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지법 부장판사와 서울변호사회 회장을 거쳐 초대 헌법재판소장(1988~94년)을 역임한 조광규 전 헌법재판소장. 2018년 12월24일 향년 93세로 별세했다. (사진=헌법재판소 제공)
공무 출장 중에 현지에서 발생한 쿠데타로 발이 묶이자 정부가 긴급 후송대책을 세웠던 30여년 전 사건이 눈길을 끌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세계 곳곳의 항공편이 끊기면서 교민 탈출용 전세기가 잇따라 급파되는 현실과 닮은 듯 다른 사건이다.
외교부가 31일 비밀 보존기한 30년이 지나 공개한 외교문서(1577권, 24만여 쪽)에 따르면 1989년 12월 1일 조규광 당시 헌법재판소장이 필리핀을 방문한 시기에 군사 쿠데타가 일어났다.
1987년 쿠데타 주동자인 호나산 전 대령 추종세력이 공군사령부와 국영TV를 장악한 데 이어 마닐라 국제공항과 시내 일부를 점령한 것이다.
이에 따라 당시 외무부는 현지 공관에 외교적 대응과 함께 공관원과 현지 교민, 조 소장 등 현지 방문자에 대한 신변안전 조치에 만전을 기하라고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주필리핀 대사관은 사태 초기에 쿠데타 성공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본국에 입장 표명을 유보할 것을 건의하는 등 상황은 긴박했다.
대사관은 1일 본국 보고에서 “87년 쿠데타에 비해 매우 조직적이고 면밀히 계획된 작전에 의해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며 12시 00분 현재 상황은 반군 측에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보임”이라고 타전했다.
이어 “국방부가 반군 측에 완전 점령될 경우 정부군 지휘체계가 마비되어 아키노 대통령 정부의 전복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이라고 덧붙였다.
또, 이날 오후 1시 40분 보고 때는 미국과 프랑스 등이 아키노 정부를 지지하고 있다면서도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국가들은 입장 발표를 유보하고 있음을 지적하며 좀 더 관망할 것을 건의했다.
하지만 쿠데타 사태는 미국의 아키노 정부 지지 선언 이후 급격히 수습되며 3일 천하로 마무리 됐다.
조 소장은 그 동안 마닐라 시내 호텔에 머물다 정부군이 반군을 제압한 다음 날인 4일 귀국했다.
주요 인사가 출장 중 쿠데타를 만난 일은 같은 해 또 발생했다. 조상호 대통령 특사는 6월 30일 아프리카 수단 방문 중에 쿠데타로 공항이 폐쇄돼 출국을 못 했다.
이에 주수단 대사관은 정부와 공항을 상대로 특별교섭을 벌여 이틀 뒤 파리행 항공편으로 수단을 빠져나왔다.
한편 올해 공개된 문서에는 △우루과이라운드협상 △미국 무역통상법 Super 301조 협의 △재사할린동포 귀환 문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과의 협의체제 수립 △동구권 국가와의 국교수립 관련 문서 등이 포함됐다고 외교부는 설명했다.
공개된 문서 원문은 외교부 외교사료관 내 ‘외교문서열람실’에서 누구나 열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