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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y 뉴스] "강금원은 왜 ''바보 중에 바보''라고 불리나?"

정치 일반

    [Why 뉴스] "강금원은 왜 ''바보 중에 바보''라고 불리나?"

    20년 이상 지속된 노 전 대통령과의 관계로 ''형극의 길'' 걸어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이면서 영원한 동지였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지난 2일 오후 9시 지병인 뇌종양으로 별세해 지난 4일 영면에 들었다.

    1988년 노 전 대통령의 광안리 집을 사게되면서부터 알게 된 강 회장은 1998년 노 전 대통령이 서울 종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부터 적극적인 후원을 하면서 ''든든한 후원자'' ''영원한 동지''로 불렸다.

    참여정부 초기 일부 보수언론들이 ''사설 부통령''이라는 곱지 않은 비판을 하기도 했지만 그는 끝까지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대가나 특혜를 받거나 이권을 챙기지 않았음에도 2003년과 2006년에 이어 2009년 세 차례나 검찰에 구속됐지만 노 전 대통령과의 의리를 버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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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희정 충남지사는 강금원 회장에 대한 추모의 글에서 낙선 할 줄 알면서도 지역감정 타파에 도전한 노 전 대통령을 ''바보 노무현''이라고 불렀듯이 강금원 회장을 ''바보 강금원''으로 부르고 싶다고 했고 언론과 정치권에서도 ''바보 중에 바보'' 또는 ''상바보 강금원''이라며 고인을 기렸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강금원은 왜 ''바보 중에 바보''라고 불리나?"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원한 친구''로 불리던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바보 중에 바보''로 불리는 이유는?

    =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 때문일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강금원 회장이 구속 된 직후인 2009년 4월 17일 홈페이지에 올린 ''강금원이라는 사람''이란 글에서 "강 회장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은 것이다. 미안한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다"며 자신을 면목 없는 사람이라고 칭했다. 그러면서 "강회장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대통령이 아니라 파산자가 되었을 것"이라며 "강 회장은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단 한 건의 이권도 청탁한 일이 없다"고 회고했다.

    20년 이상 지속된 노 전 대통령과의 관계로 이득을 보거나 이권을 청탁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형극의 길을 걸어야 했다.

    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1998년 서울 종로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했을 당시 후원금을 보낸 것을 시작으로 노 전 대통령의 영원한 후원자 겸 동지로 살아왔으며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에는 "퇴임 후 먹고 사는 건 내가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고 소신대로 정치하라"며 노 전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강금원 회장이 ''조건 없이'' 친노세력을 돕거나 투자한 자금만 100억 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 회장은 그러나 2003년 불법대선자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됐고 2006년에도 불법대선자금 보관과 법인세 포탈 혐의로 구속됐다. 퇴임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 주변에 대한 검찰조사가 시작됐을 때도 봉하마을을 방문하며 의리를 과시했지만 2009년 4월에는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이 강 회장에 대해 ''''회장님, 대통령님이 원망스럽지 않으세요?''''라고 물으니 ''''미쳤어요? 사람이 의리가 있어야지. 우리 둘 다 좋아서 그런 거예요''''라고 대답했을 정도다.

    이런 이유로 강금원 회장을 ''바보 노무현''에 빗대 ''바보 강금원'' 또는 ''바보 중에 바보'', ''상 바보''라고 부르는 것이다.

    - ''의리'' 때문에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곁을 지켰다는 것이냐?

    = ''의리''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없다. 피를 나눈 형제도 친척도 아니고 그렇다고 한 고향에서 태어난 지연도 없고 학연도 완전히 다르다. 그런데도 강금원 회장은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어려움을 겪을 때에도 곁을 떠나지 않았다.

    참여정부 시절 부총리나 장관 차관했던 인사들이, MB 정부 들어서자마자 고무신 거꾸로 신고 충성을 맹세하면서 ''한 자리'' 차지하는 모습에서 많은 사람들이 정치의 무상함이나 허망함''을 느꼈을 텐데, 그런 사람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었다.

