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우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00~20:00)
■ 방송일 : 2012년 2월 24일 (금) 오후 7시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故 김지태씨 유족 김영우씨
▶정관용> 시사자키 2부 시작합니다. 두 가지 소식으로 준비했는데요. 정수장학회의 전신이지요, 부일장학회의 설립자인 고 김지태 씨, 그 유족들이 정수장학회를 상대로 주식 반환 청구 소송을 냈습니다만, 기각되었습니다. 그 차남입니다, 김영우 씨, 함께 전화로 좀 만나보겠고요. 그리고 오늘 한중 FTA 관련 첫 번째 공청회가 열렸는데, 농민단체 회원들이 참석해서 상당히 혼란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한중 FTA가 이제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어요. 어떤 점들을 주목해서 봐야할지 함께 공부 좀 해보겠습니다. 잠깐 광고 듣고 오지요.
▶정관용> 부일장학회 설립자, 고 김지태 씨의 차남, 김영우 씨 오늘 전화에 모십니다. 안녕하세요?
▷김영우> 예, 안녕하십니까?
▶정관용> 재판결과 실망스러우시겠어요, 그렇지요?
▷김영우> 예, 재판결과를 보면 강압에 의해 강탈되었다고, 만시지탄의 감은 있지만, 당연한 판결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시효가 문제되었을 뿐입니다.
▶정관용> 그렇지요. 어떤 시효가 문제가 되었던 거지요?
▷김영우> 예, 이제 제출 시효, 제출 기한도 문제가 되고, 소멸시효도 문제가 되고 그랬습니다. 그러니까 빨리 안 했다.
▶정관용> 그러니까요.
▷김영우> 그때그때 안 했다, 그런 말인데, 그게 국가를 상대로 해서 그렇게 마음대로 될 수 없는데, 아마 판사님들도 그때 상황을 잘 모르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정관용> 그걸 모를 수가 있나요, 그런데.
▷김영우> (웃음)
▶정관용> 이게 원래 그러니까 부일장학회 설립 때부터 잠깐 소개해주시겠어요? 이게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게 되었고 5.16 때 어떻게 빼앗기게 되었는지?
▷김영우> 부일장학회는 저의 선친 김지태 어른께서 만드셨는데 6.25이후에 부산에, 경남 부산에 돈이 없어서 학교를 못 다닌 분들을, 영재들을 키우기 위해서 그때 돈으로 1억 7천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서 많은 학생들을 키웠습니다. 그러다가 그 재단이 5.16장학회로 넘어간 거지요. 그래가지고 정수장학회가 된 겁니다.
▶정관용> 그 5.16재단으로, 5.16장학회 측으로 넘어가게 된 과정, 우리 김영우 씨도 그때 다 현장을 보셨나요, 아니면 아버님께 말씀을 들었습니까?
▷김영우> 현장은 아주 단편적으로 저희 어른이 일본에서 정치를 하시다가 나오셔 가지고 압송되어 가시는 것도 보았고, 나중에 재판과정도 봤습니다.
▶정관용> 어떤 재판이요?
▷김영우> 군사재판이요.
▶정관용> 그렇지요. 그러니까 일종의 부정축재, 이런 식으로 몰았던 거지요?
▷김영우> 뭐 부정축재보다는 밀수, 뭐 이런 형사문제로 저희 어머님도 구속을 하고, 회사 직원을 한 10명 이상 구속을 했습니다.
▶정관용> 그러면서 바로 그 부일장학회 재산을 넘기면 대신에 형을 감면해준 겁니까, 어떻게 된 겁니까?
▷김영우> 예, 포기 각서를 감옥에서 받고 바로 공소를 기각해가지고 7년형을 구형을 했던 것을 무효화시키고 바로 내주었습니다.
▶정관용> 7년형 구형했던 것 자체를 아예 없었던 일로 해버렸다?
▷김영우> 예.
▶정관용> 그러니까 오늘 법원에서도 그건 강압에 의한 거다, 라고 하는 것은 분명하게 인정했던 것 아닙니까?
▷김영우> 그렇습니다.
▶정관용> 그런데 그 쿠데타 주체세력, 박정희 전 대통령 측에서 왜 하필 부일장학회 그렇게 딱 지목해서 찍었을까요?
▷김영우>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그때 아직 저는 학생이고 이러니까...
