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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여성들을 공연 비자로 국내에 입국시킨 뒤 유흥업소에 넘겨 임금을 착취하고 성매매를 알선한 연예기획사 대표 등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기획사 관계자들은 예술인들의 공연 목적으로 발급되는 예술,흥행 비자(E-6)의 심사가 영상물로만 이뤄진다는 허점을 노렸다.
◇ "노래만 불러라" 믿고 한국 입성, 접대부 신세 "4살 난 아가가 너무 보고 싶고,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면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바파인(bar fine. 성매매를 뜻하는 은어)을 했어요. 정기적으로 바파인을 안하면 업주가 필리핀으로 강제로 돌려보낸다고 했거든요."
필리핀 마닐라에 사는 A(23)양은 지난해 7월, 신문에서 솔깃한 광고를 봤다. 노래를 조금 할 줄 알면 한국에 있는 유명 호텔 등지에서 공연을 할 수 있고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는 것.
A양은 한국과 제휴를 맺고 있는 현지 기획사를 통해 외국 연예인들에게 발급되는 예술, 흥행 비자(E-6)로 쉽게 한국에 입국했다. 하지만 그녀의 코리안 드림은 하루 만에 무너졌다. A양이 일할 곳은 유명 호텔이 아닌 거제에 있는 외국인 전용 술집이었던 것.
A양은 공연은커녕 하루종일 외국인 손님들의 술접대를 하고, 업주가 지시를 내리면 모 조선소 기숙사, 모텔 등 가릴 것 없이 성매매에 나서야 했다.
당초 월급은 98만 원을 받기로 계약했지만, 업주는 잠자리 제공과 지각 등 각종 빌미로 매달 50만원 넘게 떼어가 한 달에 30만원 안팎밖에 벌 수 없었다.
A양은 "밴드와 함께 노래만 부르기로 돼 있었는데, 거의 1년 넘게 쉬는 날 없이 외국인 남성 술접대와 성매매만 해야 했다"면서 "필리핀에 있는 아들과 온 가족들이 여기서 벌어서 보낸 돈으로 생활을 하기 때문에 힘들고, 두려워도 어쩔 수 없이 일을 했다"고 말했다.
◇ ''예술,흥행''비자 = 외국인 접대부 입국 통로 이처럼 필리핀·중국 등 외국 여성을 예술·흥행비자인 E-6 비자로 입국시킨 뒤 국내 유흥업소에 넘겨 임금 대부분을 가로채고, 성매매까지 알선한 연예 기획사 대표 등이 무더기로 경찰에 붙잡혔다.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외국여성을 공연을 목적으로 초청한 뒤 유흥업소에 넘겨 임금을 착취하고 성매매까지 알선한 혐의(성매매 알선·출입국관리법 위반 등)로 박모(31)씨 등 연예기획사 대표 1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또 외국인 여성을 고용한 뒤 성매매를 알선한 김모(58.여)씨 등 5개 주점의 업주 및 종업원 19명과 성매매를 해온 외국인 여성 62명을 입건하고, 상습적으로 성매매에 나선 필리핀 여성 9명을 강제출국조치했다.
연예기획사 박씨 등은 2009년 6월부터 최근까지 필리핀, 중국에 있는 현지 기획사와 짜고 외국 여성들은 국내로 입국시킨 뒤 주점으로 넘기고, 한 명당 월급의 50%를 커미션 명목으로 떼어가 약 5억원 상당을 챙겼다.
경찰조사결과 이들은 E-6 비자의 경우 영상물등급위원회가 영상물로만 심사를 한다는 허점을 노리고 쉽게 여성들을 국내로 데려온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필리핀 여성의 노래 공연으로만 비자를 발급받기 어려워지자, 중국 여성은 마술, 인도네시아 여성은 전통춤 등을 기본적으로 연습시켜 E-6 비자를 발급받고 있는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김씨 등 클럽 업주들은 외국인 여성을 접대부로 고용한 뒤 속칭 ''주스 커미션''이란 제도를 통해 월 200만원의 매출 목표로 술접대와 성매매, 주스 등을 팔아 목표 수익을 채우도록 강요하고 수익금의 80% 상당을 가로챘다.
특히, 업주들은 새벽까지 여성들을 일하게 하기 위해 잠이 오지 않는 약을 강제로 먹이고, 살이 찐다며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게 한 것으로 드러났다.
◇ 피해 여성들, 강제출국 당할까봐 신고 못해
외국 여성들은 임금 대부분을 착취당하고, 성매매를 강요받는 등 부당한 대우를 받았지만 이에 항의하거나 신고하면 강제출국을 당할 것을 우려해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이번 수사에도 외국인 여성들이 진술을 거부해 수사에 애를 먹다가 여성인권단체의 도움으로 피해사실을 확인해 역추적한 끝에 관계자들을 모두 입건했다.
여성단체들은 E-6 비자가 사실상 외국인 여성들이 접대부로 취업할 수 있는 통로를 열어 놓은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보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여성인권단체 살림 황혜영 활동가는 "국내 외국인 전용 술집에서 접대부로 고용된 필리핀 여성들의 경우 대부분 현지에 아이나 대가족을 부양하고 있어, 업주들의 횡포에도 이렇다할 대응을 할 수 없다"면서 "E-6비자가 악용되고 있는 만큼, 당국의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