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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아파트 경비원의 삶…"사람이 아니므니다"

사건/사고

    강남 아파트 경비원의 삶…"사람이 아니므니다"

    1평 남짓한 초소에서 화장실도 제대로 못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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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벽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24시간. 아파트 경비원들의 근무시간이다. 일을 마치고 집에 가자마자 곯아떨어지기 일쑤여서 ''저녁이 있는 삶''은 포기한 지 오래다.

    출근하면 전쟁이다. 단지 내 순찰을 돌고 재활용 분리수거장에서 분리수거 작업을 마치면 1시간 30분이 훌쩍 지난다.

    영하의 날씨에 바깥에서 일하느라 꽁꽁 얼어붙은 손을 녹여보려고 하면 어김없이 밖에서 경적이 울린다. 출근해야하니 차를 빼달라는 ''성화''도 오롯이 경비원이 감내해야 한다.

    수시로 순찰을 돌고 동 주변 청소, 끊임없이 오는 택배를 분류하다보면 야간 순찰을 한 뒤에야 겨우 1평 남짓한 초소에서 잠시 눈을 붙이곤 한다.

    ◈ 가장 고된 일이요? "주차장에 차 미는 일이죠"

    아파트 경비원들 치고 무릎 연골이 성한 사람이 별로 없다. 몸무게의 배가 넘는 차량을 하루에 수십번도 넘게 미느라 무릎이 성치 않은 것이다.

    적게는 50대 초반에서 많게는 60대 중반까지인 경비원의 나이를 감안하면 혼자서 주차된 수십대의 차량을 정리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좋게 말해 차량 정리일뿐 사실상 차를 혼자서 미는 경우가 태반이다.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경비원 김영식(가명. 60)씨는 "경적이 하도 울려서 급히 나갔더니 20대 젊은 아가씨가 운전대에 딱 앉아 창문을 빼꼼히 열더니 ''앞 차 좀 밀어달라''고 하더라"면서 "추운 날씨에 딸같은 사람 앞에서 무거운 차를 혼자 미는데 서럽기도 했다"고 속내를 드러냈다.

    특히 외제차의 경우에는 여간 조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외제차는 평행주차를 하더라도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어두는 사람들이 많아 직접 운전을 해서 차를 빼야하기 때문이다.

    차를 빼다가 행여나 사고라도 나면 이 모든 책임은 고스란히 경비원의 몫이다. 김 씨는 자신의 동료가 외제차를 빼다가 접촉사고를 내는 바람에 1,000만원까지 물어준 적이 있다고도 말했다.

    하지만 억울하다고 어디 하소연할 데도 없다. 용역관리회사나 입주자대표들 귀에 들어가기라도 하면 바로 징계 대상이 된다.

    ◈ 쉬는 시간, 식사시간은 모두 임금에서 제외돼

    최저임금법에 따라 24시간 교대 근무로 일하는 경비원들은 한 달에 170만원은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들의 손에 쥐어지는 돈은 평균 140만원 가량. 점심 식사시간 30분, 저녁 식사시간 30분, 야간 쉬는 시간 1시간 30분은 임금 체계에서 아예 ''휴게 시간''으로 빠지기 때문이다.

    휴게 시간은 아파트마다 모두 다르다. 아파트에 따라 식사시간을 늘려 휴게 시간이 4시간이나 5시간으로 정해지기도 한다. 휴게시간이 늘어날수록 당연히 임금은 줄어든다.

    억울한 것은 ''휴게 시간''이어도 결코 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김 씨는 "식사시간에 겨우 밥을 좀 먹으려고 해도 택배가 오거나 차를 빼달라고 하면 어김없이 나가봐야 하기 때문에 근무 시간이나 마찬가지" 라며 하소연했다.

    ''휴게 시간''에 밥을 먹는 것이 아니라 근무시간에 겨우 밥을 먹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화장실 가는 것 조차 눈치를 봐야한다. 행여나 화장실에 가느라 자리를 비운 동안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이 또한 모두 경비원의 책임이다.

    ◈ 몇 년을 성실히 일해도 잘리는 건 한 순간

    경비원들의 처우에는 입주자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한다. 아파트 관리비에 경비원의 월급이 포함돼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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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강남 압구정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부당해고를 당하자 굴뚝에 올라가 고공농성까지 벌이게 된 것도 사실상 입주자들이 경비원의 나이 제한을 낮추면서 시작이 됐다. 매번 월급에 포함되던 식비도 지난해 입주자대표회가 바뀌면서부터 제외됐다.[BestNocut_R]

    수년간 실수 없이 일을 해도 단 한번이라도 실수를 하게 되면 근무지가 열악한 곳으로 옮겨지거나 해고 대상이 된다.

    지난 2일 저녁까지 고공농성을 벌인 민 모(62)씨도 십 년동안 성실하게 일하다가 단 한 번 야간 순찰을 놓치면서 해고를 당하게 됐다.

    김 씨는 "민 씨가 야간 쉬는 시간에 눈 좀 붙이려고 알람을 맞춰놓는다는 게 오전이 아니라 오후 대로 맞춰놓으면서 순찰을 놓친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이쯤이면 ''사람 목숨''이 ''파리 목숨''보다 낫다고 하기도 어려운 것 아니냐"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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