▶정관용> 알겠습니다.
▷김영우> 그 거사 자금을 안 주어서 그랬다, 라는 그런 이야기는 있습니다.
▶정관용> 아, 쿠데타에 도움주는 자금을 대라고 했는데 안 댔다?
▷김영우> 예.
▶정관용> 그건 뭐 아직 확인된 사항은 아니로군요.
▷김영우> 그렇지요.
▶정관용> 그렇게 빼앗기고 나서 아버님께서는 상당히 상심하시고 건강이 좀 안 좋아지고 그러셨다면서요?
▷김영우> 예, 본래 건강이 안 좋으신 어른인데 굉장한 쇼크를 많이 받으셨지요.
▶정관용> 그런데 수십 년 전에 벌어진 일인데, 오늘 법원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그렇게 문제가 있다면 빨리 소송을 제기하지 왜 이제야 하느냐, 시효가 지났다, 라고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2010년에 소송을 제기하셨지요?
▷김영우> 예.
▶정관용> 그 이유는요? 왜 2010년에서야 소송을 제기하셨어요?
▷김영우> 저희들은 박정희나 군사정부가 있을 때는 못하고 있다가 이제나 저제나 생각하고 있었는데, 국가에서 국가기관인 과거사위원회에서 2007년 6월에 국가가 사과하고 배상하라, 하는 판결, 결정을 받았습니다.
▶정관용> 그랬지요.
▷김영우> 그랬으니까 국가가 그걸 인정한 날을 기산으로 해서 3년, 그러니까 2010년 6월 3일에 우리가 소송을 제기한 겁니다.
▶정관용> 아, 과거사위원회가 인정했으니까 그때로부터 3년이면...
▷김영우> 예, 3년.
▶정관용> 시효가 지난 것이 아니다, 라고 판단하셨다는 말이지요?
▷김영우> 예.
▶정관용> 그런데 그게 이번 법원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은 거네요?
▷김영우> 예. 이게 1심이니까 받아들여지지 않겠지만 앞으로...
▶정관용> 2심에서는?
▷김영우> 2심이나 특히 대법원에서는 국가가 시효나 이런 것 뒤에 숨어서 국민들에 피해를 준 것을 그냥 인정해서 되겠느냐, 하는 많은 분들의 의견이 있기 때문에 그 점을 우리는...
▶정관용> 주장하겠다?
▷김영우> 바라고 있습니다.
▶정관용> 그런데 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소송 같은 것은 꿈도 못 꿨다, 이거는 당연히 이해가 되는 일인데요, 80년대 이후, 뭐 백보를 양보해도 김영삼 정부 때부터는 소송을 하실 수 있었던 상황 아닐까요?
▷김영우> 아, 그러나 그때만 하더라도 혁명정부의 정보부장하시던 분이 김종필 씨입니다.
▶정관용> 맞아요.
▷김영우> 그분이 YS, DJ 정권에 계속해서 일익을 하고 있었고.
▶정관용> 그랬지요.
▷김영우> 심지어 참여정부에서까지 그게 힘을 가지고 그분들 세력이 있었기 때문에 곤란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정관용> 아, 김종필, 그분을 의식했다?
▷김영우> 예.
▶정관용> 그런데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강탈이 아니라 헌납이었다고 주장해왔어요. 그렇지요?
▷김영우> 예.
▶정관용>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영우> 뭐 지금까지는 그렇게 생각하셨을는지 모르겠지만, 오늘 법원에서도 강탈했다는 점을 인정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아마, 그리고 모든 국민들이 강탈이라고 하는데 혼자 헌납이라고 우기는 모습이 좀 우습지 않습니까? 저는 개인적으로 보릿고개를 없앤 박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박 위원장님께서도 정치 지도자로 나서려면 박 대통령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한번 볼 줄 알아야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입니다.
▶정관용> 알겠습니다. 현재 정수장학회는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혹시 알고 계세요?
▷김영우> 정수장학회는 운영은 뭐 장학사업은 잘하고 있는데, 그 이사회가 정치인인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치마폭에 휩싸여있는 것이 문제이지 않습니까? 다른 장학회들도 많이 있는데, 하필이면 정수장학회만 맨날 문제가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정관용> 그래도 역시 박근혜 비대위원장은 자신은 장학회와 전혀 관련이 없다, 라고 또 주장하세요. 오늘도 그런 말씀을 하셨고. 어떻게 생각하세요?
