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 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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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화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 절차를 둘러싼 갈등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전임 대법관(박일환, 김능환, 안대희, 전수안) 4명이 임기를 마치고 법복을 벗은 지 보름이 지났지만 후임 대법관들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 절차가 난항을 겪고 있다. 김병화 후보자에 대한 처리문제로 여.야 정치권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김병화 후보자에 대한 해결방안은 스스로 후보직에서 사퇴하거나 아니면 국회에서 임명동의 표결에 들어가 통과시키기거나 부결하는 방안 외에는 없는 상황이다.
검찰 일각에서는 김 후보자가 더 이상 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아 사퇴하려고 하는데 검찰 지휘부가 ''검찰의 명예를 위해 버티라''고 만류하고 있다는 설도 흘러나오고 있다.
김 후보자로서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진퇴양난의 처지라는 얘기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는 왜 자진 사퇴하지 못하나?''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김병화 후보자가 자진사퇴를 고민한다는 얘기냐?= 그런 얘기가 검찰 안팎에서 나돌고 있다. 핵심은 ''더 이상 망신당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김 후보자가 버틸수록 확인되지 않은 새로운 의혹들이 계속 제기되면서 이미지만 나빠지기 때문이다. 사실 김병화 후보자는 검찰 내에서 사람 좋고 후배들과도 잘 어울리면서 출세욕구가 강하지도 않은 ''평범한 검사'', ''사람 좋은 검사''라는 평판을 받아 왔다. 그런데 대법관 후보자가 된 이후 끊임없이 문제검사로 낙인이 찍혔다. 본인으로서는 견디기 어려운 점이 있을 것이다.
여기에다 김병화 후보자 문제로 여.야가 갈등을 빚으면서 다른 대법관 후보자들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 절차가 지연되고 있어서 대법원의 재판일정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이런 점들이 김병화 후보자가 자진 사퇴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도는 이유일 것이다.
▶본인의 얘길 들어봤나?= 김병화 후보자 본인과 여러 각도로 접촉을 시도해봤지만 전화가 꺼져 있거나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았다. 그래서 김병화 후보 본인의 입장을 직접 듣지는 못했다.
다만 법무부나 대검 등 김 후보자와 가까운 선후배들로부터 들은 얘기로는 ''고민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는 것이었다.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고민하겠지, 고민이 안 될 수 있겠나?"라고 반문하기도 했고 김 후보자와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전직 검찰 고위간부는 "그만두고 싶어도 그만둘 수 없는 처지일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아니 본인이 싫다고 그만두면 되는 것 아닌가?= 사실은 그렇다. 본인이 그만두면 된다. 그렇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만은 아니다.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는 검찰 몫으로 추천됐다. 김 후보자의 처신이 검찰의 명예나 체면, 입지, 정치적인 고려 등 이런 것과 연관돼 있다는 얘기다. 특히 김 후보자를 추천한 권재진 법무장관은 경북고와 서울대 법대의 직계 선배이기도 하다.
김 후보자가 사퇴할 경우 추천을 한 권재진 법무장관이 책임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검찰내부에서는 김 후보자가 사퇴를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검찰 수뇌부에서 ''검찰의 명예를 위해 버텨라''라고 주문하면서 강력하게 만류하고 있다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새누리당이나 청와대에서도 처음에는 자진사퇴 쪽에 무게가 실리는 듯 했지만 이제는 물러서지 않겠다는 기류가 강하다.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당내에서 ''밀리면 안 된다''는 기류가 강하다"며 "밀어 붙이고 있다"고 말했다.
김 후보자 스스로 결단하기도 쉽지 않다는 얘기다.
▶법원 내에서 김 후보자에 대한 반대기류가 확산되고 있다는데?= 그렇다. 법원 내 분위기는 김 후보자에 대해 공개적으로 입장표명을 꺼리고 있지만 냉랭하다고 해야 할 정도이다. 김 후보자에게 스스로 자진사퇴하라고 공개적으로 얘기는 못하지만 이를 원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법원의 한 중견간부는 "공개적으로 밝히기는 그렇지만 ''불감청 고소원''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다른 간부도 "온갖 의혹을 꼬리표를 달고 대법관으로 올 경우 판결에도 불신을 받을 것으로 우려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솔직히 후보자가 결단하기를 기다리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라고 밝혔다.