    ''좌 희정 우 광재''로 불리며 노 전 대통령의 영원한 동반자로 불리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회장님, 도대체 회장님은 왜 우리를 도와주시고 계십니까. 무슨 덕을 바라고 그러신 것이라면 이제 임기도 끝나고 덕 볼 것도 없는데... 무슨 마음으로 의리를 지키십니까?''''라고 강금원 회장에게 물으니까 강 회장은 ''''나는 젊었을 때부터 호남사람으로서 부산에 건너와 사업했다. 부산이 나의 제2의 고향인 셈이다. 하지만 나는 호남에 대한 끝없는 편견과 선입견에 시달려야 했다. 툭하면 사람들은 말했다. 호남 사람 의리 없다, 신용 없다고... 하지만 나는 보여줄 것이다. 호남 놈이 얼마나 신용 있고 의리 있는지... 부산 사람 노무현 대통령이 보여줬던 호남에 대한 의리가 있었다면 나 또한 역시 호남 사람으로서 보여주고 싶다. 권력에 불나방처럼 달려들던 그 많은 사람들이 다 떨어져 나가도... 내가 대통령 옆에 있음으로서 호남사람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고쳐주고 싶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의리 때문에 형극의 길을 걸어야 했고 세 차례나 구속됐으며 뇌종양을 앓으면서도 끝까지 의리를 지켰기 때문에 고 강금원 회장에 대해 ''바보 중의 바보'' ''상바보''라고 불리는 것이다.

    안희정 충남지사에 강 회장에 대한 추모의 글에서 "대통령 만든 사람이라고 무슨 특혜를 받은 것도 없습니다. 사업이 늘었거나 돈을 더 벌었던 것도 아닙니다. 그나마 있던 회사도 줄이고 줄였고 해마다 정기 세무조사는 빼놓지 않고 다 받았습니다. 이미 세상에 대통령과의 관계가 알려진 만큼 더욱 엄격하게 다루어져야 한다는 여론 때문이었습니다. 아무런 특혜도 어떤 혜택도 받지 못한 그였지만 모든 권력을 다 내려놓고 힘도 빽도 없는 전임 대통령을 하루가 멀다 하고 찾아가 함께 했고, 현직 대통령의 서슬 퍼런 위세에 기가 질려 발길을 끊고 있을 때, 그분만이 봉하마을을 지켰습니다"라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인 문재인 후보는 강금원 회장의 빈소를 찾아 "강 회장님은 저하고 방법은 달랐지만 다른 방향에서 끝까지 노무현 대통령을 도운 동지"라며 "퇴임 후에 노 대통령과 함께 할 것 같던 분들이 등을 돌렸을 때도 끝까지 의리를 지킨 분"이라고 말했다.

    - ''의리의 사나이'' 요즘 정치풍토에서는 보기 힘들지 않느냐?

    =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는 의리의 사나이를 보기가 참 어렵다.

    1970년 개봉했던 백영민 박노식 주연의 ''의리의 사나이 돌쇠''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었지만 정치권에서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친구''도 없다는 것이 정설 아닌 정설로 통한다.

    [BestNocut_R]참여정부에서 국무총리나 장관, 차관 등 요직을 지냈던 한덕수, 윤진식, 윤증현, 김성호, 박병원 등등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주미대사나 청와대 경제수석, 지식경제부 장관 등으로 요직을 차지했던 것도 이런 세태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 참여정부시설 임명된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나 임채진 전 검찰총장은 노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고 간 ''기획 세무조사''와 ''표적수사''의 책임자였다는 데서 정치에 대한 허망함이나 무상함은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정치권에서 ''의리의 사나이''로 통하는 사람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장세동 전 안기부장 정도다. 장 전 부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의 7년 재임 기간 중 5년을 경호실장, 안기부장으로 보좌했는데 퇴임 후 세 차례나 구속됐지만 끝까지 전 전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지켰다. 그래서 ''의리의 사나이 돌쇠''라고 불리기도 했다. 반면 노태우 전 대통령 시절 이현우 전 경호실장은 비자금을 까발려 장세동과 대조적인 인물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장세동 전 부장은 전두환 정권시절 실세로서 권력을 누린 만큼 ''의리''를 지켰지만 강금원 회장은 참여정부 5년 동안 아무런 이득도 없이 손해만 보고 오히려 형극의 길을 걸으면서도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의리를 끝까지 지켰다는 점에서 분명한 차별성이 있다,

