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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왼쪽 가슴에는 우체국 마크가 선명했다. 걸려오는 휴대전화를 받을 때도 ''''네 우체국입니다''''라고 응대했다.
우체국 택배원 김모(40) 씨.
사람들은 그를 우체국 직원, 그러니까 공무원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외부 관리업체와 위탁계약을 맺은 개인사업자다. 그는 다름 아닌 특수고용 근로자(특고)다. 자영업자에 해당되지만 사실상 우체국의 직원과 다르지 않다. 일하는 것도 집배원과 비슷하다.
우체국 직원인 집배원이 가벼운 걸 배달하는 사람이라면 개인사업자인 우체국 택배원은 무거운 걸 배달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택배용 물건이라 할지라도 가벼운 것은 택배원이 아닌 집배원 차지가 된다.
김 씨는 서울 양천우체국에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한다. 배달 물건을 분류하고 자기가 맡은 목동 중심축과 목4동 일부 지역을 대상으로 배달에 나선다. 하루 평균 120개씩 배달하는데 보통 저녁 8시쯤 일을 마친다. 이 일이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반복된다. 일할 때는 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불친절 민원이 3회 이상 접수되면 계약이 파기되는 규정이 있습니다. 저도 한 때 손에 짐과 휴대폰을 들고 있어서 손대신 휴대폰으로 노크했더니 불친절하다는 민원이 우체국으로 들어가 난리가 난 적이 있어요.''''
이 때문에 택배원들은 월요일이면 4층 집배실로 올라가 다른 우체국직원들과 같이 30분간 친절 교육을 받는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가족들과 시골에 다녀오기 위해 고속도로를 타고 대전 무렵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에서 전화가 왔다. 배달이 하나 빠졌다는 것이었다.
''''고속도로상에 있으니 월요일에 하든지 아니면 급한 대로 집배원에게 대신 배달해 주면 안되겠냐고 사정했죠. 그래도 회사에서는 막무가내로 나오더군요.''''
회사에서는 다시 내려가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 올라오라고 했다고 한다. 결국 동료 택배원이 대신 처리하는 것으로 정리해서 겨우 시골에 갈 수 있었다.
이곳에서는 휴가도 내기 힘들다. 자기가 쉬면 누군가 그 일을 대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풀''''로 뛰다보면 일요일은 ''''시체''''가 될 수밖에 없다.
''''동료들은 일요일에 잠을 자면 가족들은 아빠가 쉴 수 있게 밖으로 나간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일요일까지 그렇게 되면 가족과 더 멀어질 것 같아 천근같은 몸을 이끌고 두 아들과 시간을 보냅니다.''''
몸이 항시 무겁다 보니 사고를 당할 확률도 높다. 실제로 지난해 11월에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아파트 계단에서 굴러 왼쪽 발목뼈가 부러졌다. 사고 나면 돈도 못 벌고 병원비는 병원비대로 나간다. 특고이기 때문에 산재처리도 받지 못한다.
''''우린 일단 사고나면 모든 게 끝장이에요. 게다가 만약 물건이라도 깨지면 그걸 모조리 우리가 물어내야 해요.''''
병원에서는 4개월 입원하라고 한 것을 그는 한 달 만에 퇴원했다. 그래서 지금도 절뚝거리며 일을 하고 있다.
지금은 기동성이 떨어져 한 달에 90개 정도만 배달한다. 사고당하기 전에는 170만원 가량을 벌었다. 개인사업자로 돼 있는 그의 수입은 100% 배달 수수료로 이뤄진다. 1개를 배달할 때 마다 930원을 받는 식이다.