대법원으로서는 대법관 후보로 임명제청을 해놓고 문제가 되니까 자진사퇴하라는 얘기를 하기는 어렵지만 이를 강력히 바라고 있다는 얘기다.
지난 23일에는 소장 판사가 법원 내부게시판에 "대법원이 김병화 후보 임명제청 철회해야" 한다는 글을 올렸다.
수원지방법원 송승용 판사는 법원내부통신망(코트넷)에 "김병화 후보자에 대한 대법관 임명은 대법원 판결에 대한 불신, 사법부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법관 및 법원구성원들의 자긍심에 엄청난 손상을 가져올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전국공무원노조 법원본부에서도 지난 16일 성명에서 "김 후보자가 대법관이 되면 대법원의 구성 자체로 판결에 대한 불신이 심화되고, 최고법원의 권위는 실추될 것"이라며 "또한 사법부 구성원인 공무원노동자들이 가지게 될 조직에 대한 불만이 팽배해질 것이며, 사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고스란히 법원공무원들에게 향하게 될 것임에 대해 심각하게 우려한다"고 밝혔다.
법원노조는 "김병화 후보자가 국회 표결 전 대법관 자격이 없음을 인정하고 스스로 사퇴해 더 이상의 논란을 일으키지 말 것을 법원의 일주체인 공무원노동자를 대표해 준엄이 요구한다"고 덧붙였다.
김병화 후보자는 검찰 출신이지만 이미 사표를 제출했고 후임 인사가 이뤄졌다. 돌아갈 곳도 없는데 법원에서는 반대기류가 확산되고 있으니까 오도 가도 못하는 처지가 되어 버린 것이다.
▶검찰 내 분위기는 어떤가?= 검찰 내에서는 안타깝다. 억울하다는 기류가 강하다.
앞서 설명한대로 김병화 후보자는 검찰 내 요직을 두루 거친 이른바 ''잘나가는 검사'' 출신은 아니었다. 법무부나 대검 등 검사들이 선호하는 부서보다는 지방의 형사부 근무 경력이 많고 행정고시와 사법고시를 패스했으며 서울대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한 학구파 검사로 검찰 내에서도 사람 좋기로 평가를 받고 있다. 대법관 후보로 임명제청 되기 전까지 언론에서도 크게 주목을 받은 적이 없는 조용한 성품의 검사로 선배 법조인들은 ''착한 검사''라고 평가하기도 한다.
검찰의 한 중견간부는 "김 후보자는 후배들에게 얼굴 붉히며 뭐라고 하지도 못하는 성격이면서도 사석에서 후배들과 잘 어울린 선배"라고 말했다.
그래서 김 후보자를 잘 아는 선후배 법조인들에게 물어보면 다들 일성이 ''안됐다'' ''안타깝다'', ''불쌍하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억울하다는 건 왜 김병화 후보자에게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느냐 하는 것이다.
정치검사로 출세지향이었거나 민감한 시국사건들을 다루거나 그랬다면 모르겠지만 그렇지도 않았는데 비리의 온상 같은 평가를 받고 있으니 그런 점에서 억울한 측면이 있다는 반응이 주류를 이룬다.
특히 이미 대법관으로 재직 중인 판사출신 대법관 중 일부가 김 후보자와 같은 위장전입이나 다운계약서 작성문제가 청문회에서 논란이 됐지만 임명동의를 받았는데 검찰출신인 김 후보자에 대해서만 가혹하게 대하는데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높은 게 사실이다.
▶그래서 김 후보자 문제로 법원과 검찰이 갈등을 빚고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냐? = 구체적인 갈등으로 비화되지는 않았고 미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는 건 사실이다.
검찰에서는 법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데 대해 서운함을 감추지 않고 있다. 검찰의 한 고위관계자는 "대법관 후보자가 됐으니 대법원에서 적극적으로 나서서 해명을 해야 하는데 먼 산의 불 보듯 하고 있다"고 말했다.
법원에서는 김 후보자가 검찰 몫의 대법관으로 추천을 받은 만큼 검찰과 법무부에서 충분히 검증된 인사를 추천했어야 했다는 입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권재진 법무장관이 강력하게 추천했던 인사였던 만큼 법무부와 검찰의 책임이 크다"면서 "특히, 아들 병역의혹, 저축은행 비리 등은 대법원이 전혀 알 수 없는 부분"이라며 검찰로 책임을 떠넘기기도 했다.
