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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을 에는 한파가 몰아닥친 25일 크리스마스, 박지은(19·가명) 양은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길에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새벽 6시 공장 출근시간에 맞춰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박 양의 입에선 하얀 김이 차가운 겨울바람 사이로 연거푸 쏟아졌다.
실업계 고등학교 3학년인 박 양은 지난 8월 선생님의 추천으로 경기도의 한 반도체 공장에 현장 실습을 지원했다.
하지만 하루 8시간을 꼬박 서서 기계를 다루는 작업은 생각보다 고됐다.
"크리스마스 이브이던 어제도 일했어요. 5개월 정도 일했는데 맨날맨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경기도 내 한 공장에서 석달째 현장실습을 하고 있는 정태수(19·가명) 군은 선배들의 '구박' 때문에 회사 생활이 힘들다.
필기 내용을 암기하던 도중 피곤함에 지쳐 잠시 졸았는데, 회사 관리자가 욕설을 퍼부었다.
"야, 이 XX야. 똑바로 못해? 너네 교장 번호 대. 작년 애들은 잘 했는데 얘는 왜 이렇게 수준이 떨어져?" 빨리 실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에 쇳가루를 마셔가면서 열심히 익혔지만 '갈굼'은 줄지 않았다.
"이름도 안 불러요. 회사에서 저는 그냥 '고삐리'에요. 밥 먹을때 수저 뜨자마자 '오늘 밥값했느냐'고 물어봐요. 속상하지만 그냥 웃고 넘겨요." 지난 18일 기아자동차 광주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고등학생이 뇌출혈로 쓰러지면서 고교실습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 제도는 지난 2006년 노예 노동과 인권침해 등을 이유로 폐지됐다가 지난 2008년 이명박정부의 '4·15 학교 자율화' 조치로 사실상 부활했다.
문제는 이 제도가 MB정부의 특성화고 정책과 맞물리면서 전문계고 취업률을 높이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 전문계 고등학교 교사는 이에 대해 "교과부가 전문계고에 지원되는 학비 장학금을 빌미로 취업률이 낮은 학교에 예산 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있다"며 "아이들이 힘든 줄 알면서도 공장으로 내보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털어놨다.
청소년노동인권 네트워크 노무법인 노동과 삶 최은실 노무사는 "취업률을 높이기 위해 학기중에 발생하는 현장실습은 원칙적으로 폐지되어야 한다"며 "노동 단체 및 교육 단체와 교육부가 협의체를 구성해서 방안을 마련하는 게 우선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