한 달에 3000개 정도 배달하면 280만원이 떨어지지만 빛좋은 개살구다. 차량 기름값(30만원), 지입비(13만원), 각종 보험료, 식비, 차량수리비 등을 빼야하기 때문이다. 170만원으로는 중학교 2학년, 초등학교 5학년 공부시키기도 빠듯하다.[BestNocut_R]
그래서 그는 동료 27명과 함께 작년 10월에 10일간 파업을 벌였다. 수수료율을 올려달라는 게 요구였다. 재작년 새로운 관리업체가 들어오면서 수수료가 70원이 깎였던 터였다. 결국 작년 11월에 50원을 올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파업이후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지하가 작업장인 그들에게는 4층에 있는 난방된 직원용 휴게실 출입이 금지됐다. 따라서 커피자판기도 쓸 수 없었다. 구내식당 밥값도 그전엔 직원값 2,800원으로 할인 받았는데 파업 후엔 그것도 없어져 4,000원을 내고 먹어야 했다. 그런가하면 집배원들이 지하 작업장 앞에 오토바이를 세워놓아 택배원들이 물건 정리하는 것을 교묘하게 방해했다고 한다.
그는 직원들이 위에서 시켜서 한 일이라는 걸 다 안다고 했다. 그가 세상에서 가장 부러운 사람은 다름 아닌 집배원이라고 한다. 최근 이 곳에서 일하는 어느 집배원이 6개월짜리 육아휴직을 떠난 것을 봤단다. 그러나 자기 같은 위탁들에게는 꿈도 꾸기 어려운 일이라고 했다.
인터뷰를 끝내면서 기자는 그에게 이름과 얼굴이 기사에 나가도 되겠느냐고 물었다. 처음에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러다 얼마 뒤 그는 ''''어차피 회사에서 알겠지만 그래도 이름과 얼굴은 가리는 게 좋겠다''''고 알려왔다.
현재 전국에는 2,000명의 우체국 택배 특고들이 일하고 있다.(7편에 계속)
공공기관까지 파고든 특고, "우리는 떨거지, 정부에 속상해" |
지난 16일 아침 특수고용직 소관 부처인 고용노동부 이채필 장관이 안양우편집중국을 방문했다. 우편물 구분 업무를 담당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격려하고 애로사항을 청취하기 위해서다.
이 자리에서 그는 상시적이고 지속적인 업무를 담당하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지침을 공표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 불합리한 차별 해소를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약속했다.
바로 그 시간 안양우편집중국에서 5분가량 떨어져 있는 안양우편물류센터에는 166명의 우체국 택배원들이 택배 물건을 분주히 분류하고 있었다.
이 장관이 현장까지 방문해서 우체국 직원들보다도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자신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은 것을 놓고 우체국 택배원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곳의 한 택배원은 ''''우체국에서 우리는 사실상 떨거지''''라면서 ''''물류관리회사가 중간에 최저입찰제로 들어와 안그래도 오르지 않고 있는 배달수수료가 8년째 제자리걸음인데 이게 말이 되느냐''''고 분개했다.
그는 이어 ''''우리의 문제는 중간 관리회사를 끼지 않고 우체국이 직접 총괄해주면 쉽게 해결되는데 정부에서는 그런 것조차 모르고 있다''''며 ''''많이 속상하고 섭섭하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에는 우체국 택배기사들처럼 ''''보이지도 않는'''' 특고들이 수두룩하다.
한국전력과 가스공사 등의 검침업무를 하는 검침원들도 특고로 전환됐다. 이들 특고로 구분되는 검침원만 1만 5,000명인 것으로 파악된다.
서울에서 일하는 한 검침원은 ''''불만은 많지만 저희는 알다시피 일년씩 하다보니까 재계약이 안 될까 해서 말하기가 그렇다''''며 ''''보너스 등 아무것도 없다. 직원들하고는 봉급차이가 많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통계청에서 일하고 있는 조사원 가운데 일부도 조사 건당 수입이 정해진 특수고용근로자로 분류된다.
사실 이미 대학교 외래교수(강사)들까지도 특고로 됐을 정도니 공공기관 특고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도 없다.
한국비정규교수노조 김상목 사무국장은 ''''현정부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데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근로자성 마저 부정되는 저급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데만 혈안이 돼 있는 것 같다''''며 ''''국립대 같은 공공부문은 이미 사립대가 아닌 사기업 마인드로 넘어간 것 같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