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여야 정치권은 총선 이후 당을 재정비하면서 특권을 내려놓겠다고 큰소리쳤다. 심지어는 세비를 반납하겠다는 말까지 나왔다. 그래서 국민들은 감동마저 느끼며 박수를 보냈다.
그런데 19대 국회의 의원세비는 18대 평균과 비교해 20.3% 올랐다. 액수로는 연봉 2,326만 원 인상이다. 지난해 세비와 비교하면 15.2% 올랐다. 경기침체로 고통 받는 대한민국에서 봉급이 15% 인상된 직종은 없다.
그런데 국회 예산은 줄었다. 국회의원 세비를 포함한 전체 국회 예산은 지난해 5,175억 원에서 올해 5,060억 원으로 115억 원(2.2%) 줄었다. 그렇다면 어디서 깎아 국회의원 세비를 올렸을까?
선거 때마다, 정치권에 국민의 질타가 퍼부어질 때마다 약속과 다짐이 쏟아져 나온다. 그러나 거의 모두 당리당략에서 나오는 헛말일 뿐이다. 정치권의 기득권과 특권은 결코 줄어들지 않는다. 일본 의회는 지난 3월 세비를 14% 자진 삭감했고, 미국 상·하원도 세비를 동결하는 등 국민과의 고통분담에 나섰다. 물론 미국·일본 국회의원들도 정치적으로 시늉만 낸 것일 수도 있다. 그러면 이 나라 국회의원 역시 시늉이라도 내면서 성의를 보여야 할 것 아닌가.
국회의원 세비는 항상 조용히 오른다. 이번에도 이한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세비가 20% 올랐으니 의원들의 생산성도 그만큼 높여야 한다''''고 다그치는 과정에서 알려졌다.
국회의원 세비는 그렇게 슬그머니 마구(?) 올릴 사안이 아니었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이고 국민 여론은 자기들 대표의 세비인상을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대 국회 임기 시작 직후인 지난 6월 말 실시된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삭감해야 한다'''' 29.9%, ''''현저히 줄여야''''가 33.2%였으며, 아예 없애자는 응답자도 14.6%나 됐다. 결국 국민의 대표들이 국민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다.
2
◈ ''''왜 국민은 속고 또 속을까'''' 정치인이 커다란 약속을 했다. 그동안의 경험으로 봐서 그런 일이 발생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이미 조사된 자료상에 나타난 확률로 봐도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사람들은 객관적 자료나 경험들을 무시하고 믿는다.
4대강 사업으로 홍수가뭄이 사라지고 엄청난 일자리가 생기고 경기침체로부터 벗어난다고 했다. 커다란 국제행사를 치르면 지역이 발전하고 부가가치가 몇 조, 몇 십조에 이른다고 했다. 반값 등록금 간단히 만들어 준단다. 자기를 국회의원으로, 대통령으로 뽑으면 잘 살게 해준다 한다. 국회의원 세비를 스스로 깎겠다, 국회의원 연금 안 받고 일하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다 과장되고 허황된 이야기들이지만 사람들은 ''''설마 저리 큰소리치는데 비슷하게는 이뤄지겠지''''라고 믿었다.
이것은 ''''감정추단''''에서 비롯되는 착각이다. 이성보다 순간적인 감정이 먼저 자리를 잡으며 판단을 흐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아주 간단하게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웃으며 다가온 사람과 찡그리며 다가온 사람 중에 누가 더 내게 유익할지는 이야기를 나누고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웃으며 다가온 사람 이야기는 들어줄 것이고 찡그린 채 다가온 사람은 빨리 끝내고 싶을 것이다. ''''걱정마, 책임지고 잘해 줄게'''' 다짐하며 결혼해달라는 사람과 ''''현실적으로 너무 어려워, 최선을 다해 볼게''''라며 조심스럽게 청혼하는 사람이 있을 때 어느 쪽으로 끌릴까? 자신의 이익이 걸린 문제에 부딪히면 감정이 먼저 작용하며 이성적 판단이 흔들리는 ''''감정추단''''이 이때 작용한다. 그래서 속기 쉬워진다. [BestNocut_R]
사람들은 세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을 나한테 좋은 것, 나한테 나쁜 것 두 가지로 빨리 간단히 결정하려 한다. 정말 그런가를 증명해야 하지만 생략하고 싶어 한다. 자신이 어느 한 쪽으로 기울 때 이 결정이 옳은 것일까 회의하거나 반박하고 반증해야 하지만 접어버리거나 자꾸 뒤로 미뤄 놓는다.
남녀가 연애할 때 발생하는 현상과 비슷하다. 처음 사귈 때는 정말 괜찮았는데 날이 갈수록 사람이 영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작심하고 나서서 상대를 다시 살펴보고 상대의 말을 철저히 검증해 바꾸려면 즉시 바꿔야 한다. 그러나 예전처럼 다시 잘해주겠지라고 기다리거나 처음 가졌던 호감이 너덜너덜 누더기가 될 때까지 버티다 만신창이가 돼 포기한다. 그 사람이 그렇게 할 줄 몰랐어...가 아니라 확인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는 것이다.
◈ 국민을 속이는 게 가장 쉬웠어요?
감정추단은 새로운 발표나 사실이 등장했을 때 좋거나 나쁘거나, 찬성할지 반대할지를 신속히 판단하는 방법이다. 특권 포기하겠다, 뼈를 깎는 쇄신을 하겠다...라고 하면 ''''좋은 거네, 당연히 찬성이지''''라고 바로 결정해버린다. 진짜 실천할 건지 가능성 있는 이야기인지의 판단은 생략된다. 그리고 그걸 말한 사람은 개혁의 이미지, 훌륭한 이미지로 머릿속에 남는다. 그 후에라도 그게 진심이었는지 어려움을 무릅쓰고 실천하는지 끝까지 확인하고 평가해야한다. 거짓말이면 좋았던 이미지를 꺼내 휴지통에 버려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다. 더구나 자신이 그 정치인의 지지자라면 ''''감정추단''''은 훨씬 강하게 이뤄진다.
인간이 자신의 이익에 반응해 성급히 판단을 내리고 처음 내린 판단에 붙잡혀 못 빠져 나온다는 걸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 정치선전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래 사람들이 너무 쉽게 속는단 말야''''... 자기는 빼고 따지는 것, 이것을 제3자 효과라 한다. ''''운전 중에 휴대폰 사용 위험합니다''''...하면 ''''아무렴 위험하지'''' 그래놓고선 운전 잘하는 나는 잠깐 해도 별문제는 없을 거라고 여기며 휴대폰을 집어 드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나야 속을 리 없다''''고 생각하며 ''''저건 다른 사람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제3자 효과''''와 ''''감정추단''''이 만나면 상승효과가 이뤄지며 국민은 정치인에게 속는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른다. ''''국민을 속이는 게 가장 쉬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