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이정란 "평생을 노력해야 한곡이라도 제대로 연주하죠"

공연/전시

    이정란 "평생을 노력해야 한곡이라도 제대로 연주하죠"

    • 2020-02-27 07:35

    첼로곡 담은 '랑데부 인 파리' 발매…내달 7일 리사이틀

    첼리스트 이정란 (사진=목프로덕션 제공)

     

    "어떤 곡을 마음에 들게 연주하려면 아마 평생이 걸리겠죠. 평생이 걸리더라도 과연 제대로 연주할 수 있을까요?"

    첼리스트 이정란은 이렇게 말한 후 잠시 생각에 잠겼다. 최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첼로라는 악기로 연주할 수 있는 레퍼토리가 제한적이지 않으냐는 질문을 받고서다.

    그는 "대가였던 파블로 카살스도 96세 때 매일 첼로를 연습했다. 아직 연구할 것도 많고, 첼로 연주가 여전히 어렵다. 좀 더 충실하게 연습한 후 나중에 즐길 수 있는 단계까지 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정란은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프랑스 음악 전문가다. 파리에서 유학생활을 했으며 파블로 카살스 콩쿠르, 모리스 장드롱 콩쿠르 등 주요 콩쿠르에서 입상했다.

    최근에는 프랑스 음악가 작품을 모은 첫 솔로 앨범 '랑데부 인 파리'를 발매했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나온 주요 프랑스 첼로 곡을 담은 음반이다. 생상스, 드뷔시, 풀랑크의 '첼로 소나타' 같은 묵직한 작품과 포레 '시실리엔느', 드뷔시 '달빛' 같은 소품을 함께 수록했다. 앨범 수록곡을 중심으로 한 동명 리사이틀도 내달 7일 예술의전당에서 열 예정이다.

    "우디 앨런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를 보면 주인공이 헤밍웨이나 피츠제럴드처럼 동경해 마지않는 작가들을 차례로 만나잖아요. 저도 그런 종류의 만남을 염두에 두고 앨범과 연주회 제목을 지었어요."

    '랑데부'(Rendez-vous)는 만남이란 뜻의 프랑스어다.

    "생상스와 포레는 프랑스가 번영하던 시기에 활동한 작곡가예요. 프랑스 사교계의 화려함, 낭만이 잘 묻어난 곡을 많이 썼죠. 반면 드뷔시는 1차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실험정신이 돋보이는 모더니즘 작품을 썼고, 풀랑크는 다시 듣기 편한 신고전주의 스타일로 돌아갔죠. 프랑스 음악의 다채로움을 앨범에 담아보고 싶었어요."

    다른 이유도 있다. 헤밍웨이가 회고록 '파리는 날마다 축제'를 통해 젊은 날 파리 체류 기억을 담은 것처럼 그도 7년간 머무른 파리의 추억을 음반으로 남기고 싶었다고 한다.

    예컨대 파리에 도착한 첫날 본 센강에 비친 6월의 햇살이라든가, 튈리르정원에서 바라본 콩코드 광장의 숨 막히는 아름다움, 오랑주르 미술관에서 모네의 수련을 보며 손가락으로 풀랑크의 첼로소나타 2악장을 더듬은 기억 같은 것들 말이다.

    그는 "음반을 발매하겠다는 목적보다는 어떤 형태로든 파리의 기억을 소장하고 싶었다. 연주자이니까 자연스럽게 음반을 발매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고 했다.

    첼로를 좋아하는 아버지 영향으로 6세 때 첼로를 시작한 그는 예원예고, 서울예고를 거쳐 파리고등국립음악원에서 최고연주자과정, 실내악 전문사 과정을 졸업했다.

    2008년 귀국해 서울시향에서 2015년까지 일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기가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기량을 최고치로 끌어올릴 수 있는 시절에 솔리스트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안정적 수입보다 더 중요했다"고 한다.

    "아침저녁으로 시향에서 연습하다가 퇴근하면 녹초가 되어서 솔리스트로 활동을 하기가 쉽지 않았어요. 들어오는 리사이틀 제안을 거절한 적도 많았죠. 솔리스트로서의 갈망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그만두게 됐어요."

    하지만 그는 홀로 무대에 서는 게 두렵다고 했다.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줄까 봐" 불안을 안고 산다고 했다. 솔리스트를 갈망하면서도 무대를 두려워하는 것. 완벽한 아이러니다. 하지만 인생이란 어차피 아이러니의 연속 아닌가. 사실 이런 모순적인 태도는 이정란의 전유물만은 아니다. '피아노 여제' 마르타 아르헤리치, 첼로 황제라는 카살스 같은 대가도 무대에 서는 걸 두려워했다.

    이정란은 '음악을 하면서 후회해 본 적은 없느냐'는 질문에 "주변에 은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고 할 정도로 은퇴를 꿈꾼다"고 했다. 하지만 "은퇴 전에 야심 차지만 한 가지 목표가 더 있다"고 덧붙였다.

    "잊히지 않는 음악을 하고 싶어요. 청취자 입장에서 길을 가다가도 갑자기, 불현듯 떠오르는 그런 연주요. 그러기 위해 '멈추지 말자' '다시 해보자' '계속 연구하자' 같은 말들을 매일 곱씹고 있습니다."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