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한국에 시집온지 일주일 만에 정신질환을 앓던 남편에게 살해된 베트남 여성 탓티황옥(20) 씨의 유족들이 14일 입국해 장례절차에 들어갔다.
부산지역 여성단체들은 결혼중개업체대표의 강력한 처벌과 함께 아시아 여성을 ''상품화''하는 결혼중개업체에 대한 관계당국의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 탓티황옥씨 유족 입국, 부산의료원에 빈소 차려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며 한국땅을 밟은지 일주일 만에 남편에게 처참하게 살해된 베트남 여성 탓티황옥(20) 씨.
그녀의 부모는 14일 오전 부산을 방문하자마자 딸의 시신이 안치된 사하구 모 병원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어떻게...이럴수가. 말도 안된다. 딸아, 내 딸아."
아버지 딱 상(54)씨는 그자리에 풀썩 주저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딸의 이름을 불렀다.
딸의 죽음을 믿을 수 없다며 눈물을 꾹꾹 눌러 담았던 어머니 쩡티웃(48)씨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며 실신했다.
이제 막 스무살인 탓티황옥씨. 결혼한 뒤 꼭 효도하겠다는 그녀는 결국 싸늘한 시신이 되어 부모님을 맞았다.
고된 농사일로 시커멓게 그을린 얼굴, 남루한 차림의 두 부부의 고통스러운 눈물앞에 동행한 부산지역 여성단체 관계자들은 어깨를 붙잡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이후 사하경찰서에서 딸의 유품을 받아든 유족들은 다시한번 가슴을 쳤다.
"많이 사랑해요" "한국말을 잘 못해요" "오빠 쉬세요" 등 한국말이 빼곡히 적힌 딸의 노트를 넘겨본 딱 상씨는 이렇게 착하디착한 딸에게 남편이라는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냐고 눈물을 삼켰다.
베트남에서 본 한국인 사위는 말끔한 얼굴에 점잖은 사람이었다.
아버지 딱 상씨는 "사위가 베트남에 밤 9시에 와서 다음날 아침 일찍 딸과 함께 한국으로 가버려서 대화할 여유는 없었지만, 겉보기에 아무 이상이 없어서 딸에게 당연히 잘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어떤 이유로 딸이 목숨을 잃게 됐는지 그 원인이 명백히 밝혀져야 하고, 조사도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어머니 쩡티웃씨도 "우리가 시골에 살아서 딸이 한국에 갈 때도 제대로 배웅을 못한채 전화로 인사를 한 것이 마지막 이었다"면서 "딸이 마지막으로 숨을 거둔 곳에 들러서 미안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고 울먹였다.
유족들은 베트남 전통절차에 따라 탓티황옥씨가 숨진 사하구 신평동에서 초혼제를 지낸 뒤 시신을 화장해 베트남으로 옮길 것으로 알려졌다.
탓티황옥씨의 빈소는 연제구 부산의료원에 차려져 시민들의 조문도 받을 예정이다.
◈ 여성단체 "책임자 처벌, 결혼중개업소 폐단 개선돼야"이주여성다문화가족센터 ''어울림'' 등 여성단체 관계자 30여명은 이날 오전 11시, 부산 사하경찰서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탓티황옥씨 살해사건과 관련해 철저한 진상파악과 책임자 처벌을 촉구했다.
구수경 여성문화인권센터 대표는 "아시아 여성을 상품화하고 임권을 침해하는 국제결혼관행에 대해 우리 사회가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의문"이라며 "결혼알선업체들의 상품화와 거짓된 정보때문에 폭력과 이처럼 폭력과 살해당하는 현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또, 구 대표는 "이주여성들은 가사도우미, 우울증에 걸린 남편을 돌보고, 치매에 걸린 노부부를 돌보는 간병인, 잠자리 파트너가 아니라"며 "낳은 어머니도, 형제도 감당할 수 없는 남성을 어리고 소통이 되지 않는 가난한 이주여성에게 떠넘기려는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한 제2, 제3의 탓티황옥의 비극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베트남인 김나현 어울림 상담실장은 "한국인과 결혼한 이주여성들은 도망갈 수 있다며 신분증도 압수당하고, 자국어로 대화도 할 수 없으며, 외출을 할 수도 없다. 심지어 ''내가 얼마나 큰 돈을 주고 너를 사왔는데 말을 안듣냐''는 언어폭력도 당한다"면서 "아시아 여성을 상품화하는 결혼 중개업에 대한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여성단체들은 결혼대행업체 대표를 피고소인으로 하는 고발장을 사하경찰서에 제출했다. [BestNocut_R]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임신 중이거나 갓난아이를 안고 온 이주여성들도 상당수 참석했고, 참석자들 대부분이 검은색 옷을 입어 고인의 넋을 기렸다.
또, 베트남 언론 기자들도 직접 참여해 취재에 나섰고, 최근 베트남에서는 탓티황옥씨 살해사건과 관련해 국제결혼에 대한 문제점이 연일 대서특필돼 반한감정도 일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 부산경찰, 국제결혼중개업체 일제 점검 나서 이번사건을 계기로 경찰도 국제결혼중개업체의 불법행위 근절을 위해 본격적인 움직임에 나섰다.
부산경찰청은 14일부터 부산지역에 등록된 98개 국제결혼 중개업체를 비롯해 인터넷 공간에서 영업중인 미등록 중개업체와 개인사업자까지 포함해 국제결혼 알선 사업자에 대한 무기한 일제점검을 벌인다고 밝혔다.
경찰은 중개업체 사무실과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집중 점검해 미등록 영업행위는 물론 거짓 정보 제공 등 무리한 국제결혼 알선 행위가 적발되면 즉시 형사처벌하고 관할 자치단체에도 통보해 행정처분과 과태료 부과 등도 병행하도록 할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