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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 시즌2''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김현정의>
서울 종로구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길에 소녀 형상의 청동상이 놓여졌다. 20년 간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을 찾아 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참회를 요구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뜻과 마음을 형상화해 ''평화비''를 세운 것이다.
일본은 이를 철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피해 할머니들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은 일본 정부가 입에 담을 말이 아니다. 그럼에도 일본은 언제나 과거에 대한 보상은 끝났다고 주장한다. 위안부 피해자에게도 책임질 것을 다 졌다고 한다.
◇ 대일청구권 보상과 경제개발일본의 전쟁범죄에 대해 이승만 정권은 보상금으로 12억 달러를 내 놓으라 요구했다. 장면 정권 때는 8억5천만 달러, 물론 이것은 겉으로 요구한 액수이고 밀고 당기다가 적당히 매듭지으려는 선이 있었을 것이다. 어쨌거나 박정희 정권 때는 7억을 요구해 무상으로 3억 달러, 유상재정자금으로 2억 달러, 기타 상업차관 3억 달러 +알파(?)로 타결 지었다.
당시 박정희 군부정권은 경제개발 계획을 서두르기 위해 막대한 개발자금이 필요했다. 그러나 국내에 축적된 자본은 없고 외화 유치도 쉽지 않자 국민의 굴욕외교 비판을 무릅쓰고 대일청구권자금 협상과 한일국교정상화를 동시에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그리하여 지금으로부터 꼭 47년 전인 1964년 12월 18일, <대한민국과 일본국간의="" 재산="" 및="" 청구권에="" 관한="" 문제의=""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이라는 긴 이름의 비준서가 교환되고, 6개월 뒤 한일기본조약 등 25개 협정이 정식으로 조인됐다.
그 뒤를 따라 만들어진 법이 <대일청구권 자금의="" 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다.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고 일제강점과 수탈, 학살에 대해 보상받은 자금의 사용처와 방법을 정한 법이다. 대일 보상금의 사용처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다. 무상자금은 농업용수 개발, 농업 기계화, 산림사업 육성, 수산증식사업, 과학기술연구기기 도입, 각급학교 실험실습기자재 도입 등이 사용처로 되어 있다. 유상자금은 소양강 다목적댐 건설, 산업기계공장 건설, 농수산업과 중소기업 진흥 지원, 고속도로 등 수송시설 확충, 발전시설과 통신시설 확장 등에 쓰는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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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 강제징용과 포스코의 탄생 여기에 포스코의 전신인 포항제철이 끼어들게 된 사연은 이러하다. 철강 생산 능력에서 북한에 크게 뒤쳐진 남한으로서는 제철소를 짓는 것이 긴급했다. 목숨을 이어가자면 먹을 쌀이 필요하고 산업을 일으키자면 ''산업의 쌀'', 철이 필요하다는 걸 절실히 느끼고 있던 시점이다.
1966년 미국, 독일, 영국, 이탈리아 철강업체들을 묶어 ''대한국제철차관단''이란 걸 만든 뒤 돈을 빌려 제철소를 지으려 했으나 차관단이 한국에 투자하는 걸 꺼려 어려움이 컸다. 이 때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제철소 건립을 명 받은 박태준 당시 대한중석 사장은 절묘한 아이디어를 생각해 냈다.
일본에서 내놓을 강제징용 보상금 중 무상 3억 달러, 유상 2억 달러가 단계적으로 들어오고 있는 중이니 그걸 제철소 짓는데 끌어오면 어떨까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유명한 ''박태준 하와이 구상''이다.
무상자금은 이미 절반은 썼고 농림수산업 발전 등에 쓸 자금이 남아 있었다. 이 아이디어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에게서 받아내기는 강제징용 피해자를 명분으로 받아냈고, 농업 발전과 항일투쟁유공자 보상, 민간청구권 보상, 바다의 평화선 철폐에 따라 어장을 잃은 어민 보상...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제철소가 급하다 판단하고 허락을 내렸다. 그런 절차를 거쳐 1969년 12월 한국-일본 종합제철 기본협약이 체결돼 포항제철 건설이 시작됐다.
