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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팎에서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현병철 위원장이 사실상 사퇴 의사가 없다는 뜻을 밝혔다.
현병철 위원장은 8일 2명의 상임위원이 동반 사퇴한 이후 처음 열린 전원위원회에서 "인권위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두 상임위원이 사임한 데 대해 매우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이번 사태의 옳고 그름을 떠나 위원회 수장으로서 이번 파장을 일으킨 것에 대해 매우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소회를 밝혔다.
현 위원장은 그러나 "취임 후 지금까지 반드시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기본원칙이 있는데, 바로 인권위의 독립성과 인권위가 국민의 신뢰를 바탕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사실"이라며 "업무를 추진하면서 이런 원칙을 추호도 소홀히 한 적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이어 "여러 가지 사건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맡겨진 소임을 추호도 지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당장 해결해야 할 안건을 처리했으면 한다"고 말하며 회의 진행을 서둘러 사실상 사퇴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에 반발한 장향숙 상임위원은 발언권을 요청해 "위원장의 긴 말씀 속에서도 책임은 찾아볼 수 없었다"며 "위원장이 사퇴의 본질을 은연 중에 가리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내일 국감만 마치면 조용해지겠지'라는 식의 대응은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위원장이 인권위 안팎의 사퇴 요구에도 입장을 밝히지 않은 채 무책임한 말만 반복할 경우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회의장을 퇴장했다.
장주영 비상임위원도 "두 상임위원의 사퇴는 전원위 운영 개정안이 직접적인 계기 같지만 실상은 현 위원장의 취임 이래 계속돼 온 불만이 표출된 것"이라며 "위원장이 비상 사태를 수습하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가려 한다면 이 자리에서 안건을 심의할 이유도 없다"면서 장 위원을 따라 나섰다.
이에 대해 현 위원장은 "일단 오늘 안건을 처리한 뒤 충분히 논의하려 했다"면서 "이번 사태에 대한 여러 위원들의 의견을 말씀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갑자기 보수단체 회원들이 회의장 난입을 시도하면서 회의장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 회원 30여명은 최근 인권위가 '군대 내 동성애 처벌을 규정한 군형법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내용의 결정을 내린 것에 반발하며 회의장 난입을 시도했고, 이 과정에서 회의장 출입문이 파손되고 주변 화분이 깨져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기도 했다.
이 와중에서 현 위원장과 김태훈 비상임위원 등 보수성향의 위원 5명은 회의를 속개, 상임위원 임명 전까지 상임위 안건을 전원위에서 다루도록 하는 내용의 임시 운영방안을 통과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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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법 개정안에 대한 인권위 의견표명을 촉구하는 내용의 안건은 발의자인 장 위원이 퇴장함에 따라 오는 22일 전원위에서 재상정 여부가 결정된다.
이에 앞서 유시춘 전 상임위원 등 전임 인권위원 15명은 이날 오전 서울 중구 환경재단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현 위원장의 인권의식과 지도력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며 "현 위원장은 이번 파행에 대해 어떤 형태로든 입장을 밝히고 사퇴를 포함한 책임 있는 처신을 취하라"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