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이번 선거기간 내내 복지를 강조하며 보수 후보로서의 한계를 뛰어넘고 중도층을 흡수했다.
그런데 대통령직인수위원회 활동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박 당선인의 핵심 복지 공약들이 줄줄이 후퇴하고 있다.
모든 노인들에게 월 2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기초연금 공약은 차등지원으로 가닥을 잡았고, 4대중증질환 진료비를 국가가 전액 보장하겠다는 공약도 핵심 비급여 부분이 빠져 반쪽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진보진영에서는 말바꾸기라며 비판하고 있지만 보수진영에서는 재원을 이유로 공약을 더 빼야 한다고 압박하는 형국이다. 양 진영 논리에 끼어 갈팡질팡하고 있는 박근혜표 복지는 시작도 하기 전 위태해보인다.
◈인수위의 발뺌, 처음부터 아니라고 했지만…혼선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공약이 바로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보장 공약이다.
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질환 등 4대 중증질환에 대해 국가가 진료비를 전액 보장하겠다는 공약은 선거때부터 논란을 빚었다.
환자들이 실제로 가장 부담을 느끼는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료 같은 3대 비급여 항목이다.
이런 비급여 항목들이 건강보험에 흡수되느냐가 관건이었는데 새누리당은 선거기간 동안에는 애매하게 표현하다 이제와서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고 발뺌하는 형국이다.
박 당선인은 대선 사흘 전 열린 3차 TV 토론회에서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4대 중증질환 국가부담 공약에 대해 "간병비와 선택진료비를 보험급여로 전환하는 데도 1조 5천억원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냐"고 따져 묻자, 박 후보는 "네"라고 대답했다.
간병비 등 비급여 항목도 고려하고 예산을 책정했다는 것.
이후 박 당선인은 언론 인터뷰에서도 비급여 항목의 건강보험 적용에 대해서 단계적으로 추진하는데 찬성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인수위에서는 비급여 항목은 처음부터 지급대상이 아니었다고 항변하고 있다.
인수위는 6일 해명자료를 내 "4대 중증질환 전액 국가부담 공약에는 당연히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가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라며 "필수적인 의료서비스 이외에 환자의 선택에 의한 부분은 보험급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와 환자단체는 황당하다는 입장이다.
김준현 건강세상네트워크 환자권리팀장은 "공약집을 봐도 모든 비급여 항목을 포함한다고 돼 있는데, 이제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며 "환자들이 가장 돈을 많이 쓰는 곳은 비급여 항목인데 이를 제외하고 공약을 추진한다면 실질적인 효과는 거의 미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초연금 공약도 마찬가지이다. 하위 소득 70%이상의 모든 노인들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하겠다던 기초연금을 기존 국민연금 수령자들에게는 깎아서 지급하기로 하면서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정책이 공식 발표되기도 전에 국민연금 해지 문의가 폭주하기도 했다.
◈대강 계산해 내놓는 '포장 공약', 거품 꺼지면서 실망감 커져 두 공약의 후퇴 모두 재원 마련과 관련이 있다. 당초 분석보다 재원이 훨씬 많이 소요될 것으로 보이자 공약이 뒤로 밀리는 것이다.
실제로 민간·국책연구소와 기획재정부는 박 당선인의 복지 공약 이행에 5년간 최소 270조원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는 당선인이 공약집에서 밝힌 130조원을 두배 이상 뛰어넘는 것이다.
새누리당 내부에서 '출구전략' 움직임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박 당선인이 복지를 위한 증세는 없다고 못박으면서 운신의 폭을 좁혀왔던 측면이 있다.
이상구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대표는 "정책들 중 상당수가 과소추계돼 있는 경우가 많다"며 "지금이라도 정확한 추계를 통해서 부족한 재정은 증세로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충고했다.
현행 조세제도 재정비와 지하경제 활성화 등으로는 재원 마련에 한계가 있다는 것.
처음부터 공약을 과대포장하지 말고, 정확한 추계로 현실성을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용하 순천향대 교수는 "4대중증질환 공약의 경우 박 당선인이 TV토론에서 말실수를 했으면 그때 바로 잡고 제대로 설명을 했어야 한다"며 "자꾸 얼버무리면서 눈치를 보니 혼동이 생긴다"고 말했다.[BestNocut_R]
김 교수는 이어 "인구 노령화가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복지 정책 앞으로 어마어마한 국가 예산이 소요될 것"이라며 "정부에서 불요불급한 예산을 최대한 줄여가면서 여론을 모아 단계적으로 증세를 추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