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연합뉴스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 이후 대남관계를 사실상 단절했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1년여 만에 다시 대화의 손길을 내밀었다.
전 세계적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코로나19) 확산 와중에 북한도 예외일 수 없는 상황에서 동병상련을 통한 남북협력의 계기가 마련될지 초미의 관심이다.
청와대는 5일 김 위원장이 전날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우리 국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했다고 밝혔다.
김 위원장은 친서에서 "(한국이) 반드시 이겨낼 것으로 믿는다. 남녘 동포의 소중한 건강이 지켜지기를 빌겠다"고 말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건강을 걱정하며 마음뿐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표했다"며 "문 대통령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반드시 극복할 수 있도록 조용히 응원하겠다며 문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우의와 신뢰를 보냈다"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0월에도 모친상을 당한 문 대통령 앞으로 친서 형식의 조의문을 보낸 적이 있다. 하지만 상황 여건과 친서의 내용 면에서 그때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당시 조의문은 의례적인 성격이 짙었고 특별히 의미 있는 내용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북한은 바로 다음날 단거리 발사체 2발을 발사하며 대남 강경기조를 확인했다.
반면 이번 친서는 "반드시 이겨낼 것으로 믿는다"거나 "마음뿐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안타까운 심정" 등의 간곡한 표현을 사용하며 한층 밀착해왔다.
지난해 금강산 관광단지를 둘러보며 "보기만 해도 기분 나빠지는 너절한 남측 시설들을 싹 들어내라"고 했던 것과 확연히 달라진 태도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실패 이후 그 책임을 남측에 전가하며 깊은 실망과 불신을 직간접적으로 표출해왔다.
'오지랖 넓은 중재자' 등의 비난조 발언은 사실상 문 대통령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의 이 같은 태세 전환은 코로나19라는 전혀 뜻밖의 재앙적 상황과 떼어 생각할 수 없다.
미국의 제재 압박에 맞서 정면 돌파를 선언했지만 당장 중국, 러시아과도 국경을 차단할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거의 유일한 보급로를 계속 닫아놓을 수도, 그렇다고 국가 존망까지 위협하는 코로나 방역을 포기할 수도 없는 절체절명의 딜레마다.
북한은 자국 내 코로나 감염자가 없다는 기존 주장을 뒤집고 최근에는 7천여명의 '의학적 감시 대상자' 존재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다.
정보당국은 북한 내 사정이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하고, 따라서 머지않아 불가피하게 국제사회의 지원을 요청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은 남한이 코로나19 사태에서 뛰어난 방역 역량을 보여주자 대남 협력 필요성을 느끼고 사전 포석을 둔 것으로 풀이된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만약 한국 정부가 머지않아 코로나19의 확산을 억제하는데 성공한다면 북한은 한국으로부터 매우 절실한 보건의료협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물론 북한으로서는 '통미봉남' 기조를 접고 남측에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는 셈이지만 자존심을 따질 만한 계제가 아니다.
오히려 전염병 퇴치는 인류 공동의 과제라는 명분하에 남북협력을 다시 싹틔울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다.
특히 김 위원장이 이번 친서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우의와 신뢰'를 확인한 것은 정상간 '친서외교'을 재가동하려는 신호탄으로도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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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 청와대는 김 위원장이 한반도 정세에 대한 진솔한 소회와 입장도 밝혀왔다고 전했다.
다만 이번 친서가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 제1부부장의 원색적 비난 직후에 나온 것은 북측 진의에 대한 속단을 어렵게 하는 부분이다.
김 부부장은 3일 밤 발표한 담화에서 '겁먹은 개' '저능한 사고방식' 등의 거친 말투로 청와대를 공격해 180도 이미지 변신을 했다.
겉으로 드러난 모양새만 보면, 여동생이 악역을 맡아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 뒤 오빠는 이를 달래듯 유화 제스처를 보이는 화전양면의 역할 분담으로 극적 효과를 극대화한 셈이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김 위원장은 사안의 경중과 성격에 따라 원칙적인 대응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듯하다"면서 "따라서 이번 친서를 너무 확대, 비약해서 해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며 기대감을 낮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