    춘추전국시대에 제나라 환공을 최초의 패자로 만든 명재상 관중과 그의 친구였던 포숙과의 관계를 ''관포지교''라고 한다. 관중이 했다는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이라고 할 정도로 두 사람의 우정은 두터웠다. 특히 포숙은 장사를 할 때도 관직에 나아가서도 심지어 환공을 옹립한 이후에도 관중을 추천해 오히려 그 아래에 들어가면서까지 친구를 믿고 자신을 희생한다.

    이제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과 강금원 회장의 관계를 굳이 비유하자면 ''관포지교''로할 수 있을까?

    노 전 대통령은 강 회장의 장녀와 이병완 전 청와대 비서실장의 장남 결혼식 주례에서 ''''나와 하는 일은 다르지만 세상을 보는 생각이 같아 뜻을 같이하고 있다''''면서 ''''정치적 성취에 큰 보탬이 됐고 나대신 고초도 겪은 특별한 인연''''이라고 그를 소개하기도 했다.

    - 인터넷이나 SNS에서도 강금원 회장에 대한 추모의 글이 잇따르고 있다는데?

    = 지난 4일 강 회장에 대한 장례식이 있었는데 6일 아침에도 강금원 회장과 관련된 글이 트위터나 인터넷에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트위플 @__hope_님은 <"퇴임 후 먹고사는 건 내가 알아서 할테니 걱정말고 소신대로 정치하라" 강금원 회장은 노무현 대통령 일이라면 아무 이득도 없이, 아무 이득이 없어도, 발벗고 나섰다고 한다. 사람들은 이런 그를 ''바보 강금원''이라고 불렀다. ''바보 노무현''의 진실한 벗..>이라는 트윗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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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위플 @kksgmtt님이 "우리는 이런 나라에 살고 있다. http://twitpic.com/aetxuw"올린 강금원과 최시중을 비교한 표가 계속 리트윗 되고 있다.

    특히 트위터에는 주로 강금원 회장이 구속된 이후 뇌종양 수술을 받아야 하는데도 검찰의 반대로 병이 악화됐다는 글과 검찰의 표적수사 문제, ''정치검찰의 타살''이라는 시사인 주진우 기자의 기사 등이 많이 리트윗 되고 있다.

    @JoahnPark 님은 "강금원 사망의 원인,, 은진수 사면,, 공천뇌물,, 논문표절 김재우,, <= 이런 일들이 올림픽에 묻혀서 넘어가지 않게 정신 똑똑히 차리세요 여러분~~ 올림픽은 즐기되 꼭 관심갖고 기억합시다 !!"라고 올리기도 했다.

    고 노무현 전대통령의 ''강 금원이라는 사람'' 전문
    강회장이 구속되기 전의 일이다. 내가 물어보았다.

    ''''강 회장은 리스트 없어요?''''

    ''''내가 돈 준 사람은 다 백수들입니다. 나는 공무원이나 정치인에게는 돈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 많은 돈을 왜 주었어요?''''

    ''''사고치지 말라고 준 거지요. 그 사람들 대통령 주변에서 일하다가 놀고 있는데 먹고 살 것 없으면 사고치기 쉽잖아요. 사고치지 말고 뭐라도 해보라고 도와 준 거지요.''''

    할 말이 없다. 부끄럽고 미안하다. 나의 수족 노릇을 하던 사람들이 나로 인하여 줄줄이 감옥에 들어갔다 나와서 백수가 되었는데, 나는 아무 대책도 세워 줄 수가 없었다. 옆에서 보기가 딱했든 모양이다. 강회장이 나서서 그 사람들을 도왔다.

    그 동안 고맙다는 인사도 변변히 한 일도 없는데 다시 조사를 받고 있으니 참으로 미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무슨 말을 할 수가 없다.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는데 강회장이 계속한다.

    ''''지난 5년 동안 저는 사업을 한 치도 늘리지 않았어요. 이것저것 해보자는 사람이야 오죽 많았겠어요? 그래도 그렇게 하면 내가 대통령님 주변 사람을 도와줄 수가 없기 때문에 일체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요.''''

