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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영화에 여성간첩 서사가 계속 나온 이유

문화 일반

    1970년대 영화에 여성간첩 서사가 계속 나온 이유

    [30년 한국 씨네-페미니즘 연대기 ③] 냉전의 무인 지대, 여성

    1990년대부터 하나의 이론이자 실천으로서 한국사회에 퍼진 '씨네-페미니즘'. 여성문화이론연구소가 준비한 '한국영화가/를 사랑한 여자들: 30년 한국 씨네-페미니즘의 연대기 2'는 지난 30년 동안 한국 여성 영화인과 여성 영화의 역사를 비평·이론·정치·미학의 다양한 각도에서 살핀 후, '오늘'의 관점에서 한국영화의 페미니즘을 돌아보고 새롭게 논하려는 강의다. CBS노컷뉴스는 2월 7일부터 5주 동안 이어지는 강의를 듣고 현장에서 나온 이야기를 요약해 옮긴다. 매주 화요일 연재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모성 배반→처벌… 韓 영화가 답습한 여성 캐릭터들
    ② 식모·호스티스→전문직… 韓 영화 속 여성의 직업 변천사
    ③ 1970년대 영화에 여성 간첩 서사가 계속 나온 이유 <계속>

    한형모 감독의 영화 '운명의 손'(1956)에는 마가렛이라는 이름을 쓰는 북한의 여성 간첩이 나온다. 여성 간첩이 등장하는 영화는 1970년대까지 꾸준히 이어진다. (사진='운명의 손' 캡처)

     

    21일 오후,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연속특강 '한국영화가/를 사랑한 여자들: 30년 한국 씨네-페미니즘의 연대기 2'의 세 번째 강의 '냉전의 무인 지대, 여성'이 열렸다.

    '성스러운 국민', '고아, 족보 없는 자'(공동 집필)의 저자이자, 한양대학교 연극영화학과 조교수 김청강 씨는 195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영화가 냉전을 다루면서 여성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돌아봤다. 그중 1970년대에 특히 큰 인기를 끈 '여성 간첩 서사'에 주목했다.

    김청강 씨는 1970년대까지 활발히 나오는 '여성 간첩 서사'의 초기작으로 한형모 감독의 '운명의 손'(1954)을 소개했다. '자유부인'(1956) 등 당대 인기 영화를 만든 한 감독은 '운명의 손'에서 마가렛(윤인자 분)이라는 여성을 주인공으로 해 여성 간첩의 이야기를 그려냈다.

    김 씨는 "북한 간첩으로 등장하는 마가렛은 굉장히 대담한 모습으로 나온다. 경제적 능력이 있는 '아프레 걸' 이미지로, 성적으로 개방된 동시에 위협적인 섹슈얼리티를 갖는다. 영화는 (마가렛을) 유능한 간첩이 아니라 사랑에 무너지는 여성으로 그린다. 이는 북한을 젠더화해 위협적이지 않은 존재로 묘사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김 씨는 "이 여성은 남한에 내려온 간첩이라는 신분, 즉 경계의 인물이다. (스스로 운명을) 선택할 수 없어서 죽어버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라며 "남북 어느 공간에도 속할 수 없는 위치의 여성, 이런 여성 간첩 서사는 1970년대까지 나타난다"라고 전했다.

    여성 간첩을 소재로 한 영화는 1970년대 '특별수사본부' 시리즈에서 정점을 맞았다. 김 씨는 "국가에서 제작을 장려한 장르인데, '기생 김소산'(1973), '여대생 이난희 사건'(1973), '배태옥 사건'(1973), '김수임의 일생'(1974), '구삼육 사건'(1976) 등이 있다. 실화와 픽션이 섞여 있었고 주로 여성 간첩을 소재로 했다"라고 말했다.

    김 씨는 "이 시리즈는 반공이라는 국시 아래 북한의 존재를 일깨우기도 하지만, 여성의 신체를 볼거리화해 남성 관객들에게 즐거움을 줘 호응을 받았다"라며 "남성 간첩 이야기도 있었으나 재미가 없었다. 재미있으려면 여성이 출연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다. 1972년 유신 시작과 맞물려 여성 간첩 서사가 활발히 나왔다"라고 밝혔다.

    여성 간첩 서사는 어떤 의미를 가질까. 김 씨는 "여성 간첩은 '38선을 넘었'기에 위험하고 의심스러우면서도 매력 있는 객체로 읽혔다. 동시에 어떤 주권에도 속할 수 없는 '예외적'이고 '일시적' 존재였다"라며 "드라마 내부에 있긴 하지만 아무 권리가 없고 인권을 유린당하거나 처단되기도 한다. 항상 존재하지만 어디에도 없는 여성"이라고 분석했다.

    김 씨는 '베를린 리포트'(1991), '명자, 아끼꼬, 쏘냐'(1992) 등을 언급하며 1990년대 냉전 영화에서 여성 주인공은 '완전한 피해자'로만 그려진다고 말했다. 김 씨는 "남성 감독들이 냉전 구도에 가려져 있어 그간 알지 못했던 역사를 얘기하는 건 좋은데, 그 구도에서 여성들이 나타나는 방식은 '어쩜 하나같이 이럴까' 싶을 정도로 굉장히 피해자화된다"라며 "여성은 다 강간당하고 참혹하게 짓밟힌 채로 나오는데 이는 매우 문제적"이라고 지적했다.

    한때 냉전·분단 영화에서 등장하는 것만으로 곧 '재미'를 보장했던 여성 캐릭터는 시간이 갈수록 존재감이 희미해졌다. '쉬리'(1999), '간첩 리철진'(1999), '공동경비구역 JSA'(2000), '실미도'(2003), '태극기 휘날리며'(2004), '웰컴 투 동막골'(2005), '크로싱'(2008), '은밀하게 위대하게(2013), '공조'(2017), '강철비'(2017), '공작'(2018), '백두산'(2019) 등 남북 관계를 소재로 한 영화는 점차 늘어났으나, 대부분 남성 중심적인 이야기로 흘러갔다는 게 김 씨의 설명이다.

    김 씨는 "가장 극단의 배제는 '부재'라고 하지 않나. 현재 남북을 그리는 영화에서 여성들은 '간첩'으로도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라며 "여성은 부재하거나, 행여 등장한다고 해도 여성들이 이야기를 끌어갈 서사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남북 분단을 다룬 영화는 대부분 남성 중심 서사로, 여성이 '부재'하다시피 했다. (사진=각 제작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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