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연희 역을 연기한 배우 전도연의 라운드 인터뷰가 열렸다.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스포일러가 나옵니다.
순자 역의 윤여정도, 태영 역의 정우성도, 미란 역의 신현빈도, 진태 역의 정가람도 이 사람과 함께 연기하고 싶어서, 혹은 같이 연기할 수 있어서 영광이었다고 입을 모았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감독 김용훈)에서 가장 빨리 이름이 등장하는 이른바 '1번 롤'을 맡았지만, 정작 영화의 6장 중 4장에야 그 모습을 드러내는 배우 전도연의 이야기다.
19일 개봉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메인 포스터에만 여덟 명이 등장할 만큼 여러 명이 주인공인 작품이다. 그중 전도연의 존재감은 강력하다. 단순히 영화 홍보에만 앞세워지는 게 아니라, 실제로 전도연은 영화에서 여러 역할을 했다. 이번에도 놀랄 만한 연기로 관객들의 시선을 붙들었음은 물론이고, 평소 절친한 윤여정에게 적극적으로 순자 배역을 제안한 것도 전도연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의 메가폰을 쥔 김용훈 감독은 신인 감독이었다. 이게 첫 장편 상업영화 작업이었다. 30여 년에 가까운 연기 생활 중 꾸준히 신인 감독과 작품을 찍어 온 전도연이었지만, '쉽지 않은 영화'를 흔들리지 않고 완성도 있게 마칠 수 있을지에 관한 걱정까지 내려놓은 건 아니었다. 영화가 '잘 나온 걸' 확인하고 나서야 웃을 수 있었다.
지난 1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연희 역을 연기한 배우 전도연의 라운드 인터뷰가 열렸다. 개봉 전부터 제49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에서 상을 탄 것을 두고 '영화제 수상+전도연' 조합이 혹시 영화를 받아들일 때 선입견을 줄까 봐 걱정했다는 전도연은 "흥행이 잘됐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 너무 걱정해서 기대할 겨를도 없었지만…'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인생 마지막 기회인 돈 가방을 차지하기 위해 최악의 한탕을 계획하는 평범한 인간들의 범죄극이다. 소네 케이스케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올해 제49회 로테르담국제영화제 타이거 경쟁 부문에 초청돼 심사위원 특별상을 받아 일찌감치 반가운 소식을 전한 바 있다.
하지만 정작 전도연은 로테르담영화제에 진출했을 때 부담이 앞섰다고 밝혔다. 전도연은 "영화제와 전도연이라는 이미지, 사람들은 조금 부담스럽게,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않을까 했다. 예고편만 보면 그냥 되게 재미있어할 만한 작품인데…"라고 말했다. 이어, "감독님한테 문자가 온 거다. 상을 받았다고. 너무 해맑게 브이를 한 사진이. (수상이) 흥행에 도움 됐으면 좋겠다고 하더라. 흥행에 도움은 모르겠지만… 너무 축하할 일이다"라며 웃었다.
코로나19 여파로 예정보다 일주일 늦춰 지난 19일 개봉한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또 다른 국제영화제인 칸국제영화제에 진출한다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에 전도연은 "저는 흥행이 잘됐으면 좋겠다"라면서도 "칸에 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라고 답했다.
'영화제+전도연'이라는 조합이 보기도 전에 선입견을 만들까 봐 우려했다는 전도연은, 언론 시사회 전에도 걱정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나왔던 게 아니라 사실 되게 궁금하기도 하고, 솔직히 신인 감독님이 한 배우가 아니라 여러 명의 배우를 다 수용할 수 있을까, 그들을 다 담아낼 수 있을까 걱정이 됐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영화를 보고 난 소감은? "아, 너무 걱정해서 그런지 기대도 안 했었다"라고 해 취재진을 웃게 한 전도연은 "너무 재밌게 봤다. 김용훈 감독님이 (영화 속) 인물에 대한 애정도 컸고, 자기 스타일을 잘 담아냈다는 걸 알았다. 영화 보고 나서 감독님이 제 눈치를 보면서 걱정했는데…"라고 해 다시 한번 웃음을 자아냈다.