    강 회장이 입버릇처럼 해오던 이야기다.

    ''''회사일은 괜찮겠어요?''''

    ''''아무 일도 없어요. 지난번에 들어갔다 나오고 나서 직원들에게 모든 일을 법대로 하라고 지시했어요. 수시로 지시했어요. 그리고 모든 일을 변호사와 회계사의 자문을 받아서 처리했어요. 그리고 세무조사도 다 받았어요.''''

    그래서 안심했는데 다시 덜컥 구속이 되어버렸다.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게 사업을 한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닌 모양이다.

    어떻든 강 회장은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을 맞은 것이다. 이번이 두 번째다. 미안한 마음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강 회장이 나를 찾아 온 것은 내가 종로에서 국회의원에 출마했을 때였다.

    모르는 사람한테서 전화가 왔다.

    ''''후원금은 얼마까지 낼 수 있지요?'''' 전화로 물었다.

    ''''1년에 5천만원까지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사무실로 온 사람이 강 회장이다.

    ''''나는 정치하는 사람한테 눈꼽만큼도 신세질 일이 없는 사람입니다.''''

    첫마디를 이렇게 사람 기죽이는 이야기로 시작했다. 눈치 안보고 생각대로 말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그래서 경계를 하지 않았다. 인연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당시 나는 장수천 사업에 발이 빠져서 돈을 둘러대느라 정신이 없던 때였다. 자연 강 회장에게 자주 손을 벌렸다. 당시 안희정씨가 그 심부름을 하면서 타박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정치인이 정치나 하지 왜 사업을 하려고 하느냐 하는 것이 구박의 이유였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 직접 타박하지는 않았다. 그런 와중에 나는 2000년 부산 선거에서 떨어졌고, 2002년 대통령 후보가 되었을 때에는 장수천 빚 때문에 파산 직전에 가 있었다.

    강회장의 도움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대통령이 아니라 파산자가 되었을 것이다. 강 회장은 아직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지만 나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나에게 단 한 건의 이권도 청탁한 일이 없다. 아예 그럴만한 사업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고 한다.

    퇴임이 다가오자 강 회장은 퇴임 후 사업을 이야기 했다.

    처음에는 생각이 조금 달랐다. 강회장의 생각에는 노무현이 중심에 있었고, 나의 생각에는 생태 마을이 중심에 있었다. 결국 생태마을 쪽을 먼저 하고 재단은 퇴임 후에 하기로 가닥이 잡혔다. 그렇게 해서 주식회사 봉화가 생겼다. 이름이 무엇이든 우리가 생각한 것은 공익적인 사업이었다.

    70억이라고 하니 참 크게 보인다. 그런데 강 회장의 구상은 그보다 더 크다. ''''미국의 클린턴 재단은 몇 억 달러나 모았잖아요. 우리는 그 10분의 1이라도 해야지요.'''' 이것이 강 회장의 배포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그렇게 많은 돈을 모으기가 어렵다. 꼭 하려고 한다면 그것은 강 회장 혼자서 부담을 해야 할 형편이다.

    강 회장은 퇴임 후에 바로 재단을 설립하자고 주장했으나 다른 사람들은 좀 천천히 하자고 했다. 강 회장 한사람에게만 의지하는 것이 미안하고 모양도 좋지 않으니 출연할 사람들을 좀 더 모아서 하자는 의견이었다.

    그런데 퇴임 후 바로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한 각종 조사와 수사가 시작되고, 박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도 시작되니 아무 일도 시작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을 모을 수가 없게 되었으니 재단은 표류하고 있다.

    나는 사람들에게 가급적 우리 집에 오지 말라고 한다. 그러지 않아도 사업하는 사람들은 오겠다는 사람도 없었다. 사업을 안 하는 사람이라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어디 취직이라도 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봉하에 오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런 봉하에 강 회장은 매주 하루씩 다녀갔다.

    그런 강회장이 구속이 되었다. 아는 사람들은 그의 건강을 걱정한다. 제발 제 때에 늦지 않게 치료를 받고 건강하게 다시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면목 없는 사람 노 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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