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
20일 오후 찾아간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의 한 마을. 구제역의 손톱이 할퀴고 지나간 풍경들은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쉽게 발견됐다.
주민들이 애지중지 키운 소와 돼지 1천여 마리가 땅에 묻히면서, 평소 여물 씹는 소리로 떠들썩했을 축사는 고요 속에 텅 비었다. 일요일 낮인데도 길가 역시 인적이 드물어 을씨년스럽기까지 했다.
다만 10여개 축사 옆에 있는 매몰지로부터 가축들이 부패해 발생하는 역한 악취만이 진동했다.
이미 '살처분 고통'을 겪었던 마을 주민들은 최근 침출수 문제로 또 다시 '2차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골짜기에 위치한 이 마을은 초입을 제외하고는 상수도가 닿지 않아 대부분 주민들이 지하수를 식수로 사용하고 있다. 침출수가 지하수에 스며들까봐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 마을은 지하 10m 깊이에 단단한 암반이 묻혀 있어 우물을 깊게 팔 수도 없는 곳이다.
지하 5m 깊이에 매몰돼 있는 가축이 부패되면서 나오는 침출수가 새어나간다면 마을 사람들의 유일한 식수원인 지하수 오염은 그야말로 시간 문제인 셈이다.
◈“지하수 끓여 먹어도 불안하다“ 마을 주민 한숨 이 마을에서만 30년을 살았다는 김은예(73) 할머니는 얼마전 운동을 위해 마을길을 걷다 푹 꺼진 매몰지를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고 했다.
김 할머니는 "지금도 냄새가 나는데 날이 따뜻해지면 얼마나 더 냄새가 나겠느냐"며 "한두 마리도 아니고 오염이 얼마나 될 지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당장 먹을 물 확보에도 비상에 걸렸다. "살처분 이후엔 지하수를 팔팔 끓여먹고 있다"는 김 할머니는 "그래도 마음이 안 놓여 결국 생수를 주문했다'고 말했다.[BestNocut_R]
"일을 안 하는 우리 같은 노인네들에겐 생수 사먹을 돈도 아깝다"고 버텼지만, "오염될 경우 팔팔 끓여봤자 지하수도 안전하지 않다"는 막내 아들의 성화에 결국 굴복한 것.
10년 넘게 자식처럼 키우던 젖소 11마리를 땅에 묻은 임모(60)씨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임씨 역시 부인과 아들도 마시는 지하수 오염 여부가 걱정돼 수질 검사를 의뢰했지만, 남양주시는 몇일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다.
임씨는 "조만간 검사를 해준다고 하니 일단은 끓여서 지하수를 먹고 있다"면서도 "솔직히 불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고 했다.
◈지하수 쓰는 마을 식당, 구제역 발생 이후 '매출 0원'매몰지 10m 앞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양모(57)씨도 식수 문제로 심적, 물적 곤란을 겪고 있다.
한때 '잘 나가던' 건축자재 도매상이던 양씨는 13년전 'IMF 구제'로 직격탄을 맞은 뒤 이 마을에 터를 잡고 재기에 성공했다.
하지만 양씨는 "13년전의 악몽이 다시 떠오르는 것 같다"며 이번엔 '구제역 사태'로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말부터 이 마을의 소와 돼지가 매몰되면서 양씨의 사업도 치명타를 맞고 있는 것.
양씨는 "가축들을 묻은 뒤로는 손님이 단 한 명도 오지 않았다"며 "매출 감소가 100%"라고 했다.
그는 "냄새도 문제지만 침출수 문제까지 불거져 희망이 없다'며 "이곳 지하수로 만든 음식을 먹으러 손님들이 올 것이란 기대는 사실상 접었다'고 한숨을 쉬었다.
ad
◈"상수도는 집 앞까지만" 수도 연결 비용은 고스란히 주민 부담
남양주시는 이곳 주민들의 불안을 달래기 위해 "마을에 상수도를 가설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주민들은 그다지 믿지 못하는 눈치다.
양씨는 "시청 수도과에 물어보니 정부 예산이 나오면 수질 검사를 한 뒤 상반기 안에 상수도를 연결시켜준다고 하더라"며 "그 돈이 언제 나올지도 모르고 각서를 쓴 것도 아닌데 어떻게 믿겠냐"고 했다.
마을 사람들을 더욱 분노하게 만든 것은 상수도 가설조차 100% 정부 지원이 아니라는 점이다.
양씨는 "도로를 따라 계량기를 묻어주는 것까지만 시에서 지원하고, 집으로 수도를 연결하는 건 본인 부담"이라며 "굴삭기로 땅 파고 인부 쓰고 하면 못해도 수백만원 들어가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그는 "나라가 마실 물 하나 보장해주지 않으면 우리처럼 힘없는 사람은 어떻게 살라는 것이냐"며 안이한 정부 대응을 원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