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의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가 4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편지 내용을 전달한 뒤 편지를 들어보이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총선을 42일 앞두고 수감 중인 박근혜 전 대통령이 보수결집을 주문하는 메시지를 내면서 정치권이 들썩이고 있다.
지난 2016년 박 전 대통령 탄핵을 계기로 분열되며 보수진영이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한 점을 감안하면, 이같은 메시지에 대해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었다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일각에선 자칫 '도로 새누리당' 등 적폐 프레임 공세로 이어질 경우 중도층이 이탈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미래통합‧자유공화‧친박신당 등 일제히 환영…TK 물갈이 호재 박 전 대통령 측근인 유영하 변호사는 4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더 나은 대한민국을 위해 기존 거대 야당을 중심으로 태극기를 들었던 여러분 모두가 하나로 힘을 합쳐 주실 것을 호소 드린다"고 박 전 대통령의 친필 서한의 내용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의 애국심이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며 "저도 하나가 된 여러분들과 함께 하겠다"고 메시지를 대독했다.
박 전 대통령이 총선에서 문재인 정권 심판을 위해 보수세력 단일대오를 주문하며 사실상 '미래통합당' 중심의 결집을 촉구한 셈이다.
통합당 황교안 대표를 비롯해 자유공화당과 친박신당 등 보수 정치권 인사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황 대표는 입장문에서 "이 나라를 지켜달라는 박 전 대통령의 애국심이 우리의 가슴을 깊이 울린다"고 했고, 탄핵에 동참했던 김무성 의원도 "크게 환영하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밝혔다.
태극기세력이 중심이 된 자유공화당 김문수‧조원진 공동대표와 친박신당 홍문종 대표도 유 변호사의 발표 직후 연이어 기자회견을 열고 박 전 대통령의 뜻을 따르겠다고 밝혔다.
보수진영 분열을 경계하는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는 대대적인 인적쇄신을 추진 중인 통합당에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이 '통합'을 강조한 이상, TK(대구‧경북) 의원들이 물갈이에 반발하더라도 이탈할 공간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가 TK 공천심사 발표를 앞둔 상황에서 당내 TK‧친박계 의원들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당내 TK 중진의원은 이날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이번 통합 메시지는 확실히 당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고, TK 초선의원도 "보수 분열을 걱정하는 이들에게 안도감을 주는 메시지"라고 평가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구속 연장 후 첫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2017년 10월 16일 오전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박종민기자
◇여권發 '적폐 프레임' 경계…선거연대‧후보 단일화 등 과제 남아박 전 대통령의 결단으로 보수진영 내부 결집에는 일정 부분 성공을 거뒀지만, 여전히 박 전대통령에게 반감을 갖고 있는 중도층 표심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당초 통합당이 개혁 공천을 전면에 내걸고 인적쇄신을 추진하자 중도층이 정권 심판론에 동의하며 서서히 보수진영으로 이동하는 조짐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돌발 변수로 떠오르며 자칫 '도로 새누리당' 등 적폐 프레임으로 역공을 당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당장 여당과 일부 야당들은 국정농단의 책임을 지고 자숙하라며 박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민주당은 현안브리핑에서 "옥중 선동정치를 하는 것은 탄핵 결정을 부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했고, 민생당도 "추종세력을 규합해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고도로 기획된 정치 공작성 발언"이라고 했다.
중도 노선을 내세운 국민의당도 "박 전 대통령은 부적절한 정치적 발언을 지양하고 국민의 선택을 존중해야 한다"고 "문 정권을 심판하려던 합리적 중도와 개혁적 보수, 양심적 진보층의 이탈을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유공화당과 친박신당 등은 박 전 대통령이 주문한 '보수결집'에 동의했지만, 향후 통합당과 논의할 구체적인 통합 방식이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들은 이날 미래통합당에게 '하나로 힘을 합칠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해달라고 촉구하면서도, 선거 연대 또는 후보 단일화를 선호하는 듯한 메시지를 던졌다.
중도층 확장을 위해 대대적인 물갈이를 추진 중인 통합당 입장에선 이들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인적쇄신의 효과가 반감될 수 있다는 위험을 떠안은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박 전 대통령의 '통합' 메시지를 외면할 수도 없는 처지라 고도의 정치력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당내 수도권 재선 의원은 통화에서 "내부 지지층만 보면 분열 없이 총선을 치르는 게 유리하다"면서도 "박 전 대통령의 메시지가 여권 지지자들에게 탄핵 프레임 등 공격의 빌미를 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한 수도권 중진의원도 통화에서 "보수진영이 결집하자고 하는 게 '과거 친박 색깔로 다시 돌아가자'는 의미는 아니다"라며 "박 전 대통령 메시지도 태극기세력 정치인들을 수용하라는 게 아니라 이들에게 백의종군을 요구한 것 아니겠냐"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