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직장에서 오래 일하는 것이 요즘은 정말 희귀한 일이 되고 있다. 더구나 대통령을 지키는 경호원은 직업 특성상 장기간 근속이 어렵다. 정권이 교체되면, 경호 인력 역시 상당부분 바뀌게 되고, 강한 체력과 순발력이 필요한 만큼, 연령에도 자연스럽게 제한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런데 한 명의 대통령을 25년째 경호하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아프리카의 대통령이다. 어떻게 한국사람이 이역만리 아프리카에 있는 대통령의 경호를 맡게 됐을까? 1,2년도 아니고 25년씩이나 말이다. 문영기의 독(獨)한 인터뷰에서 가봉 봉고대통령의 경호원, 박상철씨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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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봉에서 북한국가가 연주된 사연1982년 8월, 가봉의 수도 리브르빌 국제 공항에 대한항공 특별기가 도착했다. 트랩에는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이 내려서고 있었다. 군악대의 연주가 시작됐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전두환 대통령의 얼굴이 딱딱히 굳어졌고, 수행원들의 낯빛 역시 새하얗게 질리고 있었다. 장세동 안기부장이 뛰어나가 군악대 지휘자의 팔을 내리 쳤고, 군악대의 연주는 중단됐다.
가봉 군악대가 연주하는 곡은 남한의 애국가가 아니라 북한국가였다.
당시 살벌했던 남북관계를 감안하면, 남한대통령을 영접하는 자리에서 북한국가를 연주한다는 것은 결례를 넘어, 위해행위로까지 간주할 수 있는 아주 치명적인 실수였다. 전두환 대통령은 방문일정 전체를 취소하라며 노발대발했고, 당황한 보좌진들은 영빈관에서 애국가를 다시 연주할 것과 가봉 대통령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봉고 대통령의 사과로 이 사건은 간신히 무마됐지만, 우리 외교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아찔한 장면 가운데 하나다.
그런데 이 사건은 엉뚱하게도, 한국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던 박상철씨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 당시 침착하게 대처하던 한국 경호원들에게 매료된 봉고대통령은 한국에 경호인력 파견을 요청했고, 선발과정을 거쳐 박상철씨 단 한사람이 뽑혔다.
◈ 백일된 아들 두고 떠난 아프리카 그가 아프리카로 떠날 당시 아내와 두 아들이 있었다. 1984년이다. ''''집사람이 원망 많이 했죠.. 하필이면 아프리카냐, 여기서도 편안히 먹고 살 수 있는데.'''' 하지만 그는 경호보다도 태권도를 보급하고 싶은 마음이 먼저였다.
''''한미 1군단에서 미군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프리카 경호원을 모집한다는 공고가 해외인력공사를 통해서 나온 거에요. 내가 하는 일이 군인들 태권도 가르치는 거니까, 아프리카가서 태권도 가르쳐 보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선발과정을 거쳐 4명이 선발됐지만,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었는지, 3명은 지원을 포기하고, 박상철씨 혼자만 아프리카 가봉으로 향했다. 그는 백일된 둘째아들의 잔치상도 못차려줬다.
◈ 한국과 인연 많은 봉고 대통령가봉의 봉고? 봉고의 가봉? 이렇게 헛갈리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을지 모르겠다. 박상철씨가 경호하는 가봉의 봉고대통령은 한국과 인연이 많은 사람이다. 그는 1975년 처음 한국을 찾았다. 당시 아프리카의 신생독립국들은 유엔에 가입하고, 비동맹 그룹을 형성했다. 비동맹국가들이 친북한 노선을 강화하면서, 아프리카 지역은 남북이 치열한 외교전을 벌이는 전쟁터가 됐다. 아프리카 중서부 지역의 가봉은 그 가운데 한 국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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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남한 정부는 가봉의 봉고대통령을 한국에 초청하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외교관례를 넘어서는 극진한 대접을 했다. 정관계 인사 천4백명이 공항영접을 나갔고, 연도에는 수십만명의 시민들이 동원돼, 지구상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아프리카의 대통령을 열렬히 환영했다.
외교적 성과를 이뤄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봉고대통령의 방한은 모 여성탤런트와의 염문설까지 만들어지는 등 갖가지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 염문설은 완전히 거짓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지만, 소문의 당사자는 이후 20년이 넘도록 연예활동을 할 수 없게 되는 등 후유증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그런 소문이 있었는데, 그것은 완전히 낭설이다. 심지어 2007년 봉고대통령 한국 방문이후, 봉고 대통령의 딸이 아직도 가봉에 살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한국의 모 일간지에서 가봉까지 취재를 하러 오는 해프닝까지 있었다. 결국 이 지역에 살던 한국인의 사기극으로 밝혀졌지만, 생각해보면 정말 우스운 일이다..''''
75년이후 봉고대통령은 한국을 세 차례 더 방문했다.
