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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사 100년만의 쾌거"라고 극찬 받은 김기덕 감독의 18번째 영화 ''피에타''. 한국영화 최초로 제69회 베니스국제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해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로 손꼽히지만 제작비는 고작 1억 5000만원에 불과하다.
김기덕 감독은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노 개런티로 참여해준 덕분"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숫자가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만들었기에 가능할걸까? 피에타의 총괄 프로듀서인 김기덕필름 전윤찬 피디에게 제작 뒷얘기를 들어봤다. 전 피디는 ''풍산개'' ''신성일의 행방불명'' ''내청춘에게 고함'' 등을 프로듀싱했다.
작품도 예술이고 제작비도 예술이다.배우들과 스태프들 개런티가 없기에 가능하다(막내급 스태프들은 제외). 특히 주연배우 개런티가 통상 제작비의 30~40%를 차지하니까. 촬영기간도 짧다. 피에타는 한 3주간 12회 차 찍었다.
김기덕 감독의 내공도 무시 못하겠다. 데뷔작부터 늘 저예산으로 찍었다.물론이다. 그래도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해안선'' 등 과거 LJ필름과 작업할 때는 평균 5억 원 정도가 들었다. 그때는 필름으로 촬영해서 더 들었는데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더 아끼게 됐다. 감독님이 얼리어댑터이시다. 새로운 기종이 나오면 누구보다 빨리 접해서 특성을 파악한다. 그리고 그걸 잘 다룰 줄 아는 기술 스태프들을 구해달라고 하신다.
프리프로덕션 기간이 긴가? 어떻게 3주 만에 양질의 영화를 찍을 수 있나?오히려 프리기간이 짧다. 그래서 힘들다. 피에타는 감독님이 하시겠다고 선언하고 준비해서 촬영이 끝나기까지 한 달 걸렸다. 한 10일 준비하고 촬영 들어갔다. 후반작업 두 달 해서 총 세 달 걸린 셈이다.
프리기간이 짧은데도 일사분란하게 진행되는 비결이 뭔가? 감독님이 현장을 보고 시나리오를 써서 프리단계가 그만큼 쉽다. 시나리오가 어느 정도 나오면 현장 확인하고 다시 쓴다. 현장에서 나올 수 있는 이야기를 반영하기도 한다. 또 현장에서는 최선이 아니면 곧바로 차선책을 찾는다. 안되는 건 과감히 포기한다. 최상보다 최하의 조건을 정해놓고 그 조건을 충족시키면 간다. 그래서 빠르다.
모니터확인도 안한다고.피에타는 카메라를 2대로 찍었는데 B카메라를 직접 잡았다. 카메라에 달린 모니터로 확인했다. 무엇보다 감독님이 머릿속으로 편집을 하면서 찍는다. 실제 편집실에서는 마지막 정리에 가깝다. 피에타는 140분 나왔는데 최종 104분이 됐다. 일반 상업영화는 보통 3~4시간 나온다. 감독님은 러닝타임 기준 30분 내외로 다 맞춘다.
변수가 생기면 어떻게 하나?일단 현장 나가면 오늘 찍기로 한 분량은 어떤 변수가 생겨도 다 찍는다. 그래서 스태프들이 만능이 돼야한다. 일이 터지면 바로 대처한다. 현장 안의 모든 것을 다 활용해 무조건 찍는다. 그래서 스태프들을 뽑을 때 최우선 기준이 내 작품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김기덕 감독 작품이 아니라 내 작품! 비록 촬영기간이 짧아도 똑같이 한 작품하는 것이기 때문에 들이는 에너지는 비슷하다. 오히려 집중력이 더 요구된다.
장소대여료가 비싸면 포기하나꼭 그렇지는 않다. 투자할 때는 과감하게 하고 나머지 부분에서 아낀다. 우리 현장에는 간식과 음료가 준비된 티테이블이 없다. 오로지 커피, 녹차, 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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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타에서 가장 돈이 많이 든 공간은 어디냐?강도(이정진 분)집이다. 한 1주일 넘게 찍었는데 실제로 누가 살고 있던 집이라 그분께 사용료를 지불했고 또 우리가 사용하는 기간 동안 지낼 공간을 마련해드렸다.
조민수와 이정진, 두 분 다 감독님이 먼저 러브콜을 보냈나?제일 먼저 생각난 두 배우가 공교롭게도 같은 소속사였다. 소속사 대표 만나서 잘 얘기가 됐다. 이정진 씨는 백지상태라서 좋았다더라. 감독님은 배우의 의지를 가장 중요시 생각한다. 만약 작업하고 싶다면 공개 러브콜을 보내면 된다. 바로 0순위가 될 것이다.
''빈집''이후 부터는 김기덕필름이 제작비를 자체 조달하고 있다. 해외에서는 워낙 유명하셔서 일본이나 프랑스 등지에서 투자받거나 해외 판매 수익금으로 자금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김기덕 감독 영화는 한국영화 중에서 최고가로 팔린다. ''풍산개''는 감독님이 제작한 영화인데도 국가 당 평균 4000~5000만 원에 팔렸다.
피에타 제작비는 풍산개 흥행수익으로 마련했다.풍산개가 제작비 2억 원이 들었는데 순제작비 12배를 벌었다. 피에타는 손익분기점은 25만 명이나 50만 명은 들어야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 약간의 돈을 돌려줄 수 있다. 100만 들면 일반적인 상업영화에 참여한 정도로 개런티를 줄 수 있다. 사실 프로듀서 입장에서 인건비를 못주는 게 참 힘들다. 그래서 관객이 많이 들어서 충분히 보상해줬으면 좋겠다(웃음).
흥행만 따지면 연출작보다 제작하는 영화가 더 잘된다.
재미와 오락성이 강하다 싶으면 연출보다 제작으로 돌린다. 후배들에게 기회를 많이 주려고 한다. 개봉 예정인 ''''배우는 배우다''''를 비롯해 최근 촬영 끝난 ''신의 선물'', ''붉은 가족'' 모두 제작영화다.
얼마나 많은 이야기를 갖고 있는 건가. 제작하는 모든 영화의 시나리오를 쓴다. 풍산개 끝나고 제가 받은 시나리오가 트리트먼트 포함해 12개였다. 그중에는 스케일만 봐서는 100억 원대 대작도 있었다. 감독님은 어떤 아이템에 꽂히면 트리트먼트를 써놓는다. 그리고 영화가 들어가기 직전에 시나리오를 완성한다.
최근 대중 친화적인 행보로 김 감독이 한결 부드러워졌다는 평가다.김기덕필름에 2년 전에 들어왔는데 그때와 똑같다. 물론 3년 간의 은둔생활 이전과 비교하면 세상풍파를 겪어서인지 너그러워지셨다. 유머와 재치는 그때도 넘쳤다. 겉모습에서 날카로움이 빠지고 삶의 무게가 느껴진다고 할까. 근데 영화 찍을 때는 여전히 날카롭다. 현장에서 카리스마는 굉장히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