황해 했다. 정 전 의원이 민주당에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잡아달라'고 요청할 당시 '당의 결정을 수용하겠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힐 것이라고 미리 민주당에 언질을 줬기 때문이다.
이같은 맥락 때문에 이경 부대변인도 애초 정 전 의원의 기자회견을 소개하면서 "이번 당의 결정을 수용함과 동시에"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
정봉주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1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4·15 총선 예비후보자 ‘부적격’ 판정 관련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마치고 회견장을 떠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민주당 관계자는 "정 전 의원이 '내가 오랫동안 당과 함께 해온 사람인데, 설마 기자회견에서 당을 비판하겠느냐'고 말해, 내키지 않는 측면이 있었지만 기자회견을 하게 해 준 것"이라며 "정 전 의원이 이럴 줄 몰랐다. 뒤통수 맞았다"고 분개했다.
당 지도부도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정해진 절차에 따라 재심을 청구하면 될 일인데, 약속까지 어겨가며 당 지도부를 압박했다는 것에 불쾌감을 드러냈다.
당 지도부 관계자는 "공관위의 결정은 이미 내려진 것이고, 본인이 원한다면 재심을 청구하면 된다"며 "느닷없이 기자회견을 열어 당 지도부에 공을 던졌다는 식으로 얘기하는 것은 황당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의 돌발행동을 두고 당 내에서는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과거 팟캐스트 방송 '나꼼수' 활동을 통해 얻은 유명세와 지지자들을 동원해 당 지도부를 압박해 공관위의 결정을 번복시키려는 시도란 분석과 실제 무소속 출마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시각 등이다.
공관위의 결정과 관련해 당 지도부의 현재까지 기류는 별도의 논의는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부적격 판정은 공관위의 결정이고, 정해진 재심 절차는 이미 마련됐다고 보기 때문이다.
다만, 당 일각에서는 정 전 의원에 대한 동정론도 나오고 있다.
당 지도부의 한 의원은 "정 전 의원이 나름 이명박 정부 시절 헌신한 측면이 있고, '미투'와 관련해서도 법원에서 무죄로 판단한 부분도 있다"며 "이대로 정 전 의원을 내칠 게 아니라 다양한 방법으로 함께 가는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