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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추진 중인 이른바 ''3색 신호등'' 체계에 대한 반대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사전에 별다른 대국민 홍보도 없이 기존 ''4색 신호등'' 체계를 갑작스럽게 바꾸면서 운전자들의 신호 착각에 따른 각종 사고위험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함께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지금까지의 시범운영 과정에서 신호등 교체에 따른 교통사고는 발생하지 않았고, 또 좌회전이나 우회전 차량 운전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장점 많은 제도"라고 강변하며 계속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각계의 우려와 비판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3색 신호등''을 고집하는 이유를 짚어본다.
▶ 기존 ''4색 신호등''과 새롭게 바뀐''화살표 3색 신호등''은 어떻게 다른 것인가?= 현재 좌회전 교차로가 있는 곳의 신호등을 보면 왼쪽부터 ''빨간색-노란색-녹색 좌회전-녹색'' 순서로 배치된 ''4색 신호등''이다. 색깔이 네개가 아니라 등이 네개라서 이렇게 이름을 붙인 것이다. 그런데 경찰이 추진중인 ''3색 신호등'' 체계는 직진차량과 좌회전 차량을 나누는 신호체계로, 직진차량 전용의 ''원형 3색 신호등''과 좌(우)회전 전용의 ''화살표 신호등''을 따로 구분해 설치한 것이다. 경찰은 특히 ''화살표 신호등''만 보고도 운전자들이 멀리서부터 좌회전이 가능한 교차로라는 점을 알게 되기 때문에 교차로 부근에서 무리하게 차선을 변경하는 데 따른 혼란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경찰의 이번 조치는 2009년 4월 교통운영체계 선진화방안 중 하나로 ''3색 신호등'' 도입이 결정된 뒤 지난 20일부터 서울 광화문과 세종로 등 11개 교차로에 설치돼 시범운영 중에 있다.
▶ 현재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된 것은 ''빨간색 화살표 신호'' 아닌가. 통상적으로 빨간색은 ''금지'', 화살표는 ''진행''을 상징하는데= 운전자들이 혼란을 겪는 경우다. "빨간색 화살표 신호에 진행하라는 건지, 멈추라는 건지 혼란스럽다"는 불만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직진차량 전용인 원형 신호등에 녹색불이 들어와 있고, 옆 화살표 신호등에 빨간색 좌회전 표시가 떠있을 경우다. 새롭게 바뀐 신호체계로는 이 경우 좌회전을 해서는 안된다.
하지만 운전자들은 으레 직진과 좌회전이 동시에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게 돼 순간적으로 좌회전을 하게 되면 마주오는 차량과 충돌할 수도 있다. 경찰은 좌회전 차량은 직진 신호등은 보지 말고 화살표 신호등의 색깔만 보라고 한다. 즉, 화살표 신호등에 녹색불이 들어오면 회전하고, 빨간색 신호에는 정지하면 된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운전자들의 인지체계에서 화살표는 ''긍정적 지시''로 인식돼 본능적으로 ''진행 가능''으로 반응하게 된다. 색깔 인식은 그 다음인 것이다.
경찰은 현재 시범운영 단계라서 이런저런 우려가 제기되고 있지만 빨간색 화살표에 불이 들어올 경우 정지해야 한다는 데 운전자들이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관련 민원과 불편이 잇따르면서 서울시는 시범운영중인 ''3색 신호등'' 교차로에 운전자들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적색 화살표 회전 금지''라는 푯말을 부착해 놓고 있다.
▶신호체계가 바뀌는 데 따른 혼란도 문제지만 불필요하게 예산을 낭비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지 않나?= 지금의 ''4색 신호등''''을 ''3색 신호등'''' 체계로 바꾸는 데 들어가는 국민혈세는 대략 340억원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다만 경찰은 신호등 교체에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기 위해 전국 2만여개 교차로 신호등을 앞으로 10년에 걸쳐 순차적으로 바꾼다는 방침이다. 이대로라면 향후 10년동안 3색과 4색 신호등이 병존한다는 말이 된다.
