ㅇㅇ
노무현 전 대통령 1주기 추모행사를 놓고 서울광장 사용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논의의 핵심은 적법한 집회 신고까지 된 추모행사를 서울시가 왜 막느냐는 것이고, 서울시는 이미 광장 사용이 허가된 공연 일정이 있어 허가를 내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문제는 대규모 시민 집회가 열릴 때마다 서울광장 사용 문제를 놓고 똑같은 시비가 촉발되고 있지만 문제 해결의 키를 쥔 서울시와 시의회의 어정쩡한 태도가 오히려 불필요한 논쟁만 불러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락가락 하는 서울시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시민모임은 지난 13일 노 전 대통령 1주기 추모행사를 22일 오후 5~7시까지 서울광장에서 열기로 하고 서울시에 서울광장 사용을 신청했다가 당일 불허 방침을 통보받았다.
같은 날 오후 7시30분부터 2시간여동안 리틀엔젤스 공연이 이미 예정돼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에 한 시민단체는 서울시가 관 주도 행사로 서울광장을 점령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아울러 그 이면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행사와 같은 대중적 집회를 막기위한 저의가 깔려 있다고 덧붙였다.
여론이 악화되자 18일 서울시는 보도자료를 통해 리틀엔젤스 예술단과 추모 단체가 일정을 조정하면 추모모임을 허용할 수도 있다며 긴급 진화에 나섰다.
발표 내용만 보면 추모 단체가 원했던 22일에 추모행사가 열릴 수도 있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서울시의 발표는 리틀엔젤스 예술단과 추모 단체에 사전에 알리거나 양해를 구한 것이 아니었다.
언론에 발표부터 하고 뒤늦게 이런 내용을 양측에 통보했지만, 리틀엔젤스 예술단은 공연 일정을 연기할 의사가 없다며 서울시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그러자 서울시는 추모행사를 23일 열 수 있도록 허가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23일 행사는 서울시가 주관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게 없다는 자신감까지 내비쳤다.
이날은 미국의 바이올리니스트 필립 퀸트의 독주회가 예정돼 있다.
서울시가 말을 바꾼 그 시점에 시 문화예술과는 필립 퀸트측에 어떻게 이 상황을 설명해야 할 지 고민하고 있었다.
시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필립 퀸트는 국내 팬들에게는 생소하지만 국제적으로 꽤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이다"라고 전하면서 "서울시가 요청해 어렵게 유치한 공연인데 아주 큰 결례를 하게 됐다"며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런 일련의 상황을 보면 서울광장 사용에 대한 서울시 행정에 과연 원칙과 일관성은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
문화연대 최준영 사무처장은 "서울광장 사용 허가에 있어서 서울시가 일방적인 자의적 잣대를 들이댄다"고 비판했다.
시 공무원들 조차도 원칙없이 여론에 휘둘리는 서울시 행정에 자괴감이 들 정도라고 한탄한다.[BestNocut_R]
◆서울광장을 서울시가 장악했다?
시민단체들은 이번 사태와 관련해 "서울시가 서울광장을 장악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서울시가 매년 서울광장에서 개최하는 문화예술공연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
서울시는 지난 2007년부터 매년 5월부터 10월까지 5개월에 걸쳐 약 100회에 달하는 다양한 문화예술공연을 서울광장에서 개최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의 공연일정이 시민들이 많이 모이는 주말에 집중되기 때문에 정작 시민단체들이 행사를 준비하려 해도 꼭 필요한 날짜를 허가 받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불만이다.
이에 대해 문화예술공연 행사를 주관하는 서울시 문화예술과는 시민단체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시 문화예술과의 관계자는 "공연 일정도 광장 사용 60일 전부터 7일 전에 허가를 받아야 하는 조례에 따라 절차를 밟는다"면서 "오히려 다른 일정을 피해 공연일정을 잡아야 하기 때문에 어려움이 더 많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장사용 허가부서인 서울시 총무과는 "중복된 날짜에 사용 신청이 접수될 경우 서울광장을 문화 예술을 위한 공간으로 활용한다는 취지에 부합하도록 문화예술 관련 행사에 우선 순위가 주어진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대규모 집회 또는 정치적 집회와 문화예술 공연 행사 일정이 겹쳐 광장 사용 신청이 접수되면 공연 일정에 광장 사용을 허가한다는 얘기다.
광장을 관 주도 행사가 장악했다는 오해를 살 수 있는 대목이다.
◆자동폐기 직전에 놓인 서울광장 조례 개정안
시민단체들은 주민 발의에 의한 '서울광장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개정에 나서기로 하고 지난해 대대적인 서명운동을 벌였다.
서울광장을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꾸고 광장사용 목적에 집회를 허용하도록 하자는 주장이 주요 골자다.
6개월간 진행된 서명운동에는 조례 개정 청구에 필요한 서명인 보다 4,000여명이 더 많은 8만5,072명의 시민이 참가했고, 지난해 연말 서울시에 청구됐다.
시민단체가 청구한 조례 개정안은 서울시를 거쳐 지난 4월에 개최된 서울시의회 임시회에 상정됐으나 상임위인 행정자치위원회에서 보류됐다.
표면적인 이유는 '보다 심도있는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상임위의 한 시의원은 "조례 제·개정의 권한이 시의회에 있긴 하지만 해당 조례 개정안은 시의회에서 처리하기 껄끄러운 면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그는 "서울시 입장도 있고 중앙 정부, 경찰청과도 충분한 협의가 있어야 한다"며 말 끝을 흐렸다.
조례 개정안은 지방선거가 끝나고 현직 시의원들이 마지막으로 참석하는 6월 임시회에서 다시 논의될 예정이지만 여기에서도 부결되면 조례 개정안은 자동 폐기된다.
이 시의원은 "서울시장의 결단이 가장 중요한데, 시장과 같은 당 시의원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지금의 구조에서는 (조례 개정안이 통과되기는) 사실 어렵다고 봐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