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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지중지 키우던 소와 먼길 떠난 한 농부

  • 2011-02-07 11:13

 

구제역이 결국 축산농민을 죽음으로까지 내 몰고 말았다.

충북 충주의 시유지를 임대해 방 2칸을 짓고 어렵게 축산업을 영위해 오던 60대 축산농민이 구제역 양성 판정을 받자 실의에 빠진 나머지 농약을 마시고 숨져 주위를 안타깝게 하고 있다.

지난 4일 낮 12시 30분께 충주시 가금면의 한 야산에서 인근 한우 농장을 운영하던 김모(61)씨가 독극물을 마시고 숨져 있는 것을 순찰 중이던 경찰관이 발견했다.

구제역 발생이후 방역과 살처분 작업에 따른 과로로 공무원들이 사망한 적은 있지만 농민이 비관 자살한 것은 김씨가 전국서 처음이다.

경찰은 “현장에 농약병이 있었고, 발견 당시 김씨는 반듯이 누운 상태로 외상 등 특이한 점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 주변에는 제초제 일종인 농약 ‘크라목숀’이 먹다 남겨진 채로 발견돼 음독에 대한 정황을 뒷받침했다.

유족은 “지난 1일 키우던 소가 구제역 양성 통보를 받은 후 남편이 오후 5시께 집을 나가 이틀이 넘도록 돌아오지 않아 설날인 3일 오후 3시께 경찰에 가출신고를 했다”고 말했다.

부인 박모(49)씨는 지난달 28일 “방목 중인 소가 발굽에 물집이 생기고 침을 흘리는 등 구제역이 의심스럽다”고 구제역 의심신고를 한 뒤 가슴 졸이며 방역당국의 결과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던 중이었다.

이런 가운데 구제역 통보를 받은 김씨의 무단가출은 가족들에게 불안감을 안겨다줬고, 이 같은 불안감은 곧 죽음이라는 현실로 다가왔다.

마음의 고통을 이기지 못한 김씨는 결국 가족들이 보지 않는 사이 집을 나와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가고 말았다.

특히 김씨에게는 팔과 다리가 불편한 지체장애를 앓는 부인과 이제 13살 된 초등학교 6학년생의 아들이 있어 주위를 더 안타깝게 하고 있다.

주민 김창섭(56)씨는 “30여년 전 경북 봉화에서 우리 마을로 이사와 남의 농장의 일을 봐주다 소 1마리를 키우기 시작해 현재 30마리까지 불렸다”며 “마을에서 2㎞ 떨어진 산 중턱에서 소를 키워 그 집만은 청정지역이라 피해갈 줄 알았는데 구제역이 사람 목숨까지 잃게 하네요…”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영강(57)이장은 “부인이 몸이 불편한데도 아침저녁으로 소밥을 챙겨주곤 했다. 소를 애지중지하며 신경을 참 많이 썼는데…”라고 말했다.

김 이장은 “구제역 양성 판정을 받은 날도 김씨가 하염없이 울기만 했다”며 “평생 소와 생활하고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워온 소를 땅에 묻어야 할 생각에 오죽했겠나”라며 안타까운 심정을 드러냈다.

마을 주민 정모(68)씨는 “마을사람 대부분이 축산업에 종사하고 있어 (구제역이 옮을까 봐) 그의 빈소를 찾아 조문할 수조차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며 아쉬워 했다.

김씨의 유해는 6일 오전 8시 탄금대장례식장을 떠나 충주화장장에서 화장을 마친뒤 인근 수목원에 뿌려졌다. 이날 장례식에 참석한 유족과 충주시 방역 관계자, 주민 등 50여명은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눈물로 애도했다.

지체장애가 있는 부인과 어린 아들의 인생을 걸머지고 힘들지만 성실하게 살고자 했던 한 가장의 소박한 희망을 송두리째 앗아간 구제역의 재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충주시에 따르면 5일 현재 67건의 구제역 의심신고가 접수돼 45건이 양성판정을 받았으며, 12건은 검사가 진행 중이다.

충주시 관계자는 “보다 철저한 방역으로 더 이상 안타까운 희생이 방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동양일보 장승주 최병수 기자/노컷뉴스 제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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