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한날 별세한 박태준 회장과 위안부 할머니…극과 극의 삶

인물

    한날 별세한 박태준 회장과 위안부 할머니…극과 극의 삶

    떠들썩한 영일만 신화 속 김요지 할머니의 죽음이 슬픈 이유
    김 할머니 유족 "이틀 간 조문객은 50명 남짓"

    한 날 두 개의 별이 졌다.

    하나의 별에 대해 온 나라가 들썩 거리도록 찬양이 흘러나오는 동안 다른 하나의 별에 대해서는 말이 없었다.

    ㄴㄷㄷㄷ

     

    지난 13일 84세로 별세한 포스코 박태준 명예회장과 같은날 87세로 세상을 떠난 위안부피해자 김요지 할머니의 얘기다.

    한날 숨을 거둔 두 사람이지만 그 삶과 끝은 극과 극이라 할수 있을 만큼 달랐다.

    1927년 경남 동래군(현 부산시 기장군)에서 태어난 박 회장은 와세다대 공과대학을 거쳐 육군사관학교를 수석 졸업했다.

    이후 박 회장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을 건설했고, 이를 성공적으로 이끌면서 영일만 신화의 주역, 산업화의 초석을 다진 주인공으로 추앙받게 된다.

    이런 성과 때문인지 박 회장의 별세 뒤에 언론은 연일 셀 수 없이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별세 이튿날인 14일까지 서울 마포구 연세 세브란스병원에 차려진 박 회장의 빈소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등 정치인과 재계인사 등 유력인사들의 조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빈소에는 카메라 10여대와 기자 50여명이 상주하며 박 회장 장례와 관련된 일거투 일투족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반면 같은 날 세상을 등진 김요지 할머니의 삶은 고단하기 그지 없었다.

    1924년 전주에서 태어난 김 할머니는 18세 때 평양에서 일본인의 손에 붙들려 중국으로 기차로 강제 이송됐다.

    중국의 하이난성과 한구, 해남도 등지에서 김 할머니는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했다.

    해남도에서 해방을 맞은 뒤 다음해 봄 귀국했지만 위안부의 악몽으로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고 근근이 생계를 이어오다 1000회를 맞는 수요집회를 하루 앞두고 숨을 거뒀다.

    14일 서울 영등포 신화병원에 차려진 김 할머니의 빈소에는 유족과 취재기자 몇명을 제외하곤 조문객이 2-3명에 불과해 한산한 모습이었다.

    김 할머니 유족에 따르면 이틀 동안 김 할머니를 찾은 조문객은 50명 남짓이었다.

    김 할머니의 별세 소식을 다룬 기사도 열손가락으로 꼽을 만큼 적었다.

    안타까운 것은 박태준 명예회장, 포스코의 신화가 김 할머니 같은 위안부피해자 등 일제강제동원피해자들의 피땀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이다.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은 식민피해보상금격인 대일청구권자금로 지어졌다.

    지난 1968년 4월 우리나라 정부와 일본의 청구권 협정 결과로 받은 5억 달러 가운데 1억 천 만 달러가 포스코에 투입됐다.

    이런 이유로 일제강제동원피해자들은 '포스코가 대일청구권자금으로 설립된 만큼 일제강제동원피해자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은 14일 박태준 회장을 애도하며 "산업화의 기틀을 다진 고인의 공적은 높이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전제한 뒤 "다만 남다른 업적에도 불구하고 일제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 역사적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점"이라고 밝혔다.

    이들은 "포스코에 한일협정에 의해 일본정부로부터 받은 5억불(무상3억·유상 2억) 중 23%인 1억1948만 달러가 투입됐지만 민족기업이라는 포스코는 피해자들을 위한 어떤 노력도 하지 않았다"며 포스코의 책임을 촉구했다.

    실제로 피해자와 유족 150여명은 "대일청구권 자금으로 포스코를 설립하는 바람에 보상금을 받지 못했다"며 포스코를 상대로 위자료 청구소송을 냈다 패소하기도 했다. [BestNocut_R]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월 "현행법상 포스코에 법률적인 책임을 지우긴 어렵다"면서도 포스코가 피해자 지원에 자발적으로 나설 것을 주문하기도 했다.

    당시 포스코는 "정부차원에서 일제 강제동원피해자를 위한 재단이 만들어 지면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피해자 지원재단설립은 더디기만 하고 이러는 사이 위안부 김요지 할머니까지 박태준 명예회장과 같은 날 눈을 감는 동안 결국 포스코는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아무런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방학진 사무국장은 "독일 정부와 세계 2차대전으로 이익을 봤던 기업들은 기억·책임·미래 재단을 만들어 당시 강제 노역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포스코가 전범기업은 아니지만 일본이 개인청구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고, 당시 일본이 국가배상금차원에서 지급한 돈이 포스코에 투입된만큼 포스코가 도의적 차원에서 위안부할머니 등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논의는 있다"고 설명했다.

    포스코책임론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정부가 대일청구권자금을 투자하긴 했지만 포스코가 10배정도 되는 돈을 환원했기 때문에 피해자에 대한 책임은 정부차원에서 할 일이지 일개 기업이 나설 수 있는 일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정부에서 피해자들을 지원할 수 있는 방안이 나오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포스코와 한국도로공사, KT등 대일청구권자금이 투입된 기업들이 일제강제동원피해자들의 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사이 일본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234명 중 171명이 세상을 등졌다.

    떠들썩한 영일만 신화 속 김요지 할머니의 죽음이 서글픈 이유다.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