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유럽 출장을 마치고 귀국한 강경화 외교장관(왼쪽)과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 (사진=연합뉴스)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이 지난달 강경화 외교부 장관과의 회담을 갑자기 취소한 이유가 뒤늦게 드러났다. '문전박대'라는 일부 보수언론의 지적과는 달리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우려에 따른 자가격리 때문이었다.
외교부는 지난달 26일 런던에 위치한 영국 외무부 청사에서 한-영 외교장관회담을 개최하려고 했다. 그런데 회담 직전 라브 장관이 "불가피한 개인 사정으로 예정대로 회담을 개최하기 어렵다"고 전해오면서 회동이 불발됐다.
강 장관은 대신 맷 핸콕 보건복지부 장관을 만났고, 이 자리에는 영국 외무차관이 배석했다. 공식 발표된 외교장관 회담이 갑자기 무산되자 강 장관이 영국에서 '홀대 당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일부 언론에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우리 국민이 입국 금지 및 제한 조치를 당하는 일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시점에 한국 외교 수장이 코로나 대응과 무관하게 해외 출장을 간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조선일보는 지난달 28일 '英서 박대당한 강경화 "국제사회가 한국 신뢰"'란 기사에서 "우한 코로나의 급속 확산으로 우리 국민이 세계 곳곳에서 입국 거부와 강제 격리를 당하는 마당에 외교 수장이 코로나 대응과 무관하게 해외 출장을 갔다는 비판이 거세다"고 보도했다.
나아가 '이 와중에 英 갔다 회담도 못 한 외교장관, 나라 꼴 한심'이란 제목의 사설을 통해 강 장관의 지난 해외 출장까지 싸잡아 문제삼으며 "이번에도 있어야 할 곳에 안 있고 엉뚱한 일정을 강행하다 외교 참사로 국격을 땅에 떨어뜨렸다. 아무리 유명무실한 외교장관이라지만 너무한다"고 지적했다.
동아일보도 같은달 28일 '英, 한영 외교회담 일방 취소…'강경화 홀대' 논란'이란 기사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 여파로 한국인 입국 금지 및 제한 조치를 취하는 나라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한국 외교 수장이 홀대를 받은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며 논란에 불을 지폈다.
하지만 라브 장관은 당시 코로나19 감염 증세가 있어 자가 격리에 들어가는 바람에 강 장관과의 회동을 급히 취소한 것으로 뒤늦게 드러났다.
영국 BBC에 따르면 라브 장관은 지난주 코로나19 감염 증상을 느끼고 자가격리에 들어갔다. 이 시기는 강 장관이 런던을 방문한 때와 겹친다. 라브 장관은 음성 판정을 받은 뒤 현재는 업무에 복귀한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회담 전 영국 측이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전해왔다"며 "상대 국가에서 알려지지 않은 사실에 대해 언급하는 건 외교적 결례일 수 있어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 회담 취소 이후 라브 장관이 전화 통화로 회담을 개최하지 못한 것에 대해 깊은 사과의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그레엄 넬슨 주한영국대사관 정치참사관도 2일 트위터를 통해 "민감한 사안에 세심한 배려를 보여주신 한국 외교부 관계자 여러분께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 아쉽게도 이번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으나 앞으로도 한영 양국은 함께 이 어려운 시기를 헤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강 장관은 회동 무산 이후 라브 장관과 전화 통화를 통해 △코로나 19 대응공조, △기후환경분야 협력, △브렉시트 이후 양국 협력 방안 등 양국간 현안을 논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