▷김영우> 예, 그런데 최필립이라는 분이 누구십니까? 그분이 이사장을 하고 있고, 또 본인이 그 이사장을 하실 때 임명해놓은 분들과 또 최필립 씨가 임명한 이사들이 가지고 있고, 또 정수장학회의 정 자, 수 자가 누구 이름에서 따온 겁니까?
▶정관용> 박정희, 육영수, 이겁니다.
▷김영우> 예, 그러니까 이제는 이제 세상 떠난 아버지, 어머니를 심하게 말하면 욕보이는 영예를 좀 끊어주는 것이 자식된 도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는 저의 부모님을 위해서 남의 부모님의 일을 폄하하거나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 박 대통령께서도 이거를 저희 아버님한테서 빼앗아가지고 사욕을 차리지 않고 장학회를 하셨다는 점에 대해서는 우리가 다 존경해야 될 점이 아니겠습니까?
▶정관용> 알겠습니다. 부산일보 주식 100%를 지금 정수장학회가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김영우> 예.
▶정관용> 그래서 부산일보 노조가 지금 이 문제를 가지고 장기 분규 중이고, 그런데 이쪽의 입장은 정수장학회를 사회에 환원하자, 그러니까 공익적 이사진 구성으로 사회에 환원하자, 라는 주장이고, 우리 김영우 씨와 같은 고 김지태 씨의 유족들의 이번 소송은 유족들한테 돌려달라, 이거이고요.
▷김영우> 아닙니다.
▶정관용> 아닙니까?
▷김영우> 가족들한테 돌려달라는 이야기가 전혀 아닙니다. 선친이 신문방송을 찾는 일에 소홀하지 마라, 라고 당부하셨는데 그 의미는 그 신문방송을 저희들 개인 것으로 하라는 일이 아니고 장학회를 하면서 잘해 달라, 그런 이야기였지 저희들 유족들은 이미 아버님 살아계실 때 그 장학회로 나간 재산에 대해서는 저희들 재산으로 돌려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아버님이 설립한 부일장학회의 뜻을 살려가지고 장학회의 명칭이 아버님 이름이 들어가고, 소위 자가 자명입니다. 자명이라는 이름을 넣고.
▶정관용> 자명장학회?
▷김영우> 예, 자명장학회, 혹은 정수자명장학회도 좋다고 여러 번 박근혜 비대위원장님한테도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그 장학회의 뜻을 잘 살릴 수 있는 우리 사회 존경받는 훌륭한 분들을 이사로 모셔가지고...
▶정관용> 알겠습니다.
▷김영우> 그리고 누가 장학금을 주게 되었는지, 장학생들이 누구 돈으로 공부를 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될 것 아니냐.
▶정관용> 그렇지요.
▷김영우> 예, 그런 뜻입니다.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러면 부산일보 노조랑 입장이 같으신 거네요? 그렇지요?
▷김영우> 예, 부산일보 문제는 장학회 문제가 해결되면 자동적으로 슬기롭게...
▶정관용> 그렇지요.
▷김영우> 풀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어떤 악의가 있는 분들이 가지고 있으면 안 되고, 이거는 언론사이니까 언론사에 맞춰서 저희 아버님이 생각하시던 그때의 언론관, 이런 것을 봐서 지금 문제되고 있는 것은 저희들이 관련하던 안하던 진정한 관리자만 바뀌면 해결되리라고 봅니다.
▶정관용> 알겠습니다.
▷김영우> 그리고 새롭게 무슨 이게 사회 환원이 되는 것이 아니고 저희 아버님께서 자기가 번 재산을 이미...
▶정관용> 이미 환원한 것이다?
▷김영우> 이미 환원한 것입니다.
▶정관용>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뭐 유족분들이 이사회에 들어가거나 이런 것도 아니라는 것이로군요?
▷김영우> 예, 꼭 그런 조건은 아닙니다.
▶정관용> 잘 알겠습니다. 상소하실 거지요, 바로?
▷김영우> 예, 바로 해야지요.
▶정관용> 2심 재판도 또 관심 가지고 지켜볼게요. 예, 말씀 잘 들었습니다.
▷김영우> 예, 감사합니다.
▶정관용> 고 김지태 부일장학회 설립자의 차남 김영우 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