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3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총선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노회찬 전 당대표의 사망 후 한 때 당 지지율을 10%대 중반까지 끌어올리며 21대 국회에서 단독 교섭단체 구성까지 꿈꿨던 정의당이 좀처럼 부진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20대 국회의 최대 과제이던 선거제 개편에는 성공했지만, 위성정당과 비례대표 자격논란 등 각종 논란에 휩싸이면서 20대 총선 이상의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경향신문이 메트릭스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27~28일 실시한 후 30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의당의 비례대표 정당 지지율은 14.9%로 미래한국당 19.8%, 더불어시민당 18.6%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p)
단순 정당 지지율도 더불어민주당 46.4%, 미래통합당 22.0%에 이어 7.2%로 3위를 지켰다.
이 뉴스를 접한 다소의 정의당 관계자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줄줄이 바닥세를 보였던 당 지지율과 비례정당 지지율이 다소 오르면서 숨통이 틔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는 속내를 털어놓는 정의당 관계자도 적지 않았다.
같은날 발표된 리얼미터가 YTN의 의뢰로 지난 23~27일 실시한 조사(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1.9%p)에서는 비례대표 정당 지지율이 직전 조사보다 0.1%p 떨어져 5.9%에 그쳤기 때문이다.
지난주 3.7%까지 떨어졌던 정당 지지율도 4.6%로 소폭 반등했지만 여전히 기대 이하 수준이다.
정의당의 이같은 저공비행은 예정된 수순이라는 지적이 당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상한(캡)이 있는 부분형이긴 하지만 연동형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제도 개편이 이른바 '여야 4+1'의 공조로 통과됐을 때만 해도 사실상 정의당의 승리라는 분석이 다수였다.
정당 지지율에 비해 지역구 의석이 많은 민주당이나 통합당과 달리 정의당은 지역구 의석이 적어 비례의석을 다수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장밋빛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통합당이 비례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창당을 공식화한데 이어 민주당도 보수세력 과반확보 저지라는 명분으로 비례정당 참여 의사를 밝히면서 비례의석 경쟁 구도가 순식간에 뒤바뀌었다.
특히 민주당 주도의 더불어시민당에 이어 친문 진영의 지지세를 등에 업은 열린민주당까지 독자적인 세력을 확보하면서 범진보진영이 비례 파이에서 정의당의 몫이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여기에 당의 총선 얼굴격인 비례 1번 류호정 후보의 롤(LOL, 리그오브레전드) 대리게임 논란까지 불거진 것도 지지율 곤두박질의 원인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를 두고 당내에선 사안마다 조급한 대응으로 일관한 것이 가장 큰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한 정의당 관계자는 "선거제 개편 때도 비례의석 확보를 위한 거대 양당의 꼼수 움직임을 미리 예상하고 이를 저지할 수 있는 방안과 논리 구상에 최선을 다했어야 함에도 21대에 확보하게 될 의석에 먼저 관심이 가있던 것이 사실"이라며 "민주당이 비례정당 창당에 합류해달라고 했을 때도 긴 호흡으로 협상을 하면서 참여할 수 없는 명분과 논리를 탄탄히 하거나, 다른 군소정당을 포섭해 연대의 구심점 역할을 하는 등의 노력이 필요했음에도 그저 단칼에 거절하기에만 급급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심상정 대표가 통합당이 원내 1당이 된다면 문재인 대통령이 탄핵을 당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정말 국민의 뜻에 의해 탄핵 위기가 온다면 민주당이 과반을 가진다고 해도 막을 수 없다'고 말한 점도 역풍이 됐다"며 "본뜻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민주당이 탄핵을 못 막는다'는 점만 왜곡된 채 퍼져나가면서 문 대통령과 정의당을 함께 지지하던 지지층이 크게 떨어져나갔다"고 토로했다.
피부에 와 닿을 정도로 위기의식에 직면한 정의당은 비례순번 지정과정에서 청년·시민단체 등을 우선 배려했던 과감한 시험의식에서 탈피해 노동과 사회적 약자 등 전통적 지지층, 이른바 '집토끼'의 마음을 얻는데 다시 전력을 정비하기 시작했다.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연 심 대표는 "오늘 새벽 4시에 6411번 버스를 탔다"며 "투명인간을 대변하고자 했던 고(故) 노회찬 대표의 6411번 버스의 정신은 어떤 화려한 강령이나 강한 이념보다 더 큰 힘을 갖고 있다"고 선거 캠페인 계획을 소개했다.
노동자들을 대변하는 노회찬, 6411번 버스를 들고 나오면서 다시 이들 중심의 선거운동을 펼칠 것을 예고한 셈이다.
또 정의당은 심 대표에게는 '원칙을 지킨다'는 기조 아래 비전 제시 등 긍정적인 부분만을 강조하는 역할을 맡기고, 꼼수와 후보자격 등 각종 논란으로 시끄러운 각 당의 비례 후보 관련 현안에 대해서는 다른 루트로만 대응하는 투트랙으로 선거를 치를 계획이다.
정의당 관계자는 "코로나정국으로 총선 현안이 묻히고 있고, 범진보의 지지가 비례 위성정당으로 상당수 향한 상황에서 정의당에 남은 것은 원칙을 지키고, 그간 한국 정치에서의 정의당의 역할이 어떠했는지를 강조하는 것 뿐"이라며 "복잡하게 구성돼 이해가 어려운 비례정당의 특성, 막판으로 갈수록 진짜 지지층 결집이 중요하다는 점을 감안해 단순한 메시지로 기성 정당의 장점을 최대한 어필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폼페이지를 참조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