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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희생 ''황의 법칙'' 사회학 분석 대상"

Interview 서울대 로스쿨 인권법학회 ''산소통'' - 오정민·김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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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재해노동자들과 소통하는 학생들의 모임, 줄여서 ''산소통''.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인권법학회 내 소모임인 이곳이 요즘 유명세를 치르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분야 전문가인 황창규 전 삼성전자 사장의 서울대 사회학과 초빙교수 임용을 없던 일로 만든 주축으로 지목된 탓이다.

산소통은 지난 12월 24일 ''산업재해 피해자를 양산한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총책임자였던 황 전 사장의 사회학과 초빙교수 임용을 중단해야 한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한 뒤 학내 여론을 모아 갔고, 학교 측은 결국 지난 21일 황 전 사장의 교수 임용을 백지화했다.

이를 두고 사회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섣부른 행동이었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황 전 사장의 현장 경험과 사회학의 만남이 빚어낼 새로운 사회학의 출현을 막았다는 것이다.

황 전 사장의 교수 임용이 철회되던 날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진은 과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교수들과의 허심탄회한 내부 논의의 과정을 밟지 않은 채, 학생들은 언론에 돌연히 성명서를 발표함으로써, 문제를 기습적으로 쟁점화함으로써 학과 내부의 민주적 소통 과정과 기초적 신뢰를 훼손시켰다''고 했다.

황 전 사장의 교수 임용을 반대해 온 학생들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셈이다.

하지만 지난 28일 저녁 서울대 인근 한 커피숍에서 만난 산소통 소속 오정민(26)·김재원(25) 씨의 이야기는 달랐다.

산소통 대표를 맡고 있는 오 씨는 학생들을 따돌린 것은 오히려 학교 측이라고 했다.

학생들이 학교 입장을 알 수 있던 유일한 통로가 언론이었다는 것이다.

"황 전 사장이 사회학과 초빙교수로 온다는 소식을 언론에서 처음 알았어요. 바로 이튿날 성명을 내고 학내에 알리기 시작했죠. 이후 사회학과 대학원생과 졸업생도 성명을 내고 단과대학생회장연석회의 등과 함께 14일 공동대책위원회(공대위)를 꾸렸어요. 그날 공대위 이름으로 사회과학대학장과의 면담을 요청했는데 다음주 화요일(22일) 만나자더군요. 그런데 면담 전날 언론에서 임용 백지화 소식을 들었어요." 결과만 놓고 보면 공대위의 요구대로 황 전 사장의 초빙교수 임용은 없던 일이 됐다.

하지만 학교 운영에서 학생들을 배제하는 분위기는 여전하다고 김 씨는 말했다.

"공대위를 꾸리긴 했지만 세력이 강한 것도 아니어서 학교 측이 무시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임용 철회 소식을 들었을 때는 성과를 내 기뻤는데 교수진의 입장을 듣고는 ''아직이구나''라고 생각했죠. 결국 ''너희들이 왜 이 일에 간섭하느냐''는 거였으니까요. 학생들이 충분히 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탓인가라고 생각하면 안타깝기도 해요." 사회학과 교수진은 황 전 사장을 교수로 초빙하려 했던 이유로 ''반도체 혁명을 일으킨 그 혁신의 에너지와 지혜를 사회학과 학생들에게 선보이고, 과학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서 변화하는 현대사회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좀 더 현장에 가깝게 가져가고자 함''이라고 했다.

결국 황 전 교수의 초빙교수 임용을 반대했던 학생들은 사회학 발전의 걸림돌이 된 셈이다.

돌연 황 전 사장의 교수 임용을 철회할 것이 아니라 학생들과 토론하며 그 뜻을 설명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오 대표는 이에 대해 학교가 학생들과 이야기할 뜻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학생들이 문제를 제기했으니 허심탄회한 토론이 있어야 하는데 학교는 ''원하는 대로 철회했으니 됐냐''는 식이에요. 학생들을 논의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 학교와 교수 측의 권위적인 태도만 확인했죠. 이번 일을 통해 학생들이 대학 운영에서 어떤 권리도 갖지 못한 현실이 여실히 드러났어요." 교수진의 입장은 황 전 사장의 심기가 불편하지 않도록 사과를 하고, 사회학과 학생들의 사회학에 대한 무지를 꾸짖고, 다른 과 학생들에게는 너희가 간섭할 일이 아니니 이제 여기서 끝내자는 식이었다는 것이다.

산소통은 왜 황 전 사장의 사회학과 교수 임용을 극구 반대했을까. ''자본가와 노동자로 편을 가르는 낡은 패러다임에 묶여 있다''는 비판대로 이들이 학교 안에서 변한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한 탓일까. 산소통이 태생적으로 노동 현장에 뿌리를 뒀다는 점에서 이렇게 단정짓는 데는 무리가 따른다는 목소리가 높다.

2011년 9월 만들어진 산소통의 출발점은 삼성 반도체 공장 직업병 피해자를 지원하는 단체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다.

그해 6월 삼성전자 백혈병 피해자 유족 5명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법원은 ''산업재해로 인정한다''는 판결을 내렸다.

반도체 사업장의 작업 환경과 백혈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 본 것이다.

현재 공단의 판결 불복으로 항소심이 진행 중인데 산소통은 반올림을 도와 피해자 유족을 위한 법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그렇게 산소통 회원들은 피해자와 그 유족들의 현실을 곁에서 지켜봐 왔다.

오 대표는 황 전 사장을 ''삼성 반도체 신화의 주역''으로만 볼 수 없다고 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황 전 사장이 삼성 반도체 관련 부서를 지위하던 때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얻은 병이 이제 나타나고 있어요. 피해자들은 목표 물량을 뽑지 못하면 반성문을 쓰고 급할 땐 맨손으로 일해야 했다고 증언합니다.

황 전 사장이 자신의 이름을 세계에 알린 ''황의 법칙(메모리 반도체 집적도는 해마다 두 배씩 늘어난다)''을 입증하는 데 노동자들의 임금과 건강, 생명이 희생됐던 거죠. 사회학과 학생들의 말대로 ''황 전 사장은 사회학의 분석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사회학을 말할 위치는 아니''라고 봅니다.

" 노동자들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전자 산업의 노동 환경과 학생들이 학교 운영에 참여할 수 없는 대학 현실. 이들로부터 듣는 기업과 대학의 모습은 많이 닮아 있었다.

김 씨는 같은 맥락에서 황 전 사장의 사회학과 교수 임용 추진도 가능했던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성장을 위해 소수자의 희생은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분위기가 반도체 직업병 피해자들의 고통을 외면하도록 하는 거죠. 황의 법칙이 100% 기술혁신만으로 이뤄졌을리 없잖아요. 그 안에서 여러 일들이 있었다는 게 분명한데도 학교 측은 임용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를 따져보지 않아요. 대학 스스로가 점점 자본과 시장의 힘에 노출되고 포섭되는 탓 아닐까요." 이들은 이번 일로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열악한 노동 현실과 비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가진 대학의 모습이 더 널리 알려지기를 바란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그동안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불합리한 노동 현실을 알리는 데 힘 쓴 곳은 반올림입니다.

산소통은 이를 서울대 안에서 공론화하려 했을 뿐이죠. ''삼성''과 ''서울대''라는 자극적인 소재가 만나면서 이번 일이 큰 주목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더 많은 이들이 반올림의 활동에 관심을 갖고 대학의 운영 주체로서 학생의 모습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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