◈ 말은 안통해도 태권도는 통한다처음 그가 가봉에 도착했을 때 경호실에는 인력이 80명정도 있었다. 이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프랑스 사람들이었다. 불어 한마디 못하는 그가 경호실에 적응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더구나 프랑스 사람들은 키가 170cm 남짓되는 그를 깔보기 일쑤였다. 하지만, 그는 특유의 성실성으로 어려움을 극복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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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무가 끝나는 밤이면 불어공부에 매달렸고, 하루도 훈련을 거르지 않았다. 그리고 가봉출신 경호원들을 대상으로 태권도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대충 대충 무도를 가르치던 프랑스인 가라데 교관은 결국 박상철씨 때문에 3년만에 프랑스로 돌아갔고, 경호실의 무술은 가라데에서 태권도로 바뀌게 됐다. 가봉 현역군인들의 무술도 태권도로 정착됐다.
원칙대로 하는 것이 그가 사는 길이었다. 그는 대통령을 수행하면서, 경호수칙을 어긴 도지사를 몸으로 밀쳐낸적이 있다. 얼굴을 몰라 벌어진 해프닝이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대통령의 신임을 얻게 됐고, 경호 차장까지 승진했다.
◈ 25년동안 해온 민간 외교관 역할 그는 태권도 8단이다. 평일이면 경호업무에 매달리고, 주말이면 태권도 보급에 힘쓰고 있다. 가봉에 오면서 시작된 태권도 강습은 매주 거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현재 가봉의 태권도 인구는 30만명에 이른다.
가봉 전체 인구가 150만명이니 인구의 20%가 태권도를 배우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의 지시로 태권도 전용 체육관도 짓고 있다. 아무 도움없이 박상철씨가 혼자 만들어낸 결과다.
민간외교라는 말이 딱 어울린다. 하지만 상황은 아직도 열악하다. 국토의 85%가 정글로 이뤄진 아프리가 중서부의 작고 가난한 나라 가봉에서 어쩌면 태권도는 사치스러운 일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는 자비를 들여 태권도복을 사 입히고, 교습료도 없이 하루에 서너군데씩 돌아다며 열성적으로 태권도를 가르치고 있다. 매년 그의 이름을 걸고 열리는 태권도 대회 ''''박상철 챌린지''''는 2천여명이 참가하는 가봉 최대의 스포츠 축제다.
현지 사정을 잘 알다보니 가봉에 부임하는 대사나 외교관들도 그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웬만한 민원도 그의 손을 거치면 해결되지 않는 것이 없다. 가봉 수도 리브리빌에서 ''''미스터 박''''은 어려운 일을 해결하는 마스터 키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아쉬움도 있다.
''''가봉은 아프리카 다른 국가에 비해 정정(政情)이 안정돼 있고, 부존자원이 많은 나라다. 개발 가능성도 많이 있다. 한국은 이미 30년전에 외교관계를 맺고, 백화점을 짓는등 투자를 많이 했지만, 상황판단을 잘못한 측면이 있다. 수교 이후 몇 년 지나지 않아 한국 기업이 철수 한 이후, 석유를 비롯한, 우라늄등 막대한 지하자원이 개발되기 시작했고, 대부분 개발권은 현재 중국기업들이 갖고 있다. 조금만 더 시간을 가지고 기다렸더라면 좋은 결과를 맺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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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퇴해도 살고 싶은 나라 가봉
현재 그의 가족은 파리와 한국에서 살고 있다. 많지도 않은 네 가족이 가봉과 프랑스, 한국에 흩어져 살고 있다. 지난 3월 그의 큰 아들이 한국에서 결혼을 했다. 가족들에게 가장 미안하다. 하지만 그는 은퇴를 해도 가봉에 살고 싶다. [BestNocut_R]
그는 현재 가봉 경호실에서 특별한 직책을 맡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봉고 대통령과 그의 가족들에게 박상철씨는 이미 경호원의 신분을 넘어 가족과 같은 존재다. 국가 시스템이 정교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오랜 기간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해온 박씨의 존재는 남다를 수 밖에 없다. 박상철씨에게도 마찬가지다.
''''은퇴하더라도 체력이 닿을때 까지 이곳에서 태권도 가르치며 살고 싶습니다. 한국보다 가봉에 더 정이 많이 들었어요.. ''''
지구 반대편 적도의 땅에서 그의 힘찬 구령소리가 언제까지 울려 퍼질 수 있을까.
그가 고백하는 대통령 경호 에피소드 한토막 |
''''봉고 대통령은 시내의 나이트 클럽에도 출입을 했다. 경호원 서너명을 데리고 갔는데, 불량한 청년 몇사람이 대통령을 알아보고 시비를 걸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대통령에게 시비를 건다는 것 자체가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다른 임무를 수행하고 있던 나에게 전화가 왔다. 너하고 붙겠다는 애들이 몇 명있는데, 나이트 클럽으로 당장 오라는 거다. 부랴부랴 달려갔는데, 이미 상황은 종료된 뒤였다. 점잖게 타일러 돌려 보냈다고 했다. 같이 간 경호원들은 뭘하나 싶어, 정말 긴장하고 달려갔는데,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우습기도 하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