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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문재인-안철수와 1987년 김대중-김영삼 ''단일화 비교''

정치 일반

    2012년 문재인-안철수와 1987년 김대중-김영삼 ''단일화 비교''

    계파정치·지역주의 양김시대 지나 상호 조력자이자 신뢰관계의 문재인-안철수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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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권의 두 유력 대선주자인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가 6일 만남으로써 후보 단일화 문제에 대한 논의가 본격화 됐다. 두 사람 모두 단일화가 돼야 한다는 당위성에는 공감하지만 가야할 길은 멀고, 넘어야 할 고비도 많다.

    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5번 치러진 대선에서 후보 간 연대는 선거 결과에 결정적인 변수가 됐으며, 유력 후보와 연대나 제휴에 성공한 후보가 대부분 선거에서 이겼다. 3당연합(노태우-김영삼-김종필), DJP연합(김대중-김종필), 김대중-이인제 연합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흥미로운 사실은 보수와 진보, 또는 여권과 야권의 주요 후보 간 이종결합은 모두 성공한 반면, 공교롭게도 1987년 김영삼-김대중 두 야권후보의 단일화 논의는 실패해 여권 후보였던 노태우 전 대통령이 어부지리로 당선했다.

    문재인-안철수 두 주요 야권 후보의 단일화 논의를 계기로 87년 대선 당시 양김(김영삼-김대중)의 단일화 논의와 비슷한 점과 다른 점을 알아봤다.

    ◇지지기반= 문-안(문재인-안철수)이 양김과의 가장 큰 차이는 지지 기반이다. 양김은 철저히 영-호남의 지역적 기반을 바탕으로 했지만 둘 다 부산 출신인 문-안은 지역주의와는 무관하다. 양김이 결국 단일화에 실패한 것은 지지자가 지역적으로 확연히 나눠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80년 광주민주화운동의 아픈 역사를 경험하면서 지역에 기초한 지지는 지역감정과 결합하면서 단순한 정치적 호불호를 넘어 상대 후보를 단일후보로서 인정할 수 없었다.

    양김은 선거 후 대선 패배의 책임에 대해 생각보다 유권자들부터 비판을 별로 받지 않았다. 두 사람을 지지하는 세력 모두 상대 후보로 단일화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따라서 대선 패배의 책임도 양보하지 않은 상대 후보에게 돌렸기 때문이다. 누가 양보를 했어야 하는지는 지금도 공방이 되고 있다.

    반면 문-안은 두 사람의 지지 세력이 대부분 겹치고, 적어도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적대적 성향은 아니다. 이런 점에서 문-안이 단일화에 성공할 가능성은 양김에 비해 훨씬 높다.

    연합뉴스-비전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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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쟁관계와 조력관계= 양김 관계의 가장 큰 특징은 서로 조력자이면서도 경쟁관계였다. 독재에 맞서 민주화 운동을 하는 측면에서는 상호 조력자였고, 협력자였다. 반면 정치 세력과 대권에 관련해서는 철저한 경쟁관계였다.

    김영삼의 상도동계와 김대중의 동교동계로 양분되어 있던 당시의 계파정치는 같은 야당으로 비슷한 정치적 성향을 가졌다는 점을 제외하면 여야 관계와 별 차이가 없을 만큼 상호 배타적이었다.

    이에 반해 문-안은 상호 조력자의 측면이 강하다. 선거 이전부터 두 사람은 상당한 신뢰를 바탕으로 관계를 형성해 왔다. 또 두 사람의 선거캠프에서 일하는 핵심 인사들도 상호 밀접한 관계와 교류를 맺어온 인물들이 대부분이다.

    물론 대선 운동을 하는 과정에서 서로 단일후보가 되기 위한 경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선거에서의 상호 협력과 단일화 필요성에 대해 두 후보는 물론이고 후보 진영에서도 확고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인물의 성격= 양김은 공통적으로 자의식이 매우 강하고, 주관이 뚜렷하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결단과 고집에 대해서는 측근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신군부에 저항한 23일간의 단식을 비롯해 고비에서 그가 보인 뚝심과 고집은 그의 성격을 짐작할 수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납치사건을 비롯해 온갖 협박과 회유 속에서도 민주화투쟁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원칙과 신념에 대한 꺾이지 않는 고집이었다. 민주화운동에서는 이러한 개인적 성향과 성격이 빛을 발하고, 더 공고화되기도 했겠지만 후보 단일화 협상에서는 유연성을 억제하는 방해 요소가 됐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으로 대통령직선제를 쟁취한 이후 민주화에 대한 국민들의 끓어오르는 여망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오직 자신이 적임자임을 주장하며 결국 단일화는 실패로 끝났다. [BestNocut_R]

    반면 문과 안은 많이 다르다. 문재인 후보는 선비가 별명일 만큼 점잖으며, 합리적이라고 평가를 받는다. 안철수 후보도 마찬가지다. 의사직업을 포기하고, 컴퓨터백신사업에 뛰어들 정도로 결단력과 고집도 있지만, 한편으로 엔지니어 출신답게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 모두 비교적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성격을 소유했다는 점은 단일화 협상을 성공으로 이끄는데 그만큼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 반면 두 사람의 주관이 그만큼 뚜렷하다는 반증이어서 원칙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할 경우 단일화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정치인 대 비정치인= 양김은 오랜 기간 정치를 해온 정치인이다. 반면 문-안은 율사(律士)와 IT기업가 출신이다. 문재인 후보의 경우 청와대 근무경력이 있긴 하지만 정치인 출신으로 분류하기는 어렵다.

    정치인 간의 단일화는 양 진영 간 정치적 이해관계가 일치해야 후보 단일화이건, 전략적 제휴건 성사될 수 있다. 양김은 지지기반의 분명한 차이에다 계보정치에 바탕을 둔 진영논리가 워낙 강했기 때문에 단일화에 실패한 것이다.

    문재인과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 논의는 이런 점에서 양김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이런 이유로 단일화 협상도 기존의 나눠먹기식 지분 다툼보다는 정치의 원칙과 관련된 부분에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제1야당의 후보로 기성정치의 한가운데서 정치 개혁을 외치는 문재인 후보, 기성정치를 강하게 불신하며 자신이 대안이라 주장하며 정치판에 뛰어든 안철수 후보. 일면 공통점이 있어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뚜렷한 차이가 발견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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