◇ 전도연이 처음부터 나오지 않는다는 신선함전도연은 시나리오의 독특한 구성에 매료돼 작품을 선택했다. "사실 새로운 것도 없을뿐더러 되게 식상한 이야기"도 있지만, "구성이 독특한 점이 되게 매력 있었다. 더 큰 매력은 한 인물이 아니라 여럿이 자기 이야기를 끌고 가지만 (이야기가) 결국 하나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화 처음부터 끝까지 본인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도 새로웠다고. 전도연은 "제가 처음부터 안 나와서 이 시나리오가 좋더라. 너무 좋았다"라며 "전도연이 처음부터 안 나오는 영화를 안 해 보기도 했다. 관객분들도 (이 부분을) 매력적이라고 생각해 주셨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시나리오에서부터 가장 강렬했던 캐릭터 연희가 전도연에게 주어졌다. 전도연은 "너무 강렬하고 센 씬이 많아서 전 좀 힘을 빼고 그냥 있어도 연희겠구나 싶었다"라며 이미 완성된 캐릭터여서 '뭐를 더 보여줄까'보다는 '어떻게 부담감을 줄일까'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전도연은 "(배역들의) 밸런스에 대해 한 발짝 물러나 있어도 연희는 연희겠구나 싶어서 감독님이 그 부분에 관해 크게 고민 안 하길 바랐다"라고 밝혔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연희 역을 연기한 배우 전도연. 연희는 과거를 지우고 새 인생을 살기 위해 남의 것을 탐하는 인물이다.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본인이 맡은 연희 외에도 이입된 캐릭터가 있냐고 묻자, 전도연은 "저는 미란 캐릭터가 너무 좋았고 순자 캐릭터도 너무 좋았다"라며 "'아무것도 없는 데서 다 시작했다가 살아난단다' 하는 순자의 대사가 저희 영화를 보여준다고 본다. 또 (순자가) 유일하게 숨바꼭질하는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중만(배성우 분)이 너무 힘들겠다 싶더라"라고 말했다.
신현빈이 연기한 미란이 보여줄 것이 좀 더 많았던 것 같다고 운을 뗀 전도연. 만약 미란 역을 연기했다면 어땠을까. 그는 "너무 전도연이 잘할 법한 캐릭터이지 않나. 안 하길 잘했다"라며 웃었다.
영화 속에서처럼 거액의 돈 가방을 갖게 된다면 어떻게 할지 물었더니, 전도연은 "일단 가지고 있을 것 같다"라며 "경찰서 갈 때 가더라도 갖고 있을 것 같다"라고 답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이렇게 어마어마한 돈이 있으면, 일단 스릴 있잖아요! 뭔가 기쁘기도 하고 불안하기도 한데 갖고 있을 때 스릴 있잖아요."
◇ 정우성과 처음 한 작품에서 만나 '연인' 연기를 하다'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 전도연과 정우성이 처음으로 동반 출연한 작품으로도 화제를 모았다. 전도연은 매혹적이지만 위험한 여인 연희를, 정우성은 연희가 남긴 빚 때문에 고군분투하는 출입국 관리소 공무원 태영을 각각 연기했다.
같이 있는 장면을 찍을 때 굉장히 어색했다는 전도연의 말과 달리 영화에서는 전혀 어색함이 보이지 않았다고 하자, 전도연은 "그러니까 배우죠"라고 여유롭게 답해 웃음을 유발했다.
전도연은 "정우성 씨가 연기한 캐릭터에 저도 되게 당황했던 것 같다. (연희와 태영은) 이미 너무 익숙한 연인 관계인데, 우성 씨가 구현한 태영을 현장에서 봤을 때 제가 적응이 안 됐다. 그래서 어색함이 있었던 것 같다. '밥 먹고 얘기하자'고 하는 그 대사를 (제가) 너무너무 못해가지고 몇 번을 했다. 그렇게 힘든 씬이라고 생각 못 했다"라고 설명했다.