일제에 징용되거나 재산을 빼앗긴 사람들에게 지급된 돈은 무상자금의 9.7%인 103억7천만 원. 농림수산업에 37.4%인 402억 6천6백만 원. 종합제철공장(포항제철)에 16.2%인 174억4천2백만 원로 알려져 있다. 유무상 5억 달러 중 포항제철에 들어 간 돈이 1억 1,928억 달러로 단위 기업으로는 가장 많이 가져갔다. 그래서 포항제철, 포스코를 이야기할 때 일제강점기 피해자와 국가에 대해 태생적 책임이 있다 하는 것이고, 박태준 회장도 조상의 피땀으로 세운 기업임을 잊지 말라고 강조 했던 것이다.
[BestNocut_R]문제는 이것으로 대한민국에 대한 일본의 모든 보상이 끝났다는 점이다. 자금이 급했던 박정희 정권은 국민이 입은 개별적 피해에 대한 개인청구권마저 포기하고 모든 권리를 일본에 갖다 바치다 시피 했다. 청구권 협정 2항 등에 개인청구권도 이것으로 완전히 해결하며, 앞으로 어떠한 주장도 할 수 없다고 한 것이 40년 후 문서 공개로 명백히 드러났다.
일본이 우리 국민에게 저지른 죄악에 대한 당연한 책임보상임에도 ''보상 및 경제협력''으로 성격도 바뀌었고 자금의 사용 역시 피해 국민보다는 경제 산업 개발에 돌려졌다. 회의록에도 피해자들에게 적절히 나눠준다는 대목은 없이 경제개발 이야기만 들어 있어 애당초 피해자들을 배려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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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친일잔재가 아니라 ''뼈 속까지 친일''이다그럼 어찌 해야 할까?
1) 이명박 대통령은 17~18일 일본에서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를 만나 대일청구권 협상에서 논의된 적이 없는 위안부 피해자 문제를 제대로 따지고 요구하라. 언론 보도에 실린 청와대의 입장은 하겠다는 건지 안하겠다는 건지 애매하다. ''위안부 문제는 국민적 관심이 크고 오랜 현안이라 제기할 수 있는데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도 논의할 것이 많아서...'' 돈이 급해 굴욕외교로 구걸하다시피 한 박정희 정권 때와 다를 게 없지 않은가.
2) 정부는 속히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를 위한 재단을 설립하라. 2011년 8월 ''대일 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희생자 지원 특별법''까지 국회에서 만들어 놓았다. 헌법재판소가 야단쳐도 모른 척, 국회가 법을 만들어 놔도 시큰둥하다니... 문제 해결의 의지 없이 세월이 흐르기를 기다리는 투가 역력하다. 한국 정부와 일본 정부가 어찌 태도가 같을 수 있는가.
3) 포스코, 한국도로공사, KT 등 일제강점 보상금으로 일으켜 세워 오늘에 이른 기업들은 강제동원 피해자 재단 출연금을 준비하고 도의적으로 적극 나서 할머니들을 도우라. 고등법원도 포스코가 법적인 책임은 없지만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사과도 보상도 없이 70년을 참고 싸우며 기다리고 있다. 2006년 7월, 할머니들은 일본군 위안부 생존 피해자 109명의 이름으로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냈다. 대한민국 외교통상부가 위안부 문제해결을 외면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이유였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나 2011년 8월, 헌법재판소는 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며 기본권 침해에 해당한다는 결정을 내렸다.
어쩌다 일제 강점 피해자들의 국민으로서의 기본권을 침해했다는 판결을 일본 정부가 아닌 내 나라 정부가 받는 걸까? 내 나라 땅 한 조각에 조그만 동상 하나 세우는 것 마저 일본에 트집을 잡히고 대통령은 이야기 한 조각 꺼내지 못하며 살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일본에게 참담한 굴욕의 역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대일청구권>대한민국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