사실 교통신호 체계는 함부로 바꿔서는 안된다. 운전자들의 신호착각에 따른 인명사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욱이 ''좌회전 후 직진'''' 신호에서 지금의 ''''직진 후 좌회전''으로 바뀐 지도 1년 남짓 밖에 되지 않았다. 지난해 1월 ''''직진 후 좌회전''''이 도입된 것은 1980년대 초에 만들어진 ''''좌회전 후 직진'''' 신호가 "직진보다 좌회전을 우선시하는 게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 제기된 후 30년여년 만에 바뀐 것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국민들에게 어느 정도 친숙해진 현행 신호체계를 제대로 된 공청회 한 번 열지 않은 채 졸속으로 추진하면서 불필요한 논란만을 확산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찰은 왜 지금의 교통신호등 체계를 고치겠다는 건가? 어떤 근거를 내세우고 있는 것인가?= "4색 신호등은 우리나라에서만 사용되는 신호체계고, 3색 신호등이 국제적 표준이기 때문"이라고 경찰은 설명한다. 또 ''''Y자'''' 모양의 이형교차로에서 신호혼선을 방지할 수 있고, 4색 신호등에 부착된 보조 표지판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조현오 경찰청장은 지난 25일 기자간담회에서 "우리나라처럼 차로가 서너개씩 있는 곳에서는 좌회전이나 우회전할 때 이동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혼란을 없애는 장점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제도 도입 초기에 대국민 홍보를 제대로 하지 못해 불편을 야기한 점은 변명의 여지가 없지만 제도의 빠른 정착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로 강행 입장을 분명히 했다. [BestNocut_R]
그러나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말을 빌자면 교통신호 체계는 국가별로 다양해서 딱히 국제적 표준으로 정해진 것은 없다고 한다. 또 ''''도로교통에 관한 빈 협약''''이 있긴 하지만 현행 ''''4색 신호등''''도 여기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더욱이 국민들에게 친숙한 ''''4색 신호등''''에 결정적 하자가 있는 것도 아니다. 때문에 경찰이 ''''3색 신호등''''을 고집하는 이유를 두고 일부 네티즌들은 경찰과 신호등 제조업체의 유착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에 대해 경찰은 근거없는 억측일 뿐이며 제조업체는 공개입찰로 결정될 것이라고 해명한다.
▶ 어차피 지금은 시범운영이기 때문에 관련 정책이 폐지될 수도 있지 않나?
= 관련해서 조현오 경찰청장은 "장점이 많은 제도인 만큼 (일부 논란이 있다고 해서) 중도에 폐기하기 보다는 단점을 보완해 계속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시행 초기라 어느 정도 불편함이 있겠지만 ''''적응되면 괜찮을 것''''이라는 말이다. 운전자들의 잇단 불편과 민원에도 불구하고 ''''좋은 제도이니 따라오라''''는 식이다. 하지만 경찰의 ''''3색 신호등'''' 도입 취지에 ''''잘한 일''''이라고 칭찬하는 언론 평가는 거의 없다. 또 경찰이 내세우는 ''''3색 신호등''''의 장점 근거 역시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정말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국민이 동의하지 않거나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면 정책 운용의 탄력성과 유연성을 생각해야만 한다.
"국민보다 반발만 앞서가라"는 말이 있다. 교통신호등 개편을 둘러싼 논란이 경찰과 언론의 자존심 싸움도 아니고, 경찰의 주장대로 국민을 편하게 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한다면 원점에서부터 재검토를 해봐야할 사안인 것이다. 4.27 재보선에서 나타난 민심도 따지고 보면 정부의 일방통행식 독주를 심판한 것이다. 국민 위에 군림하지 않고 국민과 함께 하는 현명한 정부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 그런데 이같은 ''''3색 신호등'''' 논란 와중에 ''''남녀차별 신호등'''' 문제까지 제기되지 않았나?= 현재 보행신호등 화면에는 남성을 형상화한 모습만이 나타나는데, 서울시가 이를 ''''남녀차별''''로 규정하면서 이번 기회에 여성의 모습까지 포함된 보행신호등을 만들자고 경찰에 제안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일단 경찰과 민간인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서울시의 제안을 보류한 상태인데, 서울시가 외국의 사례 등을 추가로 제출할 경우 다시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서울에 있는 보행신호등의 LED화면을 교체하는데 드는 비용이 40억원을 넘는다고 한다. 그렇지 않아도 ''''3색 신호등'''' 정책에 대한 우려와 예산낭비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은 상황에서 제기된 보행신호등 논란이다. 경찰과 서울시의 난데없는 ''''신호등 정책''''이 불필요한 논란과 혼란만을 부추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