검찰이나 법무부에서는 김 후보자의 위장전입이나 다운계약서 건에 대해서는 대법원도 알고 임명제청을 했다며, 공안검사 출신인 안창호 서울고검장과 BBK 수사문제로 논란을 빚은 김홍일 부산고검장에 비해 김 후보자가 국회 청문회 통과가 용의하다고 판단해 임명제청을 해 놓고 이제 와서 검찰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당당하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검찰과 법원간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면서 검찰은 대법관 임명을 강행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법원에서는 스스로 물러나 주기를 기대하는 양상이다.
▶위장전입이나 다운계약서 작성문제가 처음은 아니지 않느냐?= 그 점이 문제다. 우리사회의 최후보루는 사법부다. 인권과 정의를 바로 세워야 하는 책무를 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사법부의 최후보루이다. 그런 만큼 자질도 중요하지만 높은 도덕성이 요구되는 자리다.
그런데 대법관 임명동의를 위한 청문회를 거칠 때마다 대법관 후보자들이 위장전입이나 다운계약서 작성, 편향적인 판결 문제로 논란을 빚어왔다.
대법원도 이런 논란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얘기다.
대법원 관계자는 "김병화 후보자의 위장전입과 다운계약서 작성의 문제가 있는 건 알았지만 이전에도 그런 문제가 청문회에서 논란은 있었지만 임명동의를 받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임명제청을 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김 후보자의 경우 검사 임용 초기의 문제였고 명백한 투기형은 아니고 그 정도가 심하지 않아서 추천을 하게 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창수, 민일영, 이인복 대법관이 후보자로서 위장전입 문제가 드러났지만 사과하고 대법관으로 임용된 전례가 있다.
위장전입 뿐만 아니라 촛불시위 관련자들에 대한 재판개입 의혹을 산 신영철 대법관도 단독판사들의 퇴진요구에도 버텨 결국 대법관으로 임용이 됐다.
대법원의 시각이 위장전입 정도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소소한 문제가 되어버린 것이다.
▶위장전입이나 다운계약서 작성은 고위공직자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인 것이냐?= 참 안타까운 일이다.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에서는 위장전입 문제가 드러날 경우 고위공직자로 임명되지 못하고 중도에 낙마를 했다. 그만큼 엄격한 잣대가 적용된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 위장전입은 당연한 통과의례가 됐다. 위장전입 문제만으로 중도에 낙마한 고위공직자는 한 명도 없다. 왜냐하면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 1977년∼1984년 4차례 위장전입을 한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4차례의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대통령으로 당선됐으니 위장전입은 ''사소한 결격사유'' ''사과하고 넘어가면 되는 일''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정운찬 국무총리, 이귀남 법무부 장관, 김준규 검찰총장, 이현동 국세청장, 조현오 경찰청장 등이 위장 전입한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고위공직에 임명됐다. 이들 외에도 위장전입은 통과의례로 여길 만큼 많은 공직자들이 해당됐지만 별 문제 없이 넘어갔다.
국민의 정부 당시 장상. 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 주양자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참여 정부 때 이헌재 경제부총리·최영도 국가인권위원장 등이 위장전입으로 낙마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렇지만 위장전입은 가볍게 볼 ''범죄''가 아니다. 위장전입은 주민등록법 위반으로 3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을 받을 수 있는 중범죄다.(공소시효 2007년 이전은 3년 이후는 5년) 1970년부터 형사 처분이 이뤄졌고 75년부터 징역형이 추가됐다. 위장전입 문제로 기소돼 법정에 선 사람이 1년에 평균 700여명에 이를 정도다. 명백한 불법인 것이다.[BestNocut_R]
불법을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 청문회에서 사과한 사람을 사법부 최고 권위를 지닌 대법관으로 임용한다면 국민들의 준법정신은 어떻게 될 것인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대통령도 위장전입, 국무총리도 위장전입, 법무장관도 위장전입, 검찰총장도 위장전입, 여기에다 대법관마저 위장전입을 허용한다면 어떻게 국민들에게 법을 지키라고 강요할 수 있겠는가? 일반 국민들도 사과하면 그냥 넘어가야 하는 건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권재진 법무장관은 국회답변에서 ''(김병화 후보자가) 대법관으로 손색이 없다''고 말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권 장관은 "일부 불미스러운 일들은 본인이 사과했고 그 정도 하자라면 대법관 후보로서 손색이 없다"고 밝혔다가 야당 의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