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둘러싸고 벌어진 ''민주주의'' 대 ''자유민주주의'' 논쟁은 자유민주주의를 주장하는 쪽의 사실상 완승으로 끝났다.
교육과학기술부는 8일 민주주의 개념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자유민주주의''로 표현하는 내용의 중학교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확정해 발표했다.
이날 발표된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은 다음과 같이 사용됐다.
"4ㆍ19 혁명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의 발전과정을 정치변동과 민주화운동, 헌법상의 체제 변화와 그 특징 등 중요한 흐름을 중심으로 설명한다."
"표현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로 했지만, 실제 내용은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한다"고 교과부는 강조했다. 교과부는 "헌법재판소는 ''우리 헌법이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규정해, 자유민주주의를 헌법 질서의 최고 기본가치로 파악한다''고 판결했다"고 밝혔다.
"또, 다수의 헌법학자들도 ''헌법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자유민주주의를 의미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고 교과부는 주장했다.
그럼에도 자유민주주의 대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쓴 이유에 대해 교과부 김관복 국장은 "헌법 정신에 충실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그러나 김관복 국장은 "(역사교과서 제작에서) 기본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로 쓰는 게 원칙"이라고 못 박았다. ''자유민주주의 표현은 전혀 쓰지 않고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만 사용해 역사교과서를 제작해도 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집필기준의 또 다른 쟁점이었던 독재 표현 삽입 문구에서는 자유민주주의 표현이 그대로 사용됐다. "''자유민주주의''가 장기집권 등에 따른 독재화로 시련을 겪기도 하였으나 이를 극복하였으며"라는 대목이다.
"이 대목에서는 자유민주주의로 표현된 역사교육과정에 충실하기 위해 그대로 자유민주주의를 썼다"고 김관복 국장은 설명했다. 결국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은 ''한결같이 써 왔던 민주주의 표현이 옳다''는 주류 역사학계의 강력한 반발을 의식한 교과부의 고육책으로 해석된다.
이전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 들어 있던 ''독재'' 관련 표현을 없애려다 한 발 물러선 것도 역사학계를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교과부는 ''대한민국 정부가 유엔으로부터 승인을 받은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표현은 관철시켰다.
확정된 집필기준의 관련 대목은 "유엔의 결의에 따른 총선거를 통해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었고 유엔으로부터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로 승인받은 사실에 유의한다"이다.
[BestNocut_R]역사학계는 "객관적인 사실과 다르다"며 ''유일한''이라는 표현을 새로 추가하는 것의 부당성을 지적했지만, 교과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교과부는 원래 지난 1일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을 발표하려다 미뤘고, 이주호 장관은 역사학계, 그리고 보수 원로 헌법학자와 잇따라 간담회를 가졌다.
다양한 계층의 의견을 수렴하는 모양새를 갖추기 위한 것이었지만, 역사교육과정에서도 역사교과서 집필기준에서도 민주주의는 결국 자유민주주의로 바뀌었다.
역사학계의 지지 속에 수십 년간 한결같이 사용된 민주주의 표현이 생긴 지 불과 몇 달밖에 되지 않는 뉴라이트 계열 단체의 주장으로 한순간에 사라지는 일이 이명박 정부에서 벌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