인물 소개에서도 알 수 있듯, 연희와 태영의 관계는 전적으로 연희에게 기울어져 있다. 두 사람은 어떤 사이였을까 물었더니 전도연은 태영을 가리켜 "호구"라고 해 폭소가 터졌다. 그러나 이내 "(연희도) 진심이 있다고 생각한다. 거기서도 본능적으로 살아남아야겠다는, 나부터 살아야겠다는 게 있어서 그럴 뿐. 진심을 믿었기에 태영을 다시 찾아간 것"이라고 말했다.
전도연은 연희 캐릭터가 시나리오에서부터 이미 '완성'돼 있었기에 힘을 빼는 게 중요했다고 밝혔다. (사진=㈜비에이엔터테인먼트 제공)
태영 캐릭터를 향한 애정도 드러냈다. 냉정하게 보면 '다 퍼 주는 호구'처럼 보이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마음에 들었단다. 전도연은 "너무 좋았다. 태영이 진짜 연희를 사랑하는 것 같아서. 그렇게 뒤통수를 맞고도 (연희의) '진심'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게. (태영의) 작지만 되게 큰 진심이 너무 좋더라"라고 밝혔다.
정우성과 연기하는 것은 시간이 갈수록 더 재밌어졌다고 전했다. 정우성이 표현한 태영 캐릭터의 보는 재미를 느낄 때쯤 촬영이 끝났다는 게 아쉬움이었다. 전도연은 "이 이야기(연희-태영)만 가지고 영화 한 편 찍어도 괜찮겠다, 재밌네? 하니까 끝났다"라며 "저도 현장에서 알았다. 제가 정우성 씨와 처음 연기한다는 걸"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우성 씨는 저랑 잘 어울릴 수 있을까가 제일 궁금한 배우였다. 같이 한 화면에 어떻게 담겼을지 저도 되게 궁금하더라"라며 "현장에서는 전도연 정우성을 빼고 연희와 태영으로서 그 캐릭터에 몰입하고 집중할 수 있어서 그런(케미스트리) 게 생긴 것 같다"라고 부연했다.
◇ 전도연이 본 '지푸라기' 결말극중 가장 '영화적인 캐릭터'이자 끝판왕 같았던 연희는 끝까지 살아남지는 못한다. 이런 결말을 어떻게 봤을지 궁금했다. 전도연은 "저도 살아남을 줄 알았다"라며 "주인공들은 항상 터미네이터라고 하지 않나. 총 맞아도 안 죽고. (사고 장면을) 정우성 씨가 어떻게 찍어내는지 (현장에서) 못 봤지만 되게 충격적이었다. 묘한 카타르시스가 있더라. 누워라도 있는 게 나와야 하는 거 아냐 했는데 그것조차 없어서 재밌었다"라고 답했다.
신인 감독이 감당하기 버거운 영화가 아닐까 해서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지만 막상 영화를 다 보고 나선 의도한 바가 잘 담겨 만족했다는 전도연은 김용훈 감독에게 공을 돌렸다. 전도연은 "모든 배우가 만나서 호흡을 맞춘 게 아닌데, (잘 나온 건) 감독님의 역량이 아니었을까"라고 바라봤다.
전도연은 "이 많은 배우를 하나의 이야기로 묶는 게 쉬운 게 아니어서, 사실 (제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을) 선택했지만 (감독을) 100% 믿진 못했다. '아, 이걸 진짜 담아낼 수 있을까'에 대한 의심이 끊임없이 들었다. 그런 부담은 아마 감독님이 더 많이 느꼈을 거다. 각자의 이야기를 하나의 이야기로 만든 건 감독님 몫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저도 (감독에게) 잘 봤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어쨌든 김용훈 감독님 되게 잘하셨어요. 오랜 시간 고민 많이 하셨을 거예요. (작업 중) 고민이나 힘듦이 분명히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고요. 저의 칭찬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지만, (영화 보고 나서) 너무 잘했다고 수고했다고 얘기했어요. (웃음)" <계속>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에서 연인 연기를 선보인 전도연과 정우성 (사진=메가박스중앙㈜플러스엠 제공)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